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참여작가 한국_권오상_박혜성_양아치_이형구_조습_천성명_황혜선 중국_펑 정지에_홍 하오_홍 레이_왕칭송_웨이 동_자오 반디_싱 단웬 일본_카와시마 히데아키_무라기시 마나부_쿠와쿠보 료우타_나카무라 테츠야_켄지 야노베
전시설명회 매주 토·일요일 01:00pm_제2전시실 · 중앙홀
작가와의 대화 2004_1127_토요일_02:00pm_권오상 2004_1204_토요일_02:00pm_박혜성 2004_1211_토요일_02:00pm_천성명 2004_1218_토요일_02:00pm_이형구 2005_0108_토요일_02:00pm_조습 2005_0115_토요일_02:00pm_양아치 2005_0122_토요일_02:00pm_황혜선
입장료_상설전시 동시 관람가능 일반(19세~65세)_2,000원 / 할인(중학생~18세)_1,000원 / 초등학생 이하, 65세 이상_무료
국립현대미술관 제2전시실과 중앙홀 경기도 과천시 막계동 산 58-1번지 Tel. 02_2188_6000
『젊은 모색』展은 1981년 시작된 이래 격년제로 개최되는 우리 미술관의 대표적인 전시 중 하나이다. 만 40세 이하의 작가가 대상이며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에 참가한 적이 없고,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을 소장하지 않은 작가로 제한하여 재기발랄한 작가를 주목하고자 마련된 전시였다. 이 전시는 새로움과 변화를 추구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현대미술의 가장 첨예한 관심을 다루고 있으며, 향후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제시하여 왔다. ● 그런데 한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현대미술의 범주 내에서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그들이 한국에서만 활동하고 있는가? 지난 5-6년간 대안공간, 전국의 공사립미술관들이 청년작가들의 전시를 집중적으로 열고 있는 시점에서, 다른 미술관의 유망작가 발굴 전시와 어떻게 차별화할 수 있는가? 또한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한국현대미술의 상황은 어떠한가? 국립현대미술관이 전시를 통해 작가들의 성장가능성을 어떻게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물음들이 2004년 『젊은 모색』展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것들이다. ● 다시 말하자면 지난 5-6년간 전국에 걸쳐 설립된 공립미술관들이 지역작가를 발굴하기 시작하였고, 또한 주요 사립미술관에서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는 전시가 대거 개최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인작가 발굴이라는 『젊은 모색』展 본연의 역할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여러 대안공간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어서, 그간 국립현대미술관이 『젊은 모색』展을 통해 보여준 참신성이 퇴색되고 있다는 우려도 고려되었다. 젊은 작가들의 약진은 지난 2-3년간 한국미술계의 주요한 특징이다. 대안공간이 활성화되면서 젊은 작가들이 전시회를 열 수 있는 기회를 더욱 많이 갖게 되었고, 전시회를 통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그들의 작품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 『젊은 모색』展은 1981년 처음 개최된 이래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끝임없이 변화되어 왔고, 올해 역시 최근 한국 현대미술의 경향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전시의 기획 의도를 다시 검토하고, 방향을 재설정한 결과, 몇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기로 하였다. ● 첫 번째, 지금까지는 나이를 만 40세 이하로 제한하여 작가를 선정했는데, 올해부터는 나이 제한을 두지 않았다. 실상 작품의 참신성은 작가의 육체적인 나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발상이나 개념에 있어 얼마나 실험 정신을 반영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 두 번째, 지금까지 한국 국적의 작가를 선정하였으나, 올해 전시는 한국 작가뿐만 아니라 외국 작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였다. 오늘날 많은 한국 작가들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고 있으며, 현대미술은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대적으로 비슷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만든 영화나 드라마를 일본, 중국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공통된 시각문화를 즐기기도 하며,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양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문화 현상을 단순히 한국만의 독립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번 젊은 모색전은 외국 작가를 포함하는 국제전으로 개최하기로 하였고, 그 중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의 신진 작가들을 위주로 하기로 하였다. ● 왜 한국, 중국, 일본인가? 1990년대부터 시작된 한중일 삼국의 교류는 여러 분야에서 꾸준하게 진행되어 왔으며, 최근 들어 특히 문화 분야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다. 삼국은 유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문화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적 배경과 사회 구조가 저마다 다르고, 문화 또한 다르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 있는 일이다. 삼국은 미술 분야에서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는데, 고전미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 분야에서도 전시와 학술 행사들이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 역시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기획되었다. 