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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블로그_http://blog.naver.com/sunnyroomc
초대일시 / 2005_0107_금요일_05: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82.(0)2.527.6282 www.songeun.or.kr
예술이 자신을 예술로 인식할 때 무엇이 '새로운 것'인가를 묻는다. ● 어릴 적 모든 병의 만병통치약이라 여겼던 호랑이 연고와 빨간 약에 대한 믿음처럼, 미술의 원형인 밀렌도르프 비너스가 담고 있는 의미를 되짚어 보면서 '미술의 의미'를 묻는다.
날마다 새롭게 ● 보일러 기름을 넣는데, / 작년보다 무려 2-3 만원의 가격이 내렸다. / 휴지 2통과 새 달력도 덤으로 주신다. / 달력을 펼쳐본다. / 근하신년이다. / 첫 장을 뜯었는데, / 또 근하신년이다. / 다음 장도 그 다음 장도... / "아저씨 달력이 이상한데요. / 날짜는 없고 근하신년만 있어요" / "예, 때마침 원유 값이 많이 내려서요, / 올해는 좀 특별히 '날마다 새롭게 - 근하신년' 이란 / 기획으로 만들어봤는데... / 어떻습니까?"
고장난 라디오 소리 ● 동네 구멍가게, / 모처럼 가족들이 나들이를 한다며 / 일요일 하루만 가게를 봐달라고 하신다. / 화창한 오후 한나절, / 두 아저씨가 가게 앞 평상에서 벌써 세 병째 소주다. / 지겨운 삶의 넋두리에 술병이 빈 병으로 쓰러지고, / 두 아저씨의 의식도 빈 잔으로 비어져 나간다. / "어 이봐, 아가씨..." / 평상에서 들려오는 가벼운 수작. / 나는 꼬깃꼬깃 구겨진 목소리, 단호하게 답한다. / "난 아가씨가 아니라 작가예요, 작가." / "어허, 이 아가씨가 글쎄, 작가라고 하는구먼. 작가..." / 갑자기 라디오 엉키는 소리... Z Z Z
가난한 TV위의 배부른 돼지 ● 몇 년 전, / 어느 선생님께서 지난 인생여정을 회상하시며 / 들려준 이야기가 있었다. / 차곡차곡 책장이 쌓여 가는 사람과 / 매일 한두 푼씩, 꼬박 꼬박 돈을 모으던 사람은 /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고. / 그 날로 빨간 돼지 저금통 하나를 TV위에 올려놓았는데, / 오늘도 방바닥 굴러다니는 동전을 주워 밥을 준다. / 더는 들어가지 않는다. / 묵직하다. / 그래도 꾹꾹 눌러 본다. / 어라 갑자기, / 뿌지직 뿌-웅. / 노란 물똥이 TV모니터로 흘러내린다. / 은행에 가야겠다.
어떤 내력 ●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가 / 동전 바구니를 내미는 인기척에 무심코 고개를 든다. / 얼굴에 화상을 입었는지 완전히 뭉개진 형상이다. / 힐끗 한번보고 계속 책에 열중했는데... / 밤에 꿈을 꾼다. / 내 열 손가락 손톱이 아무렇지도 않게 쑥 빠지는, / 투명하다.
반성 ● 아침 신문에 묻어 들어 온 케냐는 / 전체 인구의 30%를 웃도는 에이즈를 근절시키기 위해 / 2년 동안이나 부부사이뿐 아니라 / 국가의 모든 성생활을 법으로 금지시켰다고 한다.
사라진 해태 타이거즈 ● 어릴 적 살던 동네, / 정육점 아주머니는 야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 장사는 안중에 없고, / TV앞에 앉아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하느라 여념이 없으셨다.
도시 ● 할아버지 지팡이로 걸어 다니실 때, / 할머니 비로소 하늘로 날아다니시는 / 도시가 있다. / 늙어야 갈 수 있는 도시이다. / 젊은이 왼쪽으로만 보행을 하고, / 검은 차와 군인들은 오른쪽 보행을 한다. / 젊어서 살고 있는 도시이다.
