乙酉年 寒碧同人

을유년 한벽동인展   2005_0202 ▶ 2005_0215

을유년 한벽동인展_2005

초대일시_2005_0202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고미영_고혜림_곽자애_권영주_김경희_김대원_김명옥_김봉빈_김성숙_김성희_김영배_김영옥 김원경_김은숙_김은희_김춘옥_김충식_김하연_김현정_김희영_노신경_류숙영_명경자_문희돈 박소영_박순철_박영대_박지은_박진순_박창열_박필현_방국진_백범영_성태훈_손교석_안경자 엄기환_유수종_유지하_유천빈_윤경_윤진숙_이경희_이권호_이길우_이덕환_이숙진_이순애 이옥수_이은영_이은호_이정윤_이철수_이호숙_이호신_이효숙_임혜란_장승숙_장안순 정경화_정미숙_정숙모_정윤아_정재경_정종복_정현희_정형렬_정혜영_정황래_조경자 조광익_조미영_조순호_조춘자_조한호_조행섭_주민숙_진리바_최광옥_최미수_최성훈 한상호_한소윤_한수민_한태상_현혜경_홍상문_홍성모_홍푸르메

공평아트센터 서울 종로구 공평동 5-1번지 Tel. 02_733_9512

寒碧同人展에 부쳐 ● 한벽원, 선비들이 모여 詩와 그림과 풍류를 즐기며 마음을 주고받는 곳,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을 여기에 펼쳐 보고 싶어 일찍이 老畵伯 月田 先生님은 오롯이 팔판동 한 터전을 잡으셨습니다. 寒碧이라는 글자는 차고 푸르다는 것이겠으나 참 뜻은 맑은 氣槪와 孤高한 정신, 즉 선비정신을 함축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月田 先生님께서 이렇게 이름 지으신 데에는 그분의 예술철학이랄까 生의 신조가 선비적이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 이렇게 한벽원이 세워진지도 어느덧 16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이 한벽원에 미술관을 세웠고 동방예술연구회를 만들어 많은 후학들에게 연구의 터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필생의 사업이라 생각하시고 힘에 겨우리만치 여기에 심혈을 기울여 우리나라 정신문화계의 최고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강좌를 개설하였습니다. ● 그래서 모두가 서양 쪽으로 기울어져 한국의 정체성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전통을 소중히 여기고 그 가치를 현대에 접목시키는 외로운 사업을 펼치셨습니다. 동양의 사상과 예술정신 즉, 한국의 문화정신의 기조가 무엇인지를 젊은 미술인들에게 제대로 알게 하여 새로운 한국화를 창조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구축하게 하는 일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셨기 때문입니다. ● 이와 같은 月田 先生님의 뜻이 헛되지 않아 지금에 와서는 이 강좌가 우리 화단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고미영_고혜림_곽자애 권영주_김경희_김대원 김명옥_김봉빈_김성숙
김성희_김영배_김영옥 김원경_김은숙_김은희 김춘옥_김충식_김하연

오늘 이 寒碧同人展은 한벽원을 찾아와 2년이라는 교육과정을 밟으면서 어우러진 회원들의 우정과 강좌를 통해 일깨워진 예술정신을 작품에 담아 서로를 바라보는 만남의 자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여기에 참가하신 모든 회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매년 거듭되는 한벽동인전을 대할 때마다 한국화단의 중견작가들이 이렇게 많이 망라된 동인전이 어디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 표현의 양식과 기법은 모두가 달라 心象표현의 다양성을 보이면서도 근저에 흐르는 정신은 우리의 것 한국적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직설이든 은유이든, 또 사실이든 추상이든 우리의 고유한 정서에서 묻어나오는 가락과 빛깔이라면 보는 사람 모두는 그 속뜻을 알아차리고 함께 동화되어 기뻐하고 감동할 것입니다. ● 우리는 앞으로도 끊임없는 정체성 천착과 실험정신으로 우리의 작품세계를 더 높은 경지에 올려놓아야겠습니다. ● 아무쪼록 이 전시회를 통해 동인들 간의 우의와 결속을 다지는 것은 물론, 자기발전과 성취의 장이 되어 미술계에 훈훈한 훈풍을 일으켜주시기 바랍니다. 회원 모든 분들의 건승을 빕니다. ■ 이열모

김현정_김희영_노신경 류숙영_명경자_문희돈 박소영_박순철_박영대
박지은_박진순_박창열 박필현_방국진_백범영 성태훈_손교석_안경자

대나무 잎은 차고 물빛은 푸르다 ● "대나무 잎은 차고 물빛은 푸르다(竹色淸寒, 水光澄碧)"라는 말은 월전미술관(月田美術館)의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빼어나지만 속되지 않은 작고도 아름다운 정원 한벽원(寒碧園)의 전거이다. 이는 마치 대나무처럼 시류에 물들지 않고 푸르고 고고한 기품과 맑은 물과 같이 투명하고 담백한 선비의 기상을 추종코자하는 의미의 반영일 것이다. 한벽동인(寒碧同人)은 바로 이 정원을 넘나들며 동양의 전통 문화와 사상에 훈도되었던 일련의 문도들에 의하여 구성되어진 모임이다. 이들이 굳이 한벽원의 이름을 빌어 동인을 구성케 된 것은 작명의 편리함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한벽원에 담겨있는 그 추상같은 곧음과 한점 흐트러짐 없는 꼿꼿한 정신세계에 대한 한없는 존경과 숭모의 표현이자 스스로 이를 닮고 실천하겠다는 굳은 맹서에 다름 아닐 것이다. ● 화단에는 수많은 그룹들과 화회들이 명멸하지만 한벽동인과 같은 경우는 그 예가 특별하다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학연이나 지연, 혹은 동일한 화목을 추구하는 이들이 모임을 결성하여 화회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이에 반하여 한벽동인은 월전(月田) 장우성(張愚聖)선생의 각별한 뜻에 따라 문을 연 월전미술관의 강좌를 통하여 배출된 이들이 스승의 가르침과 그 뜻을 기려 자발적으로 결성된 모임이다. 그럼으로 이 동인은 구성원의 연령이나 성별이 다양할 뿐 아니라 추구하고 지향하는 작품 세계 역시 제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서로 다른 이들을 하나의 동인으로 묶어 줄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다름 아닌 월전 선생의 높은 뜻에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엄기환_유수종_유지하 유천빈_윤경_윤진숙 이경희_이권호_이길우
이덕환_이숙진_이순애 이옥수_이은영_이은호 이정윤_이철수_이호숙

