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 & 중심

구조적 주제와 중심 ● '구조적 주제와 중심'에서는 작품구조를 좌우하는 주제와 중심 간의 관계를 조명한다. 작품을 보는 것은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해석하는 일종의 능동적 탐색 행위다. 일순간에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의 경우는 어느 정도 탐색의 시간이 필요한데 감상자는 이러한 시간 속에서 주제가 구조 속에 어떻게 동화되어 표현됐는지 작품상의 여러 주요 중심을 수집하면서 그 의미를 파악하게 된다. 3부에서는 그림 전체의 주요 축으로서 다양한 자극 패턴들을 구조화하는 구조적 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감상자의 주의력에 구조적 주제가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홍성담_신몽유도원도_캔버스에 유채_290×900cm_2002

홍성담 ● 홍성담의 「신몽유도원도」는 "인간과 세계의 일치와 억압과 고통으로부터 해방을 지향하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평화지향적인 활동"인 동북아시아적 휴머니즘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림은 가운데 아기를 중심으로 크게 왼편과 오른편, 두 이야기로 나뉜다. 먼저, 오른쪽 이야기 부분을 보면, 맨 왼쪽의 붉은 망토를 걸친 존재가 파시스트다. 칼이 무수히 꽂혀 있는데, 이는 정화의식인 부정풀이의 의미를 담은 이미지이다. 부정풀이의 효험이 있어서인지 파시스트로부터의 미사일과 더불어 내장들이 아래로 쓸려 내려오고 있다. 파시스트 곁에는 속이 기계로 된 허수아비가 죽은 돼지와 수간(獸姦)을 하고 있다[돼지 등 동물 이미지는 고구려 벽화의 육고(肉庫) 그림에서 따왔다.]. 그 허수아비의 머리에서 꿈처럼 풀어져 나오는 세계는 기괴한 몬스터의 세상이다. 화면 왼편에는 밥을 든 거대한 여신상이 서 있다. 여신의 얼굴을 찢고 호랑이가 나오는 것은 전통적으로 이 동물이 음의 세계를 앞장서서 대변하기 때문이다. ... 여신 곁의 벌거벗은 여인이 고통 중에 아기를 낳고 있는데, 그 아기의 머리로부터 삶과 죽음, 사랑과 투쟁의 대하드라마 같은 꿈이 굽이굽이 펼쳐져 나온다. 허수아비의 꿈과 아기의 꿈이 만나는 곳에 푸른 초장이 펼쳐져 있고, 그 위에 어린 바리데기가 누워 있다. 바리데기 무가에 따르면, 불라국 오귀 대왕과 길대 부인의 일곱째 딸인 바리데기는 부모로부터 버려졌을 때, 눈과 코, 입에 벌레가 가득했다. 지금 아기의 몸 위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은 그 전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근원적이고 자연적인 생명의 흐름과 문명과 테크놀로지의 흐름이 맞부딪힌 곳에 누워있는 바리데기.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해 일도양단(一刀兩斷)하려는 모든 이념과 가치가 벽에 부딪친 오늘, 삶도 죽음도 하나의 순환원리로 품어 안으며 문명의 쓰레기조차 생명의 원력으로 재생해내는 동북아시아의 오랜 상상력이 이제 기를 펼 차례라고 그림은 말한다. 바라데기 무가가 일러주듯 자신을 버린 부모를 구하려고 온갖 고초를 감내한 바리데기의 사랑과 '패션(passion)'이야말로 문명을 구원할 진정한 에너지다._2004 개인전 도록에서 발췌

데비한_미의 조건Ⅱ_청자_중앙설치, 각 33×15×18cm_2004

데비한 ● 여성들의 미(美)에 대한 갈망은 전인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되어 왔다. 또한, 앞으로도 인간사회가 지속되는한 이러한 추구는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사회구조는 그러한 미적 추구가 단지 여성의 본질적 성향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산업화되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소비 광고·매체의 문화를 통해서 여성들에서 미(美)에 대한 추구를 끝없이 강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 살아남기 위해서 여성들은 힘겨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능력 없는 남성들이 사회에서 인정을 못 받는 것과 같이 못생기거나 비만인 여성들 또한 인정받지 못한다. 따라서 여성들은 표준화된 아름다움만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사회현실에 맞추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그러한 미의 기준은 점점 서구화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듯, 서구적인 미다. 이는 자신의 고유한 외향과 개성을 가꾸지 못하게 하거나 무시하게 한다. 이번 작품은 바로 현시대 한국의 문화 현실 속에 희생당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그린 것이다.

최호철_93년 노동자 대회 날_종이에 혼합재료_200×80cm_1994

최호철 ● 최호철의 작품은 일견 우리 주변에서 흔히 봄 직한 일상의 풍경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서민과 노동자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그는 원근법을 도입하여 주제를 부각시킨다. 이는 그의 그림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앞의 부분에 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처럼 작가는 근경, 중경, 원경으로 화면을 구분하고 근경에 자신의 의도를 사실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작품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93년 노동자 대회 날'은 1993년 11월 열린 노동자 대회 중 전날 전야제를 치르고 효창운동장에서 여의도로 가두행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휴일의 공덕동 달동네의 주민들의 시선을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건설했으면 하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같은 맥락의 '우리 사는 땅'은 창신동 일대의 달동네를 중심으로 바라본 청계천과 강북중심가를 재구성한 것이다.

박은선_Two People_종이에 사진, 테이프, 카본, 라이트 등 혼합재료_46×64cm_2003

박은선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보이지만 혹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에는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와 공간들이 많이 있다. 박은선은 이렇게 실재하나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존재와 공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다.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공간과 그 공간존재의 이중적 개념들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고 있다. 「Two Doors」에서의 라인 테이프는 현실을 가상과 이어주는 공간의 조율사로서 평면을 입체화시킨다. 라인 테이프 하나하나에 의해서 명확히 구분되는 공간의 허상과 실상은 다시금 라인 테이프의 선 하나하나에 의해서 그 경계가 허물어지며 나아가 인간 사고의 벽을 허무는 역할을 한다. 선의 이중성, 다시 말해서 선하나에 의해서 만들어진 경계는 경계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선에 의해서 다시금 스스로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실재와 가상이 하나로 통합되는 공간 이미지로 재탄생되는 것이다. 여기서 거울은 자체 평면이면서 깊이와 연속성을 지니며 공간과 존재의 실재와 허상 그 이중적 이미지를 극대화시킨다.

윤석남_블루 룸_나무에 아크릴_가변크기_2004

윤석남 ● 남성중심사회에 길든 여자의 몸과 정신은 늘 허공에 떠돌고 있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상의 세계에 대한 꿈은 잃어버리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불리길 원하는 윤석남은 한국에서의 어머니의 삶, 여성의 삶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업을 한다. 작품은 여성과 남성이 같이 어울리는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번 작품의 외형적 큰 특징인 길게 늘어진 팔은 삶의 적극적인 의지를 상징한다. 조형적으로도 온 세상을 감싸 안을 듯한 기세다. 이 여인의 팔은 일면 과장되어 보이지만 자신을 드러낼 듯 말 듯하면서도 속내의 강한 의지를 담아내고 있는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을 작가만의 독특한 조형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 서민석

Vol.20041226c | 구성 & 중심-구조적 주제와 중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