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201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경은_박선정_백지혜_안진희_유경숙 이창민_정해진_조희영_함보경
관훈갤러리 신관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우리 그림의 근원적 신체성과 일상적 수행성 ● '진채(眞彩)'는 채색화를 가리키는 고유한 우리말이다. 1783년 11월, 정조대왕은 궁중화원으로 활동하게 될 규장각(奎章閣)의 자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을 선발하며 '담채(淡彩) 2장, 진채(眞彩) 2장'을 그려내라고 하여 궁중에서 많이 그려지던 화려한 채색화를 '진채'라고 불렀다. ● 우리 그림은 재료기법 상 크게 수묵(水墨), 담채(淡彩), 진채(眞彩)의 세 갈래로 나뉜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서양화가 흔히 드로잉, 수채화, 유화의 세 가지로 나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각각 독립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상보적으로 혼용되기도 하며 다양하고 다채롭게 변조된다. ● 수묵은 우리 그림의 가장 근원적인 골격이자 핵심적인 본질이다. 수묵은 그 자체로 오채(五彩)의 현묘한 변화를 함축한 수묵화로 완결되기도 하고, 채색과 함께 질료적 외연이 확장되며 담채나 진채로 발전되기도 한다. 담채는 수묵을 담백하고 화사하게 꾸민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수묵과 담채는 용매도 같고 기법도 같아 흔히 '수묵담채'라 병칭되는 경우가 많지만, 대개는 수묵이 주가 되고 담채가 종속적으로 부가되기 때문에 수묵의 한 변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진채는 수묵이나 담채와는 재료나 기법이 많이 다르다. 우리 그림은 기본적으로 수용성 용매를 사용하지만, 수묵과 담채가 맑은 물을 사용하는 데 비해 진채는 밀도가 높은 아교 물을 사용한다. 수묵이 먹을 갈아 풀어쓰고, 담채가 식물성 염료를 물에 타서 종이나 비단을 물들여 가는 것과 달리, 진채는 광물성 석채(石彩)를 아교에 개서 종이나 비단 위에 하나씩 쌓아 올린다. 강렬하고 화려한 고구려의 고분벽화와 고려 불화, 조선불화, 초상화, 기록화, 일월오악병, 십장생병, 책가도, 문자도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진채는 수묵과 담채를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요소로 포함하며 석채를 더욱 추가해 가지만, 수묵과 담채는 진채를 기본적인 요소로 포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수용하고 받아들이기도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우리 그림은 더욱 본질적으로 다시 수묵과 진채의 두 가지 계통으로 나뉜다고 할 수 있다. ● 수묵과 진채는 이념과 양식 상 우리 그림의 두 가지 계통인 문인화와 원체화, 남종화와 북종화의 이원적인 구조와 층위를 상징한다. 수묵과 담채는 재료와 기법이 단순하고 다루기 쉬워 여기적(餘技的)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문인화가들이 주로 애용했다. 그러나 진채는 재료를 다루기도 어렵고 기법을 배우기도 힘들기 때문에 전문적인 화원화가들이 주로 사용했다. 따라서 수묵은 문인화가 발달하기 시작한 고려 후기와 조선시대부터 뒤늦게 나타난 근세적인 형식이고, 진채는 고대부터 시작된 우리 그림의 가장 근원적인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 근세 회화를 주도한 문인화가들은 그들이 다룰 수 없는 진채를 그들의 이념과 정서에 맞지 않는 장인적인 그림으로 치부하며 저급하고 깊이가 없는 그림이라고 이를 천시하고 억압했다. 그 대신 그들은 문인사대부의 특장인 시적 정서와 서예적 필치를 본질로 하는 수묵화의 고매하고 심원한 형식을 강조하며 이를 발전시켰다. ● 그러나 수묵은 본질적으로 구체적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포용적이기보다는 환원적이며, 수용적이기보다는 배제적인 특성이 강한 매체이다.