이번 전시는 삼국 사이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점이 무엇이고,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점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는 단순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 지금까지 개최된 한중일 삼국의 현대미술을 다룬 전시를 살펴보면, 급격한 근대화를 거친 도시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작가들의 정체성을 탐구하거나, 각 나라의 문화 혹은 사회에 대해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중요하게 다루어 졌다. 작가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 속에서 주변 존재에 대한 상호 존재의 차이를 인식하고 공유함으로써 이전의 이분법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났고, 다양한 주제를 이끌어내게 되었다. 작가들의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은 작가와 동떨어진 존재에 대한 인식이 아닌 전체 속의 개체인 자아에 대한 탐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작가들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고유한 시각적 언어로 표현되면서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특성을 지니게 된다. ● 특히 작가들은 이러한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가가 속한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표현할 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된다. 각각의 사회는 저마다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사회에서 나오는 미술 역시 특수한 문화적 표현을 낳는다. 특히 작가들은 사회적 난국을 저마다의 상징적 예술로 표현하면서, 작가들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제약을 내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주게 된다. ● 이번 『젊은 모색』展 역시 정체성에 대한 탐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 전시는 특히 작가들이 사회현상 혹은 대상을 표현하는데 있어 나타나는 작가 특유의 시각 혹은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 작가들은 혼란스러운 현실의 부조리, 혹은 모순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작가만의 고유한 특권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작가들은 현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면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상상력을 통하여 작가의 꿈은 작품 속에서 현실이 되고, 작가가 존재하는 현실은 작품 속에서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현실과 상상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작품이 더욱 새롭고, 낯설고, 실험적이거나 충격적으로 보이게 된다. 『젊은 모색 2004』展은 실재하는 현실과 뒤바뀐 현실의 기묘한 조화를 이끌어 내는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결과가 어떻게 보이든 그건 작가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점은 작가 자신이 그러한 관계를 직접적으로 이루어 나가고, 조정하고,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는 사실이다. ● 현실은 매우 복잡하고 불완전한 것이며, 이해할 수 있는 것과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뒤섞여 있다. 아무튼 현실은 실제로 존재하고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연속이다. 작가는 이를 좋고 나쁨의 잣대로 판단하기보다는 '복잡한 무엇'이라는 있는 그대로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역시 작가의 스스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바탕에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의도하는 바를 나타내는데 있어 단일한 주제, 내용에 만족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을 결코 있는 그대로를 단순하게 나타내지도 않는다. 작가 특유의 감수성을 발휘하여 주제, 내용을 더욱 과장하거나 자극적으로 나타낸다. 현실에 대한 풍자, 희화, 왜곡과 같은 내용적인 면뿐만 아니라 각국의 미술전통을 더하는 등 작품을 복합적이면서도 다층적인 구도로 엮어낸다. ● 작가들은 복잡한 현실을 표현하기 위하여 풍자, 왜곡과 같은 일반적인 표현방식에 각국의 미술 전통을 더하는 등 크로스 오버(Cross-over) 경향의 작품을 제작한다. 미술의 형태가 매우 다양해지고 있고, 잡지, 영화, 인터넷,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 디자인 등등 대중매체들이 발달하면서 작가들이 세계를 만나는 경로도 매우 다양해졌다. 따라서 작가들은 순수미술, 응용미술, 혹은 상업미술, 더 나아가 인터넷까지도 받아들여 장르의 구분에 관계없이 여러 장르를 함께 보여주거나 혹은 혼합하는 경향의 작업을 만들어 나간다. 최근 한, 중, 일 작가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홈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작가들이 많다는 점 또한 특기할만한 일이다. ● 서로 다른 표현방식의 접목은 흔히 하이브리드(hybrid)적인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 잡종, 혼성교배라는 의미의 이종(異種)결합은 작가들에게 더 이상 순수와 전통을 수구하려는 의지를 강요하지 않을 때 가능하다. 