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스페이스 셀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1215_수요일_05:00pm
스페이스 셀 서울 종로구 삼청동 25-9번지 Tel. 02_732_8145
20여 년 간 다녔던 오지문명권과 나를 반겨주었던 도마뱀 / 정치인들과 돈세탁, 정수일 교수와 국적세탁 / 9.11과 이라크(IRAQ)의 공화국 수비대 / 지율스님과 천성산 도롱뇽 / 이모든 것들의 아우름과 함께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 신현중
역사를 넘어 사고의 진화를 꿈꾸다 ● 시간과 자연, 그리고 흔적에 관하여 ● 세계적인 인류학자이자 구조주의의 대가인 레비-스트로스는 '예술만이 사회를 진화시킨다'고 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예술은 역사를 진화시키는 주체라는 것이다. 예술을 아직도 아름다운 관상(觀賞)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거창하고 조금은 냉소 짓게 하는 명제일지 모른다. 과연 예술이 사회를 진화시킬 수 있을까? 게다가 요즘처럼 기술과 과학이 급진적으로 사회변화를 주도하는 때에 예술과 사회변혁이라니, 왠지 어울리지 않는 짝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진정한 변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선 예술적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그 상상의 우물을 자연과 생물, 고고학과 인류학 같은 주제에서 발견하는 작가 신현중은 과거를 연구함으로써 미래를 준비하는 특이한 시각으로 우리를 자극하며 레비-스트로스의 명제를 가시화 한다. ● 신현중은 아프리카를 다섯 번 이상 여행하고 케이프타운부터 카이로까지의 종주를 계획하는 아프리카 문화의 전도사이면서 개인으로서 고대 메소포타미아 유물을 가장 많이 모은 소장가이기도 하다. 그의 조각 작품은 인류 시원(始原)에 대한 깊은 관심에서 출발하더니, 문화와 자연을 아우르고, 선사와 역사를 넘나들며 21세기 인간의 현실을 지적한다. 그는 문명의 축에 놓인 조각가, 미술가이다. 그러나 문명 뒤에 존재하는 자연파괴나 자연에 대한 몰이해를 경계한다. 인간과 문명의 근원은 바로 자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 작가는 실제 균류-곰팡이-의 번식을 미술관 안으로 끌어들이거나, 단세포 생물부터 퇴화되거나 멸종된 동물을 다루는 생태학적 범위까지 재료와 내용에서 다양함을 선보인바있다. 그러나 다양함 뒤에는 '자연'의 힘과 생명의 근원에 관한 일관된 의식을 볼 수 있었다. ●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순례(巡禮)의 여정이 숨어있다. 오지와 같은 공간적 여행과 선사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적 여행은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변화시켜왔는지, 그리고 미술이 거기에 어떤 '더하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오랜 고찰이었고, 그것은 전시로 다시 드러난다.
도마뱀의 추억 ● 도마뱀은 신현중에겐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적으로 그가 자연과 만나는 곳에서 언제나 가장 먼저 그를 반겨준 것이 도마뱀이었다. 그것은 작가를 보호해주는 마스코트이자 영물이다. 또한 도마뱀은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고 온전한 곳에서 서식하는 일종의 환경의 척도(barometer)이다. 온전한 생태계와 자연의 기준이 된 도마뱀은 언제부턴가 작가의 상징이 되었다. ● 이번 전시에서도 도마뱀은 전체 작품의 주제이자 아이콘이다. 공간 속으로 튀어나온 6마리의 거대한 도마뱀이 이룬 피라미드는 공간에 입체적 힘을 주는 고전적 탑의 위력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돌 사이를 기어다니는 도마뱀은 원시적, 이국적 감성을 자극하며 뭔가 낯선 곳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 가장 큰 「평화세탁」은 한국의 지리적, 정치적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데, 꽃이 핀 무궁화 동산에 거대한 도마뱀이 반대편의 한 마리의 초록 도마뱀과 상응하는 모양이다. 무궁화동산을 이루는 요소는 문자 그대로 '평화'와 '무궁화'이다. 바닥에는 무궁화표 세탁비누가, 도마뱀 몸통을 가득 매운 평화표 탁구공이 모두 평화와 화해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런 일상용품들은 오히려 현실과의 거리를 상기시키는데, 무궁화로 대표되는 한반도엔 여전히 평화나 자유가 모호하게 정의되고 그 개념들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 자유와 평화의 상징위로 기어 나오는 도마뱀은 복식 재단용 나무곡자로 겉을 얽어놓아 속이 들여다보인다. 탁구공으로 속을 채운 도마뱀은 원형에서 분리된 듯, 지극히 가볍게 본래의 느낌을 벗어난다. 남과 북, 진실과 거짓, 자연과 인간, 역사와 문명, 관념과 실체 같은 이분법적 대구의 구조 속에서 극복의 주체로 상징성을 띠는 도마뱀은, 측량되고 산술적으로 가려진 채, 우리의 현 문명 수준에 의해 제한 받는다. ● 작가는 거대한 형상과 거대한 개념들을 병치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바닥에 깔린 무수한 빨래비누는 세탁을 의미하는데, "돈세탁"이란 조합어가 정치적, 사회적 스캔들이자, 부정의 대표적 관행이 된 것을 생각하면 이 비누의 역할도 단순하지 않다. 돈세탁처럼 자유나 평화라는 개념도 세탁될 수 있을까? 본래의 관계를 지워내는 정치적 개념 '세탁'을 선택한 작가는 평화나 자유 역시 이데올로기로서 왜곡된 이미지를 갖는 것을 지적한다. 일상용품의 수준으로 떨어진 이들 거창한 개념이 과연 인간을 얼마나 윤택하게 하는가? 「평화세탁」에는 이처럼 정치부터, 미술까지 많은 '읽을거리'가 숨어있다. ● 물론 이런 읽기의 텍스트로서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다. 관객들은 작가의 주장과 사유의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동참할 것을 요구받는다. 관객이 스스로 관찰과 경험, 이 두 가지 요소를 적절하게 발휘함으로써 작품은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신현중은 큰 전시장에 어울리는 작가이다. 작품은 점차 그 크기를 더해가고, 작가의 상상력은 형태와 함께 증가하는 듯 하다. 형태가 중요하기에 손으로 직접 작업한다는 작가는 조각의 기본을 잃지 않는다. 공간을 장악할 수 있는 작품, 작가의 노동력이 담보될 수 있는 작품, 인간의 노력이 예술이란 다른 축을 만나 완성되는 설치이자 조각이자 모뉴멘트인 작품들은 조각의 숨통을 틔어준다. ● 크지 않은 공간에 대한 적응력을 보여줄 이번 전시는 작가의 또 다른 감각을 평가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신현중의 작품은 관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성공적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가는 문명의 소산인 자신의 기술과 노동력이 자연의 도상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기를 기원한다. 이런 가상의 전체를 이해하기에 연결고리들이 쉽게 나열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과 기억의 나열을 묶어줄 조각의 힘을 모든 관객들은 여전히 원하고 있기에 작가에겐 언제나 모든 형상이 쉽지 않다. ● 진정한 진화는 이제부터다. 이야기와 상징, 역사와 체험이 있는 예술적 공간을 제시하려는 신현중의 시도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 ■ 진휘연
Vol.20041215b | 신현중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