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감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선정 공모展   2004_1210 ▶ 2004_1219

조인원_야경/평양_컬러인화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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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211_토요일_04:00pm

참여작가_김성룡_박종근_배재만_임종진_정성준_조인원_채승우

토론회 2004_1218_토요일_04:00pm_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아트센터 경기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1116-1번지 Tel. 031_231_7200 www.kcf.or.kr

이번 전시를 만들어낸 일곱 명은 모두 현직 사진기자들이다. 이 들은, 신문에 실려 출판되는 자신들의 사진이 어떤 관습의 틀을 반복하고 있으며, 또 스스로 그 틀을 재생산하고 있음에 대해 고민해왔다. 많은 사진기자들이 이 틀을 넘고, 사진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고자 노력하는 가운데, 이 들은 본 사진전을 기획하게 되었다. ● 일곱 명의 사진가들이 현장에서 지켜 본 2004년 한 해 우리 사회의 모습을 담아 소위 연감을 만드는 것이 이번 사진 작업의 기본 내용이다. 또한 이 연감은 기존의 저널리즘 사진에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저널리즘 사진의 '사진적'확장을 시도한다. ● '보도사진 연감'은 매 해 만들어져 왔다. 한 해 동안 신문을 위해 취재되었던 사진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는 것이 '보도사진 연감' 구성의 기본이다. 그러므로 연감에 실리는 각각의 사진들은 신문 사진의 형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또한 신문 사진의 세상 보는 자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 이번 전시 '사진, 연감' 전에 참가한 사진가들은 신문 사진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갖고, 그 문제를 사진으로 풀어가고자 했다. 그러므로 이 '사진, 연감'의 사진들은 서투른 질문 덩어리이다. 신문 사진에 던지기 시작한 질문들이 저널리즘 사진은 물론, 사진 전반에까지 넓혀갈 수 있기를 바란다.

채승우_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서울 광화문_컬러인화_2004
박종근_세계경제포럼반대집회/서울 장충동_컬러인화_2004

이들이 가지고 있는 질문들은 10년 가까이 사진 기자로 활동하면서 얻은 것들이다. 취재 현장에서, 취재원들과의 만남에서 질문은 시작되었다. 신문사나 통신사의 데스크와 편집자들은 물론, 자신의 사진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속에서 신문 사진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했다. ● 다음과 같은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사진 취재의 현장에서 종종 상황 연출의 유혹을 받았다. 연출을 해야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시간이 부족해서' 라는 답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서'는 완전한 대답이 아니다. 보다 정확한 답은 '시간이 부족하지만, 반드시 어떤 장면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진기자들은 언젠가부터 찍어야 할 '어떤 장면'을 가지고 있다. 연출의 여부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 그 '어떤 장면'이란 무엇인지, 누가 왜 그 장면을 원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했다. 혹시 그러한 이유에서 사진은 점차 자극적이게 되었고, 독자들이 다양한 모습을 볼 기회를 가려온 것은 아닌지. ● 어쩌면 '사진, 연감' 전의 사진들은 한국 사회의 일년을 보여주는데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일지 모른다. 이는 신문 사진이 세상을 완전히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에 대한 작은 반발일 것이다. ● 하지만, 이 전시의 사진가들은, 사진이 보는 이와 대화해야하고, 세상을 기계적으로 재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신문 사진은 대중들이 가장 많이 보는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많은 독자들과 대화할 수 있다는 매력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터넷과 방송은 '보여주기'라는 측면에서 그 위력을 떨치고 있다. 이 들과 경쟁하기에 신문 사진은 점점 뒤쳐지고 있음이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가 또 하나의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보여주기' 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 대신 독자와 대화하기, 말 그대로 '사진 안에서 주고받기'를 시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제 시작이다. 시작은 거친 반동뿐일지 모른다. 그것이 시작이다. ■ 조인원ㆍ채승우

임종진_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성매매특별법에 대한 항의시위가 끝난 후_컬러인화_2004
정성준_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서울 대학로_컬러인화_2004

'내 카메라'를 든 당신들의 사진이 조로하지 않기를!-'사진, 연감'전에 붙여 ● 사진 없는 신문을 상상할 수 있을까. 유럽에서 이름난 몇 몇 신문은 사진을 거의 싣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기사만 빡빡하게 들어간 신문을 보는 일은 우리에게 낯설다. 독자들의 단어에 대한 불신 또는 지겨움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요즈음, 오히려 증가하는 사진에 대한 기대와 의존은 신문 지면에서 보도사진이 차지하는 면적이 점점 커지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물론 편집이나 디자인을 위한 이미지 키우기의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다. 디카(디지털 카메라)와 폰카(카메라 폰)이 일상이 된 영상 시대에 문맹은 이제 글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일을 가리킨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사진이 진실하리라는 믿음이다. 대다수 신문이 자사의 이익과 손잡은 정치 세력 내지는 경제 집단을 위해 거짓말을 떠들고 있다는 언론에 대한 의혹이 널리 퍼진 이 시대에도 사람들의 사진에 대한 믿음은 아직 굳건해 보인다. ●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들 알고 있다. 사진은 오로지 진실을 말한다고 알려져 있다. 1839년 실증주의와 사회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명된 이래,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박아내는 평등한 도구로 여겨져 왔다. 보도사진가는 더더욱 이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의 진상과 진실을 알리는 것을 임무로 한다. 사진기자는 매 순간 '찍느냐, 마느냐'를 저울질하며 어깨에 맨 카메라에 손을 뻗친다. 헝가리의 사진가 안드레 케르테츠가 썼듯이 '카메라는 사진기자의 무기이며, 그걸 가지고 그는 주위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데 카메라는 정말 보도사진가의 무기이고, 그 카메라는 진실만을 토해내는가. ● 여기 '사진, 연감'전에 모인 7명은 국내 신문과 통신에서 현장을 뛰고 있는 사진기자들이다. 아마도 각자 일생을 걸 보도사진가로서의 이력에 10년 남짓의 세월을 쏟아 부어 직장에서 꽤 쓰임새 많고 믿음직한 허리를 이루는 기자들로 꼽히는 이들이리라. 사진기자는 늘 현장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현장을 놓치면 다 끝이기에 눈썹 날리게 숨가쁜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바쁜 그들이 왜 현장을 떠나 전시장에 모였을까.