장르와 영역의 경계는 무너져 버렸지만 각각의 본질은 간직한 채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있는데, 바로 이 점이 현대미술에 활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매체 간의 융합, 시대, 장르간의 융합을 넘어서 매체와 매체의 결합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을 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Cavant-garde', 'Japanimation'과 같은 신조어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 말은 중국과 일본의 현대문화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특징을 이르는 용어로 정의되어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실정이다. ● 지금까지 언급한 리얼리티의 왜곡, 혼합적 표현방식, 탈 경계의 경향은 최근 한국, 중국, 일본의 주요한 경향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미술문화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른 시각문화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들은 최근 수년간 삼국 문화의 유사성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역적 특수성은 현대미술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며,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언어는 현대미술의 자유로움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동시에 작가들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찾아나가는 과정이야말로 현대미술의 추구하는 목표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기본 정신과 젊은 작가들의 실험 정신이 충돌하면서 새로운 현대미술이 나타나게 되는데, 『젊은 모색』展은 바로 그 현장인 것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권오상 Gwon, Osang 權五祥(1974- )은 2차원의 평면 이미지로 인식되는 사진을 조각과 결합시키면서 잘 알려진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실재를 재현하는 데 있어 사진을 이용하지만, 어떠한 대상을 포착한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대상의 각 부분을 촬영하고, 인화한 후 그 사진을 가지고 조합하여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어 나가는데, 이러한 결과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변형된 모습으로,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더 플랫 Flat」시리즈는 사진조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잡지책에서 오려낸 낱장의 이미지들은 평평하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바닥에 펼쳐져서 다시 카메라에 포착된다. 이러한 작업은 어떠한 것이든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마치 오려낸 종이는 평면이지만, 나름대로 부피와 무게를 지니고 있으며, 다시 사진으로 만들어진 결과 역시 조각처럼 부피와 무게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2차원과 3차원의 경계를 초월하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 「더 플랫 Flat」이다. ● 또한 이 시리즈는 이미지의 진실성이라는 문제에 있어서도 물음을 제기한다. 너무나 생생한 이미지와 그림자를 사진 속에 등장시켜 과연 어떠한 이미지가 대상의 리얼리티를 담아 내고 있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잡지에 실린 이미지, 작가가 발견한 이미지, 다시 전체적인 조합으로 나타난 이미지들 사이에는 시공간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로 인해 이미지의 진실성은 더욱더 혼란스럽게 된다.
이형구 Lee, Hyungkoo 李炯玖 (1969 -)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특정한 실험실이 아니라 작가가 창조한 자신만의 실험실을 선보였었다. 실험실은 아주 특수한 장소로 각종 실험 기기들로 가득 차 있다. 온통 흰색뿐인 실험실 공간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무자비한 상상이 가능하게 되며, 그 대상은 이 실험실에서 무조건적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또 다른 상상을 낳게 한다. 「HK-LAB」 연작은 작가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며, 이룰 수 없는 꿈에 대한 집착의 결과라는 느낌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내러티브의 과정 속에서 그 대상이 인간임을 확인한 순간 육체에 대한 실험은 개인의 무한한 욕망을 담아내는 과정으로 표현된다. 더욱이 실험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종 기기로 둘러싸인 대상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고, 무표정하면서 분장까지 한 몰개성적인 얼굴이다. 이는 실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없게까지 한다. 또한 이러한 얼굴은 미에 대한 병적인 집착, 그리고 성형에 대한 끝없는 욕구를 반영하기도 한다. ● 작가는 이번 전시에 「호모 아니마쿠스」라는 작품을 통해 해골을 선보인다. 언제 어디서 죽은 이의 해골인지 모르지만 검정색의 공간 속에 그저 덩그러니 나와 있다. 마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박제품처럼 혹은 해부학 교실에서나 보았음직한 기형적인 모습이다. 특정 부위가 두드러지게 크게 나타나 있고, 없는 부위도 있어 인위적으로 만든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생명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해골의 모습, 그리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구별할 수 없는 모습은 해골의 물성만을 강조할 뿐이다. 더욱이 공간을 검은 색으로 칠해 어느 장소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더욱이 검은색의 공간은 이 곳이 어디인지 조차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마치 죽음이후 맞게 될지 모르는 암흑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 이러한 골격구조 가진 원래의 신체모습을 상상하게 되면, 이 작품이 실제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변형된 신체는 만화 캐릭터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작가에게 만화캐릭터는 변형된 신체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존재 중 하나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신체의 변형과 기호화라는 주제를 예전의 직설적인 방법이 아닌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조습 Jo, Seub 趙濕 (1975- )의 작품은 영화의 스틸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시리즈 사진을 통해 가상으로 자전적 이야기를 엮어낸다. 