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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민미술관 서울 종로구 세종로 139번지 Tel. 02_2020_2055 ilmin.org
안수진의 작업은 움직이는 조각작업이다. 움직이는 조각이라면 키네틱아트를 떠올리게 되는데, 움직이는 현상에 주목하는 일반적 키네틱아트와 달리 안수진식 키네틱의 움직임은 주관적이고 주체적이다. 기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작가의 생각이 움직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 예전에 만났던-그렇다. 봤던 것이 아니라 만났던 것 같다- 안수진의 「자벌레」는 바로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세상의 번잡함과는 상관없이 한 길을 고집하며 묵묵히 앞을 향해 끊임없이 자신의 몸을 팽창, 수축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그때!」라는 작업은 흔들의자 위에 앉아 길고 긴 노를 저으며 위태위태한 모습으로 평형감각을 잃지 않으려는 작가의 투영체다. 「위험한 사랑」은 어떠한가. 기계로 사랑을 표현하다니... 낚싯대를 가지고 하트 모양을 그려내는 작가의 마음에서 익살스러움까지 엿본다.
안수진의 작업은 모터장치까지 달고 있는 기계임에도 불구하고 생명력과 감수성을 지닌 따뜻한 존재로 다가선다. 작가는 이 단계를 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풀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 이후 작가는 사회적 문제, 즉 현대사회가 낳은 정치적 문화적 오류들에 대해 관심의 영역을 넓힌다. 작가 내면의 서사에서 한 걸음 나가, 밖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임으로써 새로운 변화와 시도를 전개한다. 아니다. 어쩌면 이 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386세대로서의 작가에게 20년 전의 사건은 이미 그때부터 작가의 머리에, 마음에 맴돌았을 테니까.
이번 전시의 'stereo 수조'는 박종철의 이야기다. 아카펠카 풍의 'Mr. Sandman' 음악과 물 속으로 처박힌 확성기에서 나오는 "몰라! 몰라!"라는 외침의 충돌은 서로 다른 주장의 집단 사이에서 느껴지는 슬픔이다. '메트로놈'이라는 작업에서도 확성기의 형태가 보여진다. 그러고 보니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의도는 확성기에 담겨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타인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을 크게 알리는 확성기 말이다. 일정 정도까지는 상대에게 유익한 존재이지만, 지나치면 없애고 싶은 쓰레기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마련된 장치인 기계문명이 그 장점에도 불구하고 벗어나고픈 필요악으로 존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 이번 전시「메트로놈」은 우리 사회에 장치되어있으나, 그러나 보이지는 않는 어떠한 규칙들에 대한 안수진의 서술이다. 따뜻한 기계미학은 이제 문명에 비판적인 허무주의로 흐른다. 인적(人的) 네트워크가 수월해진 현대사회에서 오히려 인적(人的) 소외감을 느끼는 현실은 아이러니다. 안수진이 움직이는 조각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은 관객 자신, 우리 자신이 바로 지금 경험하는 현실의 모습이기도 하다. ■ 김희령
Vol.20041219b | 안수진 비디오&키네틱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