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갤러리 아트사이드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1208_수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변숙경-철판 위에 실존하는 선 ● 변숙경은 사각형의 철판 덩어리를 잘게 자른 후 그것들을 다시 원래의 형태대로 이어 붙였다. 사각의 평면을 절개하고 나눈 선들이 다시 기억의 힘 아래 모여들어 현재의 시간 아래 불현듯 멈춘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부의 공간을 횡단한 선들에 의해 분할된 면들이 다시 봉합과 치유의 과정을 거쳐 환생한 느낌이다. 사각형의 평면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내부는 저마다 다른 상황, 표정으로 연결되어있다. 그래서 동일한 피부 위에 다양한 삶이 전개되고 있는 형국이 풍경처럼 다가온다. ● 이 조각은 실제 공간에 놓여진 하나의 철판에서 시작한다. 철판들은 동일한 크기의 물질들이다. 그러나 그 안을 자르고 지나간 선들과 약간씩 높이를 지니며 올라오고 내려간 것들 사이의 틈이 흥미로운 공간을 만들면서 단조로운 평면을 융기시켜 놓았다. 가로지르는 선들이 교차하고 이어짐에 따라 다기한 형상, 면적이 파생되었고 동시에 높낮이가 다르게 연결됨에 따라 평면은 다채로운 굴곡을 드러내고 있다. ● 작가는 철판의 내부로 육박해 들어가 거닐 듯이, 혹은 느리게 이동하듯 자취를 남겼다. 그 흔적은 잘린 선과 이어 붙인 용접 자국, 상처로 남았다. 작가는 자유로운 선긋기, 드로잉을 하듯 철판을 자연스레 절단했고 다시 이것들을 일정한 의도 아래 붙여 나가면서 만들어진 요철효과와 그로 인한 흥미로운 리듬감을 부여한다. 이리 저리 선들이 지나면서 절개한 부위와 그것들이 새삼 잘리고 용접된 자국들이 남아 시선에 사건을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그 내재적 구조의 변화가 작품을 생성하고 있다. 그에 따라 시선은 나가다 부딪치고 꺾이고 가라앉고 다시 융기하는 모험을 안게 된다. 그래서 본래의 철판과는 또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그러나 이 다름은 철판 자체의 형질변경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느끼고 접하는 관자의 심리와 관념, 관습적인 시선에 저항하는데서 기인한다.
변숙경의 조각은 하나의 물질을 다른 물질을 의미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전통적인 조각적 일루져니즘에 반한다. 그러니까 작품의 표면을 이미 존재하는 내적인 틀이나 구조의 반영으로 이해하는 전통조각에서의 사고방식은 부정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만 각 조각들은 끊임없이 재배열되고 있다. 여기서 조각의 각 부분들은 시간 속에서 스스로를 창출하고, 긴장된 표면이라는 사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실존물로서 존재한다. 작가의 이 철판은-여러 조각들로 나뉘고 봉합된-관람객이 서있는 바로 그 바닥과 동일한 공간에 펼쳐져 있거나 약간 융기되어 있다. 혹은 벽에 붙어서 바닥으로 흘러내리듯이 걸쳐 있다. 수평으로 내려앉은 시선은 철의 피부, 표면을 흩어나가게 한다. 그에 따라 모종의 형태, 물질성, 수직의 기념비성은 은연중 지워지고 철의 신체성을 대지, 현실의 장과 밀착시켜 접하게 한다. ● 모두가 균질한 바탕의 철판 같지만 가까이 가서보면(위에서 내려다 본 시선에 걸린) 철판의 안, 표면은 다르게 형성된 선들의 구조에 의해 저마다 달리 보인다. 특히 색채와 반사도에 따라, 틈(공간)과 그림자에 따라 다채로운 차이가 생긴다. 그에 따라 관람자는 재료 그 자체가 작품의 절대적 요소라는 점을 순간 깨닫는다. 구체적 재료의 고유한 속성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작가는 그런 굴곡과 예기치 않은 변화가 마치 인생을 은유하는 듯 하다고 말한다. 들쭉날쭉한 삶의 여정이 철판 위에서 저런 식으로 부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철판을 화면 삼아 그 위에 산소용접기로 선을 그어 나가면서 면적을 만들고 공간을 구획했다. 마치 아이들이 땅바닥에 줄긋기를 하거나 사방치기를 하듯, 선들을 긋고 그 선을 따라 자르고 다시 용접해서 이어 붙이는 과정은 주어진 한정된 공간 안에서 매번 새로운 게임처럼 전개된다. 어쩌면 이 철판은 철 조각을 하는 작가에게는 유일무이한 물질이고 간절한 생활이며 세계이자 삶과 작업의 공간일 것이다. 또한 자기 몸의 연장으로 존재한다. 철과 더불어 사유하고 말하고 생활하며 존재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업은 온전히 철과 함께 한 자취, 일상, 놀이에 의해 새겨진다. 그러니까 철판을 매일 매일 접하면서 그 날의 일기를 써나가듯 자르고 용접하고 철과 대화한 흔적이 고스란히 작품이 되었다. ● 따라서 이 작업은 철판을 이용해 면 구성이나 분할을 염두에 둔 일종의 구성주의 조각이나 철판의 물성을 강조한 미니멀리즘에 가깝기보다는 철판이라는 재료를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선을 만들어 보이는데 더 관심이 있다는 인상이다. 여기서 선은 목적론적인 의도를 은연중 지우고 주어진 사각형안에서 그때 그때의 감정과 연상에 의해 일어난 선이며 작가는 그 선들을 살아있는 느낌이 나도록 조합하고자 했다. 마치 자신의 생활, 삶의 반경과 그 움직임을 판 위에 은밀하게 기록하듯이, 흡사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벌들이 벌집을 짓듯, 개미가 개미집을 짓고 주어진 길을 다니듯이 말이다. 따라서 철판에 새긴 것은 선이기에 앞서 자신의 행동반경이고 마음의 여로이자 작업에 대한 반응이다. 작가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다룰 줄 알고 오랫동안 만져왔으며 순간적인 효과를 볼 수 있고 그래서 곧바로 형태가 나오는 철조 작업을 하면서 바로 그 안에 스스로를 투여하고 있다. ● 거미가 거미줄 안에서만 움직일 수 있듯이 자신 역시도 철판, 그 안에서만 가능한 일을 이런 식으로 시연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조각은 유일하고 간절한 일인데 그것은 철판과 함께 전개된다. 철판 안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움직임과 삶을 거미가 거미줄을 치듯 그렇게 직조하면서 보낸 시간의 여정이 철판 위에 저렇게 서식하고 있다. ■ 박영택
Vol.20041207c | 변숙경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