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과 중심 ● '균형과 중심'에서는 '테두리와 중심'에서 나타난 두 공간 체제인 하나의 중심을 강조하는 중심적 체제와 그 중심적 체제를 거부하는 탈 중심적 체제, 두 체제가 작품에 공존하면서 상호작용하여 이루는 균형과 질서의 경향들을 살펴본다. 작품 속에서의 선과 색, 형태들이 서로 간에 어떻게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지를 볼 수 있다.

이강소_섬에서-04004_캔버스에 유채_182×227cm_2004

이강소 ● 작가 특유의 운필이 화면의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는 「섬 시리즈」는 무채색을 바탕으로 선들 간에 혹은 선과 형들 간의 균형을 통해 자연의 조화를 시사한다. 작품에서의 획은 화면 전체를 구성하는 주요한 조형요소다. 획들은 각각 운동감을 불어넣는 역동적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획들과의 관계를 통해 혹은 볼륨을 연상케 하는 획의 일련의 관계를 통해 균형을 이룬다. 여기에서 획과 얼룩은 물과 산, 파도와 구름 그리고 비와 폭풍우 같은 자연적인 요소들을 상징한다. 이에 추가되는 오리나 집처럼 알아보기 쉬운 형태들은 모호한 공간에 이야기를 던져주는 단서 역할을 한다.

정종해_금강예찬1(金剛禮讚1)_종이에 수묵_200×533cm_2003

정종해 ● 가까이에서 접한 화면의 획은 강한 운동감을 주면서 거칠게 이루어져 있어 혼란스럽다. 하지만, 거리를 두고 본 화면은 어느덧 획들 간에 상호작용하여 리듬감을 주면서 산의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균형을 이룬다. 전경의 두 개의 큰산은 강하게 시선을 잡아당긴다. 이어 중간 부분의 풍경과 원경의 풍경이 차례로 시선을 끈다. 이러한 깊이 표현은 당장 보이는 전경의 강한 인상을 순화시켜 전체적인 조화와 균형을 이끌어 낸다. 여기서 중경의 산들은 전경에서 오른쪽 부분에 다소 치우쳐지는 긴장감을 화면의 중심으로 다시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백철수_획_청동_54×88×24cm_1996

백철수 ● 백철수의 작품은 서체 속에 내재해 있는 획으로부터 전이된 입체 형태들이다. 마치 3차원 공간에 큰 붓으로 획을 그어나간 듯하다. 조각으로서의 이러한 획의 표현은 어느 정도의 볼륨을 통해 구현되었다. 획이 가진 섬세하고 평면적인 미를 3차원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운필로서의 힘의 강약은 균형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그는 획의 2차원적 개념을 3차원으로 옮기면서, 쓴다는 것과 표현한다는 것의 합일(合一)을 시도하였다.

홍승남_존(存)_스테인리스 스틸_188×288×55cm_2004

홍승남 ● 홍승남의 '존(存)'은 원과 사각의 단순하고 압축된 형상으로 구성한 조형물이다. 이 작품은 두 개의 변형된 원과 사각으로 구성된 기하 형태의 작품이다. 비대칭으로 배치되는 원의 형상이 중앙의 사각과 대비되어 배열되어져 있어 색다른 균형미를 보여준다. 원과 사각의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의 형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상징한다. 형태들의 단순함과 생략된 압축이 사람들이 일컫는 모난 것과 둥근 것이라는 사회적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홍승혜_유기적 기하학_알루미늄에 폴리아크릴우레탄_각 60×83cm_2004

홍승혜 ● 대칭적 구도를 하고 있는 '유기적 기하학'은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의 픽셀(pixel)을 근간으로 한 기하학적 형태의 생성방식과 그 형태들이 구축하는 건축적 공간에 대한 관심의 표출이다. 컴퓨터의 픽셀들을 벽돌처럼 쌓아올려 재현되는 다양한 기존의 기하학적 형태들은 축소와 확대, 미시와 거시, 질서와 파격, 순열과 조합, 논리와 우연 등 가능한 모든 이율배반의 유희를 통해 교란되고 증식된다. 홍승혜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연 파괴적 기계문명으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을 포용하고 있다.

황혜선_정물_유리판에 실크스크린_설치_2004

황혜선 ● 균형은 크고 작은 사물들이 만나면서도 형성된다. 황혜선은 사물들 간의 중첩에 의한 부분적인 시각적 소멸을 통해 나타나는 긴장감을 이용한다. 사물의 형태들이 겹쳐질 때, 겹쳐진 형태의 불완전성이 만들어낸 긴장은 우리로 하여금 운동감을 지각하게 한다. 황혜선은 이처럼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사물들을 반복하고 반복해서 중첩에 의한 역동성을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감상자로 하여금 사물에 감정이입을 하여 마치 우리 인간들의 삶의 공간인양 사물들이 만든 공간을 느끼게끔 한다.

권옥연_귀향_캔버스에 유채_148×180cm_1990

권옥연 ● 화면의 구조는 색과 면, 볼륨과 벡터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각기 다른 사물들과 색 그리고 벡터들은 전체적으로 균형 되어 보인다. 이는 색과 형태들이 적절한 비율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균형은 색과 사물이 갖는 무게감과 사물의 위치와 그것에 대한 관심, 그리고 군집화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것들이 회화적인 균형을 통해 구현되어 마치 필연적인 결속으로 나타나 보인다. 이러한 균형감은 인간의 경험 이전의 근원적 감정과 작가가 체험한 감정에 충실해지려는 작가의 의지를 바탕으로 한다. ■ 서민석

Vol.20041226b | 구성 & 중심-균형과 중심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