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217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화~금요일_11:00am~07:00pm / 토,일요일_11: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정미소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17번지 객석빌딩 2층 Tel. 02_743_5378
모든 것들은 움직이며, 살아있다. 빠르게 오고 간다. 모두가 눈앞으로 다가왔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진다(disappear). 모든 일들은 기이한 침묵 속에서 일어난다. 사람들의 미소에는 생명이 없다. 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하고 눈치채지 못할 만큼 빠르다. . 눈 앞에서 삶이 파동친다. 언어를 상실하고 색의 스펙트럼을 박탈당한 적막하고 황량하며 우울한 회색 삶이다._막심 고리키_뤼미에르의 첫 영화들을 관람한 후 ● 뤼미에르 형제는 에디슨이 발명한 상자 안으로부터 영화를 끄집어냄으로써 20세기 문화를 주도할 볼거리 장치를 발동시켰다. 이후 영화라는 움직이는 그림자는 하얀 평면에 오랫동안 정박하게 된다. 그곳은 무수한 시선과 욕망이 정박하는 특별한 공간이 된다. 뤼미에르의 첫 시도가 이루어질 무렵부터 착시현상은 새로움에 현혹되어 배회하는 시선을 영화화면이라는 가상적 공간으로 흡수한 것이다. 어둠에의 침잠과 그림자에 대한 집중은 르네상스 이후 발달한 집중적이고 고정적인 시선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한다. 이른바 영화적 시선이라는 심리현상의 태동인 것이다.
고정된 시선은 어둠 속에서 환영을 받아들인다. 갑자기 기차가 당신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든다. 조심하라! 당신이 앉아있는 어둠 속으로 뛰어들어와 당신을 뼈 부스러기와 살 조각을 머금은 채 난도질당한 피부 주머니로 격하시키고 와인, 여인네들, 음악과 악덕으로 가득 찬 이 건물을 파편과 먼지로 변형시킬 듯한 기세이다. 그림자의 유혹은 화려하다. 고리키는 뤼미에르의 영화를 보면서 자신이 체험하는 새로운 장치가 움직이는 사진에 불과함을 인식하면서도 잠정적으로 그러한 이성적 믿음이 사라지는 순간을 민감하게 포착한다. 화면 속의 기차는 그림자에 불과하지만, 의식은 방심을 틈탄 그림자의 힘에 끌려 불확실로 미끄러진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기차의 위협은 순식간에 공포스런 위엄을 확보한다. 물론 아주 짧은 순간에 발생하는 일이고, 그 여파는 곧 사라진다. 하지만 이는 물론 그림자 기차이다. 고리키는 기차가 완전히 정차하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는다. 육중한 공포로부터 관람객을 구출해주는 것은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자각이다. 이러한 의식의 머뭇거림을 허구라 할 수 있다.
사실 뤼미에르의 영화에서 순수한 경이감이 비로소 시작될 때는 그림자가 돌아온 이후이다. 기차가 도착한 후 약간의 분주함으로 가려진 어중간함, 벽이 허물어지고 난 후의 시간의 진부함, 보트가 해변에서 멀어져 갈 때의 쓸쓸함. 약속된 볼거리는 이미 제공되고 영화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순간이다. 뜻하지 않은 충격의 파장이 다가오는 것은 이 순간이다. 삶의 쾌락을 이미 모두 체험하고 나서 더 이상의 기대감 없이 순간순간을 지켜보는 쓸쓸함 내지는 초연함이랄까. 찌꺼기 프레임들이 만드는 착시현상은 순수한 동작 그 자체로서의 즐거움을 주면서도, 동시에 쾌락 속에 내재하는 욕망의 한계를 내보인다. 볼거리와 극적 의미가 실종된 순간에는 짧게나마 어색함과 지루함, 그리고 막연한 상서로움이 표류한다. 이 프레임들의 움직임에는 체념으로 미처 승화되지 않는 욕망의 파편이 잔재한다. 그러면서도 무의미의 심연으로 통하는 통로가 감추어져 있다. 영화는 결국 비자발적 상상, 즉 허구를 미끼로 하여 부재와 상실의 함정으로 빠져들게 하는 장치이다. 모든 영화에는 이 가상적인 부재의 효과가 녹아있다. 억압되기도 하고, 돌연 화면 밖으로 스며 나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모든 영화는 뤼미에르 영화의 리메이크이다.
설치전시 『실종』은 뤼미에르 형제의 첫 영화 중 한 편인 기차의 도착을 재구성한 작업이다. 뤼미에르 영화 속에 잠재된 욕망의 파편들을 재료로 하여, 카메라, 프로젝터, 평면적 화면, 모니터 등 영화적 장치들과 미니추어 모델들이 하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뤼미에르 형제가 에디슨의 카네토스코프로부터 활동사진을 꺼내었다면, 『실종』은 뤼미에르의 평면적 화면으로부터 부재이라는 가상적 효과를 입체적인 공간으로 꺼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비디오 아트가 영화장치를 해체했다면, 『실종』은 해체된 영화장치를 재구성한다. 1960~1970년대의 확장영화가 영화의 허구성을 파괴했다면 실종은 그 유령을 불러들인다. ● 고전적 극영화에 체계적인 구조와 총체적인 질서가 작용한다면, 『실종』에는 반복과 변형만이 산재한다. 다시 말하면, 실종의 이야기 장치는 한 고정된 점으로 시점을 정박시키거나 하나의 이야기로 일률적인 의미체계를 만들지 않는다. 이야기는 이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장치를 유령처럼 맴돌 뿐이다. 부재의 유령이랄까. 어쩌면 영화를 통해 체험하는 부재와 상실은 인간의 근원적인 존재형태에 대한 단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실종』에는 실존과 부재, 집중과 분산, 믿음과 허영, 환영과 반환영이 공존한다. 모든 극영화들이 그러하듯 말이다. 영화기호학자들도 밝혔지만, 이러한 모순적 양립이야말로 뤼미에르 형제의 진정한 발명이자 곧 영화장치의 본질이다. 이 작업이 확장하는 것이 있다면, 이러한 영화의 모순적 이중성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실종』은 극영화이다. 여기에는 뤼미에르의 유산이 무의식처럼 존재한다. 삶의 생동감과 지루함이 중복된 형태로 존재한다. 『실종』은 분열된 시선과 욕망의 파편 속에서 부재의 흔적을 쫓는다.
뤼미에르에 대한 첫 시선, 영화에 대한 인류의 첫사랑의 감흥을 재구성하는 노력은 일종의 시적인, 하지만 지극히 허구적인 우아함을 갖는다. 그런 면에서 이 작업은 다분히 멜로드라마적이다. 초심의 기억을 더듬는 이유는 우아한 표류를 갈망하기 때문은 아닐까? ■ 서현석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주최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메트릭스A』에 갤러리 정미소가 참여하게 됨으로써, 기획한 영상설치전이다. 작가 서현석은 여러모로 정미소에서 기대하는 전시개념을 충분히 채워주고 있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는 즈음에, 현실의 질곡들로부터 잠깐의 관조와 대화를 꿈꿀 때, 이번 전시는 관객들의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끌어내리라 본다. ■ 갤러리 정미소
Vol.20041216a | 서현석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