수묵화가 흔히 상징성이 강한 시와 결합되고 기호성이 강한 서예와 결합되어 근세의 문인 수묵화가 시서화(詩書畵) 일치의 추상적인 의경(意境)을 지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따라서 수묵화는 직관적인 통찰과 즉각적인 표출을 특질로 하는 일획(一劃)의 순간적인 감각을 중시한다. 그래서 수묵은 '그리기'보다는 차라리 '쓰기'에 가까운 경지를 지향한다. 근세의 문인수묵화가 '화법(畵法)'으로 일컬어지는 그리기의 세계를 억압하고 천시하며 배제한 뒤, '사법(寫法)'으로 일컬어지는 쓰기의 차원을 추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그러나 수묵화가 아무리 인류 미술사상 고유하고 매혹적인 우리 그림의 미덕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누구나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묵은 천성적으로 고도의 직관적인 통찰력과 시적인 함축력을 타고날 뿐만 아니라, 순간적이고 추상적인 서예적 필치를 오랫동안 연마하고 수련하지 않으면 제대로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전통시대의 수묵화조차 식견이 깊어지고 노경에 이를수록 더욱 볼만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수묵이 기본적으로 그리기를 배제하고 쓰기의 경지를 지향하는 것과 달리, 진채는 그림의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그리기의 근원적 신체성을 지향한다. 그리고 이를 장인적으로 실천하는 신체적 수련과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 수행을 통해 감득되는 영적인 깨달음을 중시한다. 진채는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이고, 환원적이기보다는 포용적이며, 배제적이기보다는 수용적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대해서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서도 그렇다. 진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차별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따듯하게 끌어안고 받아들이며, 우리 자신의 일상적인 욕망을 억압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삶 속에서 더욱 생생하고 화려하게 꿈꾸며 이를 사랑한다.
진채는 이 모든 것을 보석을 갈아 만든 광물성 석채를 통해 실현한다. 그것은 길고 고단한 장인적 손길과 이를 참고 견디며 즐거워하는 수행의 마음을 필요로 한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하고 꿈꾸는 일이 어찌 단시간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진채는 보석을 조심스럽게 빻고 갈아서 걸러낸 뒤 손으로 개고 이기며 풀어서 하나씩 쌓아가는 길고 친밀한 신체적 접촉을 통해 딱딱하고 견고한 물질에 따듯한 손길과 포근한 숨결을 불어넣어 영성을 깃들게 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계와 욕망이 하나로 용해되어 새로운 생명으로 전환되는 시간을 겸허하게 기다리며 경건하게 맞이한다. ● 전통 진채는 수묵과 모순되지 않으며, 담채와도 갈등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수용하고 화해하며 이를 통해 진채의 매력을 더욱 발산하고 고양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채색화가 진채의 물질성을 육감적일 정도로까지 과도하게 추구하며 속화되는 것과 달리, 우리의 전통 진채는 수묵의 골기와 생기를 자신의 내적인 힘으로 내면화시켜 응축한 뒤, 담채의 부드럽고 맑은 호흡을 진채의 강도와 밀도에 숨통을 터주는 바탕과 여백으로 활용하며 진채의 품격을 더욱 높인다. 그리고 종이와 비단의 바탕을 적당히 드러내고 그들이 지닌 고유한 성질을 최대한 살려서 종이와 비단도 자신의 독자적인 체취와 숨결을 전하며 살아 숨쉬게 만든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의 전통 진채는 그 동안 문인 수묵화에 억압되고 일본 채색화에 왜곡되며 서양 유화에 물들어서 거의 단절되고 사라지기 직전에 있다. 자기 자신 위에 타자의 미덕을 수용해서 자신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과 자신을 잃은 채 타자에 의해 물들고 왜곡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전통 진채는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그림을 다시 활성화시키고 부활시켜 나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보고이자 유력한 가능성의 영역이다. ●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전통 진채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이 멀고 긴 여정을 겸허하고 경건하게 시작한다. 우리의 꿈을 우리 세대에 이를 이룰 수 없다면, 최소한 이 소중한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다음 세대로 전해질 수만 있어도 행복할 것이다. 만약 마음이 같고 뜻이 같은 도반(道伴)들이 더욱 많이 동행한다면 함께 가는 우리의 길이 더욱 보람 있고 즐거울 것이다. ■ 강관식
Vol.20041201c | 전통진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