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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심'에 관한 상념 ● 내가 추구하는 행위, 표현하는 시각 이미지들을 정리하며, 어느 순간 스스로 '자연'과 '동심'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사실 작가로서의 테마는 좀 덜 매력적이고 덜 자극적인 이러한 주제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왜 좀 더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도전적이고 저항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가? 스스로 자문해 볼 때도 있고 불만인 적도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도리가 없다. ● 이것이 '나'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극복해 나아가는 수밖에. ● 연과 동심에 관한 것이 내 머릿속의 전부는 아니지만, 분명히 나의 사유구조 속에 커다란 비중으로 존재하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그 근원을 찾아 들어가면 나 개인의 성장과정, 즉 유년의 시절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 나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시골출신이다. 그 나이 때에 많은 분들처럼 서울이라는 도시가 고도로 성장하고 팽창하면서 시골의 젊은이들을 도시로, 도시로, 끌어들이던 시절이었다. 배우지도 못하고 농사만 짓다가 서울로 올라온 부모님은 여느 시골출신들처럼 도시에 힘들게 일해서 정착하게 된다. ● 내가 태어나서 성장한 곳은 시골도 아니고 도시도 아니었다. 어릴 때는 시골에 가까웠던 반면 점점 성장하면서는 도시로 변해버린 것이다. 나와 친구들의 아지트였던 산을 깎아서 붉은 민둥산을 만들더니 그곳에 건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물고기 잡으러 헤집고 다니던 개울은 점점 발을 담글 수 없는 악취 나는 하수구로 변하더니 급기야는 하수관을 묻고 덮어서 감추고, 그 위로 자동차가 씽씽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늘어나는 자동차와 도로, 신호등, 계속해서 후퇴하듯 뒤로 뒤로 도망가는 숲들... 조금씩 성장하며 이러한 모습들을 끊임없이 보아야만 했고, 더 이상 물러 설수 없는 지경에 이른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 마치 사람들은 생태계에 있어 점령군과 같은 존재였다. 거침없이 밟고 밀어 붙였다. 정말로 필요한 집과 땅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오락을 위해, 약간의 편리함과 더 많은 먹을거리를 위해 코너까지 밀어 붙였다. ● 이제야 많은 사람들은 환경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이기심은 존재한다. 환경을 지켜야한다는 논리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우리가 살려면'이라는 동기가 숨어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으로 다른 생명체들을 위하고 지구와 함께 사는 파트너로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재앙이 두려운 나머지 이제라도 보호하자는 것이다. ●사람들이 좀 덜 어른이 된다면 어떨까? 즉, 모든 어른들이 어릴 때의 순수함을 조금이라도 가슴 한 켠에 지니고 있다면, 돈만을 위해서 세상을 살지 않는다면, 건설회사 사장이 되어서도 이익만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백두대간을 파내서 건설자재로 사용하는 비양심적인 행위 따위는 하지 않고, 개인의 이익 때문에 파괴만을 일삼지 않는다면. 대지와 생명을 무작정 죽이지 않고 파트너십을 이용해서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다면...... 모두가 이렇게 되길 바랄 수는 없겠지만 작은 생명까지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섬세한 마음. '동심'은 환경과 평화로 가는 것을 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야 할 어떠한 사상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 내가 표현해온 이미지들을 꺼내어 보고, 나 자신의 성장과정을 반추해보면 내 스스로의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가 된다.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자연의 풍경에서도시야경으로 또 만화적 이미지의 과슈 그림에서 최근의 만화적 수묵 점묘화까지... 연재만화 '꼬마영수의 하루' 역시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자전적 스토리의 내용이 주를 이룬다. ● 다소 사색적이며 과거 회귀적이고 불교적인 색채를 띠는 경향도 있는데, 이 역시 나의 정신 구조의 일부분이며 일정부분 작업에 녹아있는 부분이기도 한 듯 하다. 지금의 작업은 수묵점묘의 회화작업이 주를 이루고 있고 수묵화라는 장르에 매료되어 있지만, 나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으로서의 매체를 만난다면 그리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그것이 만화든, 글이든, 웹아트든 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을 것 같다. ● '자연'은 명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스스로 그러한 것'이라는 동사였는데 의미가 굳어져서 명사처럼 쓰이는 단어라 한다. 비틀즈의 'Let it be'나 老子의 '無爲自然'도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람들이 어린이처럼 순수한 동심을 되찾거나, 사람들이 자연을 제 몸처럼 느낀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세상이 덜 폭력적이고 살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 이영수
차례 ● 미완성의 동화 속에 담긴 정감과 상념의 세계_류철하(월전미술관 학예연구원)/ a.풍경화/ b.야경/ c. 호분 점묘화/ d.과슈화/ e.점묘화/ 점묘로 풀어가는 소담한 대화_유윤빈(홍대 미술학과 박사과정)/ 에필로그Vol.20050130b | 미완성의 동화 / 지은이_이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