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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Talk_2005_0114_금요일_02:00pm
숙명여자대학교 문신미술관 빛 갤러리 서울 용산구 효창원길 52 Tel. 02_710_9280 / 02_2077_7052 www.moonshin.or.kr
현대의 일상은 이미지와 소리로 넘쳐난다. 벌떼처럼 몰려오는 실체 없는 이미지들과 MP3의 보급으로 가공된 소리들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틀어막아 가고 있다. 고즈녁하고 담박한 실체를 담은 이미지들과 고막을 미세하게 울리는 소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지영의 작업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한다.
사진은 작가의 시선에 반응하여 인간이 만든 광학체계를 통과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본질적으로 평면적 이미지에 속하는 사진은 더 이상 사실의 가장 정확한 재현체가 아니다. 사진에 비록 공간과 대상이 담겨져 있다고 여겨지더라도 거기에는 진정한 실체가 없다. 지독한 평면위의 이미지만이 거기에 있을 뿐이다. 모든 이미지의 선명한 평면화를 통해 현실을 걸러내는 가상체계인 것으로 사진이 밝혀졌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현실을 담으려는 노력을 전면적으로 포기해야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욱 더 풍부하게 작가의 사물에 대한 시선과 감응이 전이되는 가능성을 사진의 가상성은 제공한다. 그러므로 사진은 사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작가의 시각을 넓게 보여주는 하나의 열려진 광학적 가능태라고 할 수 있다. ● 개방된 시선의 포섭물로써 산책하듯 이리저리 거닐면서 이지영이 카메라에 담은 것들은 주변의 모습들이다. 소외되었다고까지 할 수 있는 조용한 일상의 모습들을 채집하며 소요하는 그녀의 한가로움은 잔잔하게 작업에 배여있다. 감성적으로 섬세하게 보듬어낸 이미지들은 인공적 조작을 거치지 않고 제시된다. 미학적 장려함으로 무장한 혁명적 이념도 웅변적 일상도 드러나지 않지만 이지영의 작업이 건네는 이미지는 한적한 노변에서 채록한 장면들에서 감지할 수 있는 일상의 쌉쓰레한 맛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는 응시가 아니라 관심이라고 해야 할 태도가 깔려있다. 정육점의 단촐한 장면, 누추함을 풍겨내면서도 소박한 정감이 담긴 음식점 모습, 추억의 장면에나 나옴직한 번호가 매겨진 함석문으로 닫혀진 상점의 풍경 등은 독일에서 Bernd & Hilla Becher 부부 제자인 Thomas Struth 와 Candida Hofer에게서 수학하던 기간의 작업에서도 배여있던 그녀의 검소한 시선을 드러낸다.
시선의 반영물인 이미지는 소리와 조응(照應)하며 교호한다. 하루 하루를 살면서 우리는 소리로부터 자유로운가? 사람들은 항상 소리에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을 다 알지 못하듯이 들리는 소리도 다 알아듣지는 못한다. 더군다나 거리에 흘러넘치는, 가게들에서 크게 틀어놓은 음악들은 조용하고 작은 소리를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그냥 스쳐지나가는 작은 소리가 어찌 그리도 많은지는 조용한 곳에 있으면 알게 된다. 정체도 알 수 없고 그 뜻도 모르는 수많은 소리들은 공간 속에서 사물과 더불어 자리 잡고 있다. 소리는 그대로 하나의 장면이 되기도 한다. 시장통의 왁자한 소리들은 그 자리에 설령 있지 않더라도 그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구성진 호객행위와 날카롭게 외치는 선전의 소리, 값을 흥정하는 소리는 우리의 귓전에 버글버글 몰려온다. 아무리 작은 장면에서도 소리는 크고 작게 와글와글 한다. 우리의 일상은 의미에 자유로우며 형식에 개방적인 공간과 소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풀 코스 같은 작가는 시각적인 물체에서 소리에 집중하도록 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는 얼음이 녹아 가면서 내는 소리와 떨어지는 물소리를 담은 작품에서 이미지의 소멸과 소리의 생성을 병렬적으로 다루었다. 관람자는 그 소리를 듣지 않더라도 얼음이 녹는 모습에 흥미를 느낄 것이고 다른 사람은 얼음의 해빙과정을 보지 않더라도 그 소리를 들으며 상상에 잠길 것이다.
혹자는 그 두 가지를 결합하거나 교호하면서 감각과 인지와 상상과 그 차이를 감상할 것이다. 여기서 이미지와 소리는 진행되는 동일태의 다른 모습이다. 소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공간을 필요로 한다. 공간이 없다면 소리는 퍼져갈 수가 없다. 이미지에 의거한 회화적 전통처럼 사진이 시간의 응결에 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소리는 공간 속에서 연속성에 의거한 시간상의 특질을 갖고 있다. 사진과 같이 한 순간을 담아내려한다면 소리는 거의 인지하기 어려운 소리만을 들려줄 것이다. 소리가 병렬적인 수평적 연결성의 측면이 강하다면 이미지는 누적하는 수직적 성향을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시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지영은 청각과의 결합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확장한다. 비디오 작업이 아닌 아주 정적이고 정지적인 성향을 지닌 사진이미지와 그 이미지에 병존하는 소리, 그리고 함축적인 악기의 음들로 이루어져 있는 그녀의 작업에서 소리와 이미지의 교직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는 주변적 시공은 맺혀지고 풀려진다.