배재만_아테네 헬리니코 인도어어리나_컬러인화_2004

우리는 사진이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기계로 알고 있다고 이미 동의했다. 그렇지만 여기 모인 10년 차 사진기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거짓이 꾸며지고 필요한 그림이 짜맞춰지는 때가 있다고 말한다. X신문사 사진부에서 김 아무개라는 사진기자를 Y라는 곳에 보내 얻기를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김은 때로 누르기 싫은 셔터를 눌러야 할 경우가 있다. 신문이 사회의 목탁인 시대가 거하고 자본주의 사회의 한 회사로 살아남아야 하는 눈물겨운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보도사진이 진실과 사실의 결정체가 아니라 경쟁 치열한 시장의 상품이 된 21세기에 그들은 더 자극적이고 더 강렬한 사진을 요구하는 신문 조직의 생리를 따르지 않을 수 없고 갈등하게 된다. 신물이 나는 일이지만 직업이 취미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카메라를 두 대 가지고 다닌다. 신문사 일을 하기 위한 카메라와 '나만의 목소리를 담을 내 카메라'다. 신문에 '실리기 위해' 적당히 타협해야 하는 회사 카메라를 찍기는 어찌 보면 쉽다. 흔히 '데스크'라 부르는 사진부장이나 편집자의 요구가 무엇인지 '짬밥' 의 감이 저절로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카메라'를 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일종의 해방구가 된다.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사건과 인물을 찍어도 다른 사진이 나온다. 이를테면 극적 장면보다는 차분한 한 순간이, 감정을 푹 쑤시는 이미지보다는 더 많이 보여주고 생각할 수 있는 사진이 필름에 담긴다. 이들은 몸소 사건을 겪으며 본 것에 관해 '찍었던 생각'을 나누고 싶어한다. 진실로 '그때 거기 있었던 것'을 찾는다. 그 한 장의 사진 속에는 너와 나의 감정이 스며들고, 한때를 살았던 우리의 삶이 들어앉는다. 그렇게 다른 또 한 대의 '내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 꽤 모였을 때 일곱 명의 사진기자는 의기투합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는 이들의 시선은 각각이지만, 우리나라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뜻은 같다.

김성룡_4.15 총선 개표/서울 광화문_컬러인화_2004

'말하기의 다른 방법'이란 사진산문집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 작가 존 버거는 이 책에서 사진의 서로 다른 두 가지 사용법을 든다. 첫째는 사진에 나타난 실증주의적인 증거를 마치 궁극의 유일한 진리처럼 취급하는 이데올로기적 사용법. 둘째는 그 반대로 주관적인 느낌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사진을 품고 다니는 보통사람의 개인적인 사용법. 이번 전시에 참여한 일곱 사진기자의 두 대의 카메라는 아마도 이 두 가지 사용법을 각기 대표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밥벌이를 위해 찍었던 첫째 부류의 사진이 독자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했다면, 자기자신으로 돌아와 느른하게 찍은 둘째 부류는 관람객에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사진이다. 머리가 깨지건 코가 내려앉건 현장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 앞 사진이라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또 다른 사진 각도를 시험하고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뒤 사진이다. 한마디로 특종 보도라는 세상의 잣대를 버리고 '내 마음속의 절대 보도'를 좇은 또 하나의 보도사진인 셈이다. ● 한국의 신문사 사정이 오십보 백보이기에 경험으로 한마디하자면, 동료로 지켜본 사진기자는 일반 기자에 비해 조로 또는 조루하는 쪽이 많다. 현장 취재 경력 10년을 넘어서면 싫어도 사무실 책상에 앉아 전화로 후배 기자를 부리는 자리를 차지하기 쉽다. 한 번 멀어진 현장은 다시 돌아가기 힘들다. 여기 모인 '영원한 현역' 일곱 명이 사진전을 준비하며 한 말이 있다. "우리 사진을 보고 선배들이 욕을 해주면 더 좋겠다." 현장에서 멀어진 고참의 눈을 씻어주는 사진전으로 욕지기를 먹어도 기쁘겠다는 이들의 패기가 만만치 않다. 첫 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을 터. '사진, 연감'전의 정신이 보도사진에 관한 고정 관념을 깨는 한 방이 되기를 기대해볼 수밖에. ■ 정재숙

Vol.20041210a | 사진, 연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