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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5_0202_수요일_06:00pm
예술디자인갤러리 토포하우스(구 삼정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4번지 Tel. 02_722_9883 www.topohaus.com
'시선'과 '응시' ● 이혜영의 화면은 그래픽한 차가움과 장식적인 뜨거움이 공존한다. 공존하나 융합되지 않는다. 「나만의 방-12」에서 그래픽한 화면의 바탕은 장식적인 화면으로 끊임없이 문질러 쌓아 올리고 다시 깎아내고 다시 쌓아올려진다. 쌓아올리고 다시 이성적으로 깎아내어지고, 다시 본능적으로 쌓아올리고 다시 이성적으로 깎아내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푸른 선인장이 돋아나듯 장식적인 화면은 더 강고히 드러나고, 그 속에서도 이성적인 그래픽한 화면의 바탕은 끊임없이 솟아오른다. 융합되지 않고 대립되는 긴장감과 충돌하는 혼돈 속에 그의 화면이 놓여 있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여전히 장식적이며 그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적이다. ● 그러나 그의 화면이 '여성성'의 문제를 다루면서도 여느 페미니스트의 작업과 다른 지점이 있다. 작가는 여성으로서의 정체성, 그 본질의 물음보다는 '시선'의 문제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이라는 끊임없이 빠져드는 늪의 물음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본질이 현현되는 '시선'의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각 의자들 간의 시선이 공유되지 않음을 통해 여성들간의 소통의 단절을 표현한 「Relationship II」, 「Relationship III」에서 뿐만 아니라, 남녀를 상징한 「Red&Blue I, II」에서도 각 의자들은 긴장하고 있을 뿐이다. 서로가 등을 돌려 시선을 외면하거나, 서로가 마주 보고 있어도 서로에게 조금도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서로를 응시하는 긴장이 그의 화면을 팽팽하게 한다. 이러한 긴장감은 화면의 배경으로 자리잡은 수많은 의자들을 통해 가속화되다. 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두 눈으로 응시하고 있으면서도 관여하지 않고 묵묵히 각자의 정면만을 응시하는 일상의 존재들의 시선이 화면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일상의 존재들의 시선이 두 남녀의 시선을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배경 의자들의 흔적들을 통해 표현된 시간의 흐름은, 공간성뿐만 아니라 시간성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소통의 단절과 이에 대한 무언의 압력에 대해 묻고 있다.
이러한 '시선'과 '소통'의 문제는 작가가 의자 작업을 하기 이전부터 지속해오던 화두였다. 「여자시리즈」는 수많은 구멍들을 통해 비쳐지는 '여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나'와 '보여지는 나', '보여지는 나'와 '훔쳐보는 나'의 관계에 대한 물음은 「나만의 방-11」로 이어져 있다. '나'와 '보여지는 나'의 화두에서 '나'와 나에게 '보여지는 그'의 화두로 보다 당당히 변화하기는 하였지만, '존재'와 '보여지는 시선'과의 긴장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은 실루엣으로 표현된 그릇과 세상의 온갖 탐욕을 지닌 아웃라인으로만 그려진 빈 그릇을 통해 재생산되고 있으며, 그래픽한 구획과 장식적인 구성간의 긴장으로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면은 장식적이며, 구석구석 묻어 나오는 붓질의 손맛을 통해 작가가 지닌 자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 이러한 애정은 「existence」에서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주보기를 계속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으며, 응시된 시선을 교환하게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의 동일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여성성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당당하게 감성으로 이성을 응시하려고 한다.
이성과 감성을 이분법적으로 인식하려고 하는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소녀적 태도는 지니고 있으면서도 여성과 남성,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의 문제를 '시선'의 문제로 드러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되며, 이를 통해 카오스적인 일상의 화면 안에 긴장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그만의 독특한 화면을 이룩해내었다. ■ 박계리
Vol.20050205a | 이혜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