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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분홍빛 이불-붉은눈물 ● 분홍빛 이불, 딱히 그런 빛을 확인할 필요는 없지만, 너무 익숙한 색상이 노골적으로 벽을 이루고 있을 때, 그 익숙함은 당황스러움으로 다가온다. 이불이라고 한 것은 익숙한 연상에 의해 상투적으로 말한 것이고, 벽면을 두르고 있는 푹신한 양감과 구김진 입체감과 미끄러운 표면 재질감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투성과 상투적 연상의 밋밋한 보기 사이에 김수은의 작품이 놓여 있다. 밋밋한 보기란 중성적 보기를 말하는 것인데, 익숙한 것을 중성적으로 볼 때 그것은 사물이 가진 재료와 색상과 형태로 보인다. 사물에 덧낀 시간의 흔적과 체취를 빼버린 기호에 가깝다. 그러나 그런 형태와 색상과 재질감이 한 번 더 상투적으로 구성되면서 역전된 의미들이 그의 작품을 이끌어간다.
대형 분홍빛 이불이 전시장 벽을 둘러싸고 있다. 부드러운 재질감, 분홍빛 색상, 번득거리는 천의 질감은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은밀한 방안의 내밀함이 순식간에 노출되고 키치적 관심거리가 되고 만다. 그곳은 장소성이 보다 강하지만 순식간이라는 시간의 전이가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쿠션이 있는 벽과 그 벽을 지탱하기 위해 중간 중간 박음질 역할을 한 작은 단추들이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 사이로 주름들이 벽을 이루는 면을 이어주고 끊고, 감싸면서 유동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일회성 표정을 가진 소모품 같다는 인상을 준다.
하얀 인조 양털 카펫이 깔린 그 방안에는 인형 같은 두상이 하나 놓여 있고, 요람 같은 구조물이 놓여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붉은눈물이 불빛을 대신하고 있는 하얀 털로 감싸인 촛대가 있다. 촛대 위의 붉은눈물은 인형의 눈 속에도, 요람 안에도 들어 있다. 붉은눈물은 어디에서도 선명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천을 이용해 만든 인형의 머리카락은 흔히 보는 전형적인 표정이다. 그리고 눈과 속눈썹, 소략하게 표현한 콧등 등도 흔히 보는 인형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 눈 속에 붉은눈물들이 달려 있다. 인형의 눈물이라는 소모적인 이야기에 붉은눈물이라는 다소 상투적이 눈물이 겹쳐져, 겹쳐진 사이로 다른 의미들이 자리를 잡고 이 조형물의 의미를 묘하게 비틀어준다. ● 요람으로 보이는 구조물도 푸른 천으로 바깥을 싸고 그 위로 흰 구름 문양들이 드문드문 떠 있다. 하늘이자 구름이라는 도상적인 배열을 통해, 요람의 상징을 그대로 옮겨 보인다. ● 그런데 그 속은 주름토성이의 암벽들로 가득 차 있고 붉은눈물들이 떠 있다. 요람 속의 붉은눈물이다. 인형이나 요람 모두가 상투적인 이미지에 상투적인 의미들이지만 마치 잘 디스플레이 된 상품 매장에다 모셔놓은 듯 하다. 그런데 눈물은 쥐어짠다. 얼마나 상투적인가! 의미전환의 순발력이 보이는 순간이다. 김수은의 감각이다.
동화 같은 외형에 속을 이루고 있는 붉은눈물이라는 병치는 상투적이다. 현실이 동화의세계로 역전되었다면 그 동화가 다시 역전되어 놓여 있는 것이다. 노랑과 주황의 천으로 재현한 머리카락과 양 갈래로 탄 단발머리의 인형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미지이다. 그 얼굴을 들여다보면 붉은눈물만 선명하게 드러날 뿐 다른 부분들은 숨겨져 버리고 만다. 입은 아예 없다. 익숙한 대중적 이미지란 우리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하는 물음에 답하듯 입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는 그런 얼굴이다. 요람이나 양털카펫도 마찬가지 맥락에 있다. 그 대중적 이미지들은 주름투성이의 이불의 안락함 사이에서, 가볍고 미끄럽게 표면뿐인 듯 미끄러운 주름위로 눈물을 눌러두고 있다. 그러나 그가 보이려는 의미들은 여전히 상투적 층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 그의 이 작업은 작은 굴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나뭇가지에 걸린 인물두상을 보면 그 해답을 넘겨받을 수 있다.
사방이 작은 주름들로 이루어진 벽면은 종이를 이용한 재질이지만 주름으로 사방을 둘러싸게 만들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주름들이 이불에서와 마찬가지 맥락을 이루고 있다는 때문이다. 색상과 공정에서 차이가 생긴 것이지만 이불에 비해 거칠고 무겁고, 주름이 더 심하게 나타나 있다. 그 위에 붉은눈물들이 맺혀 있다. 그리고 그 입구에는 나뭇가지에 연처럼 인물의 두상이 걸려 있다. 사방으로 가지들이 관통하고 있어 다소 잔혹한 장면 같지만 구체적 인물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같다는 때문에 안도의 감을 갖는다. 상투적 도상이 주는 안도감은 현실을 비껴가려는 욕구에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뒷면에 현실을 나타낼 수 있는 무정형의 주름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주름으로 그의 작업을 보고 있는데, 그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주름이 펼쳐지고 접히는 그 차이를 찬찬이 들여다보면 어떨까. 그 자신의 작업이 형태가 범속한 이미지만이 아니라 온통 주름 구조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김수은의 작업은 대중적 이미지, 혹은 상품 이미지, 때로는 소비적이고 가벼운 팬시적 이미지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의 일상에서 그 우연한 소비적 이미지가 의미적 사건으로 전이되는 순간을 보아내는 데 있다. 상투성을 상투성으로 읽을 때, 대중적이고 가벼운 이미지의 익숙하고 편안함 뒤의 공허함에 눈을 떼지 못한다. 주름위의 팽팽한 눈물이라는 이중성을 통해 가변적인 현실과 그 현실 뒤에 있는 공허함의 완강함에 우리를 슬며시 이끌어가다 상투성의 일상에 다시한번 놓아버린다. ■ 강선학
Vol.20041205c | 김수은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