우리 동네에는 이런 거울이 걸려 있다 ● 어스름 저녁 무렵, / 동네 거리를 산보한다. / 골목에서 나와 전봇대 지나면, / 쌀가게, 희노애락 비디오, 청과과일. / 모퉁이 돌면 다세대 연립 주택. / 다시 전봇대 맞은편에는, / 만화 대여점, 레드 후라이드 치킨, 24시간 해장국... / 지나는 가게마다 거울이 걸려 있다. / '발 축 전' 이라 새겨 있다.
인사동 가는 길 ● 나는 의정부와 양주군의 경계지점에서 산다. / 집 앞 찻길 건너에는 바로 군부대가 있다. / 그 길을 따라 가면 논, 밭이 펼쳐지다가 / 의정부를 지나 서울 가는 길로 연결된다. / 그래서 인사동 가는 길에는 / 시골 풍경과 도시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 나는 지금까지 한번도 밖의 풍경을 그려 본 적이 없다.
쿠르베 다녀가시다 ● 나는 작업이 막히거나 안 될 때 빨래하는 습관이 있다. / 그 날도 막 빨래를 하려는데, 느닷없이 쿠르베 씨가 오셨다. /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 쿠르베 씨를 방으로 모시고 들어와 차를 대접하고, /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가... / "어 저거 내 그림이잖아?" / 갑자기 내 방에 걸려 있는 그림 액자를 가리킨다. / "예, 제가 쿠르베 씨의 그림을 좋아해서요..." / 쿠르베 씨가 다녀가신 후, / 마저 빨래를 다하고 작업을 시작한다. / 쿠르베 씨가 얘기한 '현실적 우의'에 대해 생각하면서,
창문 없는 방 ● 어느 술 취한 아저씨, 횡단보도 건너편 가로등 불빛 밑에서 / 몸을 비틀거리며 잃어버린 열쇠를 열심히 찾으신다. / 빨간 신호등에 걸려 있는 버스 마냥, 열쇠는 이 쪽에 떨어져 있는데... / 손가락 지문에 묻은 삶의 얼룩처럼 낡고 무거운 열쇠. / 내가 줍는다. ● 가만 보니, / 술 취한 아저씨는 주인집 클레멘트 그린버그 아저씨. / 창문 없는 방에 살고 있는 나. / 주운 열쇠를 만지작거리며 돌려줄까 말까 고민한다.
돈 벌 궁리 ● 옆 방 주인집 아저씨, / 밤마다 문 두드리는 소리에 굳게 잠근 방문 퍼렇게 멍이 들고, / 나는 오늘도 뜬눈이다. / 돈을 좀 벌어 이 방에서 얼른 나가야겠는데, / 벼룩시장 신문을 뒤적이다 누가 '역사 철학에 대한 논제'라는 글을 써서 생전에는 쪽박이었으나, 사후에 큰돈을 벌었다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 몇 번이나 되풀이 읽어보고는 나도 한번 베껴본다. ●「이것은 상대방의 모든 수에 응수하면서 예술 게임을 항상 승리로 이끌 수 있게끔 만들어진 인형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업복으로 차려입고 손에 펜을 든 인형이 커다란 책상 위에 놓여진 미술판 앞에 앉아 있다. 이 책상에 장치되어 있는 거울들은 사방에서 안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착시를 일으킨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작은 곱사등이가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손에는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줄을 당겨 인형의 펜을 든 손놀림을 조정하고 있다. 우리는 이 장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구상해 볼 수 있다. '개념 미술가'라고 불리는 작가가 항상 게임에 이긴다. 이것은 알다시피 오늘날엔 이미 폐허로 간주된 '회화'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특히 '표현'의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아주 큰 승산을 기대해 볼 만하다.」_발터 벤야민의 「역사 철학에 대한 논제」를 참조
어느 예술-가가(加) ● 당신은 왜 꼭 예술을 고수하십니까? /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수행하기 위해서요. /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내가 그것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 상황이라는 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어서더군요. ■ 최은경
Vol.20050106a | 최은경展 / CHOIEUNKYUNG / 崔殷京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