하나의 장면을 담은 사진은 영속성을 지향한다. 그것은 항상 과거이기를 주장하면서 항상 현재이다. 이러한 속성 중에서 이지영이 찾는 것은 항상 현재인 일상의 모습이다. 그녀의 작업은 잔잔한 풍경화를 지향하는 즐거운 관심에서 비롯된 이지영의 거리에서 건져낸 이미지작업은 주변의 소리와 결합한다. 환기적 음향 속에서 다른 궤적으로 존재하는 듯한 피아노 등의, 장면에 대한 그 자신의 해석과 감성을 삽입한 악기소리는 가공된 음들임에도 주변의 소리와 공명한다. 거기에 그녀는 발자국 소리로 자신의 자취를 남긴다. 그 결과 순수한 일상의 소리와 문명으로 걸러낸 소리는 이미지와 얽어진다.
사진과 소리를 결합하는 것은 흥미롭다. 그러나 속성상 양자의 성립은 충돌적이다. 응결적 시간과 덧없는 시간의 결합이며 뭉쳐진 것과 풀려진 것의 차이이다. 응시해야 하는 대상이 사진이라면 소리는 귀 기울여야 하는 지나침이다. 즉 목적적 대상이 사진이라면 과정적 대상이 음악이요 소리이다. 사진을 바라보며 한없는 응시를 한 후에는 가상적 이미지가 남는다. 사진은 가상적이며 가공적이다. 이것과 비교하여 소리는 실체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듣는 것은 우리가 사진을 보는 것과 같이 가공적이며 가상적인 결과들의 기록물이다. 사진을 보든 녹음을 통한 소리를 듣든 그것은 하나의 가상된 기록 장치에 의한 간접경험이며 아울러 시간의 지나감에 대한 하나의 항거적 기억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그 안에서 그 둘은 교호하면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소리를 들음으로써 시각을 자극하고 시각의 대상을 보면서 청각적 요소를 자극한다. 소리와 대상은 분리적이며 결합의 관계를 형성한다. 여기에서 음악이라고 불릴 수 있는 가공의 소리는 사진기의 장치와 같은 기계적 메커니즘의 수용이며 작가가 해석한 아니 판단한 어떤 특징이다.
시각에서 청각적 요소를 뽑아낸다는 것은 항상 개인적 경험에 거의 의지하므로 무어라 틀 지워서 분류하기 어렵다. 청각에서 시각의 요소나 촉각, 후각의 요소를 추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개인의 경험과 문화적 배경에 의거한다. 그러므로 이지영의 작업은 사진이든 소리이든 경험적 개인성의 기반 위에 서 있으며 종합적이고 분산적인 관심을 수용하여 드러내어 전달해주고자 하는 시도의 결과이다. 작품이 작가에 의해 산출된 감상대상이더라도 감상자는 전혀 다른 면모를 감지할 수도 있다. 작업물들이 작가의 선택과 가공의 과정을 통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합일 지라도 관람객은 거기에서 파생되는 감성의 범주성을 자신의 경험과 중첩시키게 되는 상호적인 결과를 양산한다. 즉 사진의 이미지를 보면서 소리를 듣는 것이 단순히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고 아울러 그 범위를 한정시키거나 확산시켜 보게 되는 부분화의 인식을 통해 어떤 느낌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염두에 두고 있는 이미지에 관련하여 소리를 작성하였다 하더라도 관람객은 그와 전혀 다른 감상면을 가질 수 있다. 풀들이 듬성듬성 있는 펼쳐진 들판에서 작가가 느끼는 소리의 음색과 관람객의 수용태 사이에는 모종의 편차가 존재한다. 그럼에도 그 둘은 이미지와의 결속에 의해 하나의 통괄태 안에 기거한다.
그녀가 다루는 작고 사소한 이미지들은 화려하고 세속적인 시선들의 관심 밖 대상들이며 채록된 작고 거칠은 소리 역시 존재의 사소함을 담는 것이다. 이지영은 웅변적이고 정치적이며 거대 담론을 다루고자 하지 않는다. 그녀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알려지지 않고 사라져가고, 주목되지 않고 지나가는 일상의 담담함이며 그 속에서 명멸하는 존재의 의연함이다. 그 무엇에 담아지지 않아도 실망하지도 소외되지 않는 찰나적 지나침의 존재함을 담고자 한다. 그래서 은은하다. 그러나 그 작은 것 없이 큰 것이 없으며 담담함 없이 과장된 웅변도 존재하지 않듯 일상이 없이 영웅이 존재할 수는 없다. 그리고 큰 것, 웅대한 것도 하나의 일상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작은 것을 통해 큰 것을 드러내려는 시도들은 현대의 관심거리이다. 아울러 그러한 접근태는 미세한 존재양식의 현현화에 따른 자기 표출을 지향하는 표현적 정당화일 것이며, 존재의 당당함을 아무리 작은 것도 가지고 있다는 관심의 확산에 해당한다. 응축적 성향의 사소한 이미지와 그에 점착된 진행적 성향의 소멸되는 소리를 자신의 음색으로 아우르며 교차함으로써 감각 안에 감성을 자극하려는 이지영의 작업은 존재의 주변영역과 조응(照應)의 관계를 포괄하려 한다. 이제는 존재를 이미지와 소리를 통하여 톺아볼 때이다. ■ 이영훈
Vol.20050112a | 이지영 미디어 아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