그의 작품은 영화처럼 보이지만 비디오와 사진의 중간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고, 각 장면이 일순간 포착되어 사진의 역할을 할 정도로 독립된 구도를 가진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은 영화라기보다는 사진의 연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그의 작품에 담긴 내용은 어떤 이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듯이 보이지만 이는 허구일 뿐이다. 그의 작품들은 기억을 되살리는 요소를 제공하면서 관객의 기억과 교차되고, 동시에 관객이 향수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한국 현대의 정치, 역사와 사회의 상황을 과장하여 재현하는데, 군데군데 추억을 되살릴만한 물건과 특정한 문화적 현상을 삽입하여 노스탤지어를 더욱 강하게 추구한다. ● 그가 재현하는 상황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어두운 면을 담아 내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집단, 절대권력, 민족주의와 같은 이념의 우월주의에 상처 받는 평범한 개인의 삶에 주목한다. 격변하는 역사와 사회 안에서 어쩔 수 없이 부정해야 했고, 무시되었던 자아에 대한 성찰인 것이다. ●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의도를 심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평범한 개인을 다루고 있기에 코믹한 상황과 저속한 말투를 담아 역설적으로 표현해 촌스럽고, 저급하고, 싸구려같이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표현은 우리 사회의 전체주의에 반항하는 작가 특유의 저항 의식이다.
천성명 Cheon, Seongmyoung 千成明 (1971- )의 「길을 묻다」라는 작품은 집과 집 안의 인물을 다루고 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그 안이 보이므로 불안하다. 마치 그 집에 있는 인물조차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든다. 그 집을 들여다보는 사람과 그 안에 있는 인물의 그림자는 크게 보인다. 사람이 집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사람과 집이 지배하는 듯한 거대한 그림자가 된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지만 어디서 나는지는 모른다. 집 위에 휘영청 달만 떠 있을 뿐이다. ● 작가는 평범한 일상의 행위를 포착하여 상황을 만들어 냄으로써 관람객들로 하여금 일상에 대한 낯선 경험을 체험하도록 한다. 그의 인물은 흑백으로 표현된다. 그 인물의 모습 아무리 사실적으로 표현되더라도 관람객들은 이미 그 인물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알아챈다. 그러한 인체 조각과 설치물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통일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는 삶의 한 단면 혹은 기억의 한자락을 연상하도록 한다. 더욱이 이러한 설정은 단순하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의 부분을 클로즈업하여 인물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감정을 과장하여 극대화하여 나타낸다. ● 인간의 삶을 함축적이며 상징화하고, 극대화하는 과정은 작가의 작업의 중요한 특징인데, 이는 나아가 문학적인 상징성과 은유를 내포하여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듯하다. 작가는 현실과 초현실이 뒤섞인 혼란스러운 세계를 보여 주어 소외된 존재, 잃어버린 존재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한다.
박혜성 Park, Hyesung (1968-)의 작업은 미술과 마술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 역시 그러한 작업을 보여 주고 있다. 3면의 거울에 영상이 끊임없이 비친다. 한 면에서는 문이 열리고 닫히는 반복적인 행위가 계속 되며, 그 동안 다른 한 면에서는 사람이 계속 들락날락한다. 이러한 영상와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는 마치 숨은 그림 찾기의 그림처럼 조금씩 달라지게 된다. 비슷하게 보이는 이미지가 반복되면서 관객은 이미지들의 차이점이 어떤 것인지 더 나아가 진짜 이미지는 어떤 것인지 혼돈하게 된다. ● 거울은 자기를 들여다보고, 확인하는 물체이지만 자기 과시와 허영의 상징물로도 알려져 있다. 거울은 진실을 닮은 또 다른 진실을 숨기거나 혹은 반사해서 나타내기도 해 어떠한 대상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작품은 3면으로 이루어진 거울과 영상을 통해 일종의 눈속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동시에 관객들에게 낯선 상황을 경험하게 한다. ● 이 작품은 거울과 영상 그리고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듯이 보이는 소재들을 함께 나열함으로써 단순한 의미의 낯선 체험이 아닌 환영, 꿈의 세계를 체험하도록 한다. 거울은 환영을 솟아나게 하는 매개체라는 점에서 꿈과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 작가의 의도는 공작새와 마술상자를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물건들은 마치 초현실주의 그림을 3차원으로 옮겨놓은 듯이 보이는데, 공작새는 자만과 허영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더하고 있다. 크기가 축소된 마술상자에는 사람이 아닌 나무가 들어 있어 비현실적인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이러한 상징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이용하여 상징과 암시, 실제와 허구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또한 서로 다른 이미지들의 조합들이 일정한 공간 안에서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 방식은 연극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마술사의 퍼포먼스를 보는 듯하다.