주지하듯이 월전 선생은 문인화로 일가를 이루신 분이다. 단아하고 빈틈없는 필치로 한 점 흐트러짐 없는 맑고 정갈한 문인화의 세계는 월전 선생이 평생을 노닐던 격조의 세계이다. 문인화의 요체는 바로 정신에 있다 할 것이다. 우아한 품격과 때 묻지 않은 격조는 바로 그 정신이 의탁하는 바이다. 이는 동양의 전통문화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고귀한 정신세계인 것이다. 문인화는 형상을 빌어 정신을 표출하는 도구적 수단으로 그 근본과 가치는 언제나 맑고도 높은 정신적 이상을 지향하는데 있는 것이다. 월전 선생이 평생을 지향하며 추구했던바가 바로 이러한 문인 정신이며, 선생의 일생은 바로 이를 몸소 실천해 보인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물질 만능의 시대에, 그리고 서구적 가치가 횡횡하는 오늘에 새삼 전통적인 문인화의 정신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것이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오늘날의 세태는 이미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전 선생이 노년의 기운을 모으고 정성을 더하여 미술관을 열고 귀한 강좌를 열어 후학들에게 이를 전하고자함은 도대체 무슨 연유인가? 더불어 이러한 선생의 뜻을 추앙하고 따르며 절로 동인을 결성하여 스스로 한벽의 문도임을 드러냄에 주저하지 않는 이들은 또 무엇인가?

이호신_이효숙_임혜란 장승숙_장안순_정경화 정미숙_정숙모_정윤아
정재경_정종복_정현희 정형렬_정혜영_정황래 조경자_조광익_조미영

문인화의 정신은 단지 그림 속에서만 오롯이 자리하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정신을 숭상하고 격조를 잃지 않음이 어찌 붓 끝에만 있을 것인가! 문인화의 정신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인간다운 존엄성과 마땅히 그러해야함을 말해주는 지침이라 할 것이다. 일찍이 소동파(蘇東坡)도 "마른 사람은 살찌울 수 있지만, 속된 선비는 고칠 수 없다."(人瘦常可肥, 俗士不可醫)라 하지 않았던가. 예의를 알고 염치를 지키며 스스로를 갈고 닦음에 게을리 하지 않아 속되게 흐르지 않는다면 그것이 바로 참된 삶의 모양일 것이다. 비록 물질의 위세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존엄한 가치는 그 정신에 있음이 당연한 것이다. 월전 선생의 큰 뜻은 단지 회화로서의 문인화가 쇠락해 감을 애통해 한 것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세파 속에서 하릴없이 더불어 스러져가는 전통문화 속의 올바른 가치와 참된 의미를 못내 안타까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석양의 노을을 빗겨 선 스승의 깊은 마음을 읽은 문도들은 선생을 노사(老師)라는 존칭으로 경대하며 그 뜻을 받들게 된 것이며, 한벽동인전은 그 심중한 속내의 일단이 드러남에 불과한 것이라 할 것이다.

조순호_조춘자_조한호 조행섭_주민숙_진리바 최광옥_최미수_최성훈
한상호_한소윤_한수민 한태상_현혜경_홍상문 홍성모_홍푸르메

한벽원에서의 강좌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당대의 석학과 지성들을 망라한 교수진의 위용과 강의 내용은 일찍이 비견할 수 있는 예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근대 미술교육이 시작된 이래 수많은 미술대학에 미술과 연관된 많은 강좌들이 개설되었지만, 그 어떠한 것도 이러한 장관을 보인바가 없었다. 이는 필경 월전 선생의 인품과 덕성에 힙 입은 바일 것이다. 근대 이후 서구지상주의에 매몰된 전통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전수하고자하는 노력은 수많은 뜻있는 이들을 한벽원으로 이끌어 오늘의 한벽동인전의 토대를 만들게 하였다. 만약 한벽원에서의 강좌가 단지 문인화의 형식과 기능을 교육하였다면 그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모양을 가르치지 않고 뜻을 익히게 하고, 배움이 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울림으로 남게 하였음에 그 귀함이 있는 것이다. 한벽동인들의 면면이 서로 다른 양태를 견지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 이제 연로하신 스승은 어렵게 가야금의 줄을 퉁기셨다. 귀 기울여 그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고, 화답할 수 있는 맑은 소리를 가다듬는 것은 오로지 제자들의 몫일 것이다. 귀가 있되 듣지 못하고 뜻이 있되 말하지 못한다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르면서 앞서 나가는 것은 교만이며, 앎에 실천이 따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위선일 수밖에 없다. 스러져가는 전통문화의 폐허 속에서 옥석을 가려 광채 잃은 보석의 때를 벗겨 그 빛을 온전히 하고, 일방적으로 기울어가는 가치 혼돈의 상황 속에서 그 균형을 애써 도모할 때 비로소 한벽원의 대나무 잎은 영원히 차고 물색은 더욱 푸르를 수 있을 것이다. ■ 김상철

Vol.20050210a | 을유년 한벽동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