황혜선 Hwang, Haesun 黃惠善 (1968- )은 「Still life」라는 제목 아래 정물을 다루어 왔다. 흔히 볼 수 있는 색색의 그림이 아닌 정물 그림을 그린 여러 겹의 유리판을 끼운 작품과 흰색 캔버스 천으로 제작한 3차원의 정물 작업이다. 그런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미술의 본질에 대해 심오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은 3차원의 고요한(still) 정물로서 특정한 정물의 이미지를 다룬 것이 아니라 정물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다. 마치 정물의 유령처럼 그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물의 이미지를 따를 뿐이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거대한 흰 벽에 드로잉을 한다. 이러한 벽 작업은 몇 차례 진행되었는데 「정물 Still life」과 전혀 다르게 보이지만 실상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작업이다. 즉 정물 그림을 3차원의 조형으로 옮긴 것이 「정물 Still life」이라고 한다면 흰 벽 작업은 정물 그림을 3차원의 공간으로 확대한 것이다. ● 직각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에 흰 색의 선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공간에서 관람객은 낯선 체험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는 잡지에서 따온 것이다. 어떠한 이미지가 거대한 흰 벽에 나타난다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의 시야를 압도할 것이다. 그러나 그저 작은 이미지가 큰 흰 벽에 확장되어 나타날 뿐 흔들리기 쉬운, 비어 있는 이미지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이미지가 잡지에서 차용한 사실에 주목하자. 잡지 속의 이미지는 이미 그것의 원본과 다를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흰 벽 위에 그려진 이미지는 이미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손에 잡힐 듯한 이미지가 거대한 공간에 위치하게 됨으로써 그것은 이미 풍경이 되어 버리고,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된다.
양아치 Yangachi (1970 -)는 웹 작업으로 온, 오프라인 공간을 모두 사용하는 작가이다. 스스로 양아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작가는 여러 개의 사이트를 운영하는 프로그래머이며, 동시에 중국 로봇 전시를 직접 기획하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작가는 이미 이전에 「양아치 조합」이라는 전시를 통해 인터넷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쇼핑 사이트와 같은 형식의 온라인 작업을 보여 주었다. 이 사이트는 환율 정보, 통화지수를 실시간으로 알려줄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어 마치 실제로 존재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터넷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는 사실 실제 작품 혹은 실제 이미지가 아닌 허구의 이미지이다. ● 이번 전시에는 하이퍼마켓을 선보인다. 전시장 내에서 관람객들은 컴퓨터 영상을 통해 브랜드와 상품 이미지를 보게 되는데 마치 가상의 슈퍼마켓에 들어와 있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전자 매체가 발달할수록 상품 이미지 혹은 브랜드 네임이 가지는 중요성은 더욱 커지게 되는데, 사실 이러한 현상은 실제 상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온라인의 편리함이 오프라인, 즉 우리의 현실 생활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수퍼마켓에서 보고 있는 상품은 상품 그 자체가 아니라 이미지만 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이미 하이퍼마켓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물리적인 공간인 전통적인 시장 개념에서 벗어나 있으며, 거대한 공장, 산업의 몽타주처럼 변하고 있다. 이는 조만간 우리의 미래에 닥칠 새로운 풍경이며, 만약 수퍼마켓을 가더라도 우리는 실제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가치만 구입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 작가는 이러한 미디어가 지나친 상업주의와 소비주의를 조장하고 있으며, 전자 미디어가 꿈꿀 수 있는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목표를 도외시한 채 개인의 일상 생활을 조정하고 규제하는 현실을 고발한다. ■ 국립현대미술관
Vol.20041231c | 젊은 모색 2004展_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