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으로부터 꽃으로

정순희 회화展   2004_1201 ▶ 2004_1207

정순희_혼돈으로부터 꽃으로_한지에 인디안 잉크, 혼합재료_53×45.5cm_2004

초대일시_2004_1201_수요일_06:00pm

관훈갤러리 본관 2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사각의 프랙탈 구조에 내재된 꽃의 상징"생동감의 정신적 반향과 생명의 울림이 퍼져 나오는 그림... 그것은 상상력의 산물이며, 재현의 논리와 내적 순수조형 사이를 오가면서 독특한 화면을 연출하는 것이다."_정순희 ● 작은 사각형의 반복과 겹침, 그 위에 그려진 단순한 꽃 이미지, 강렬한 색채가 화면을 뒤덮고 있다. 추상적 꽃의 형상과 함께 사각형의 프랙탈 구조가 매우 인상적이다. 작가는 자신의 이러한 작품에 관하여 "그림이란 자연 속에 내재된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함축적이고 단순화된 패턴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개인전에 발표될 자신의 작품을 "자연의 내재율, 그 시원형적 구조"라는 말로 압축하며, 사각의 프랙탈 구조 속에 내재된 꽃의 상징성을 탐구하고 있다.

정순희_혼돈으로부터 꽃으로_한지에 인디안 잉크, 혼합재료_53×45.5cm_2004

정순희의 회화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바탕이 되는 작은 사각은 대상이나 형상이 없는 추상적 형태로 공간성을 강조한다. 이에 반해 그 위에 그려진 형상은 꽃이라는 구체적 대상으로 형상을 갖는다. 이러한 상반된 구조와 양식을 갖고 있는 작품을 작가는 "자연의 내재율, 그 시원형적 구조"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자연의 재현을 바탕으로 하면서 동시에 사물의 근원을 탐구하려는 추상적 조형언어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려 하는 것이다. ● 작가에게 있어서 '자연의 내재율'은 음악처럼 리듬감을 갖고 있고, 사각형의 반복성에 의해 프랙탈 (fractal) 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즉, 프랙탈 패턴이라고 칭하는 사각형들의 반복적 겹침은 무한의 공간성을 암시한다. 여기서 사각형은 단순한 사각이 아니라 대상의 부재인 동시에 자연의 존재를 상징한다. 마치 사각형의 단위는 자연 속의 다양한 개체로 보이며, 또 다양하게 변형된 사각형들의 조합은 사물의 시원적 구조로 해석된다. 또한 작은 사각형들의 반복은 화면을 무한대의 공간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이는 존재와 부재라는 대상의 양면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공간의 무한대를 의미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자연의 내재율'은 사각형들의 조합을 통한 공간 확장이며, 음악성을 통한 절대적 형태에로의 존재 탐구인 것이다.

정순희_혼돈으로부터 꽃으로_한지에 인디안 잉크, 혼합재료_70×70cm_2004
정순희_혼돈으로부터 꽃으로_한지에 인디안 잉크, 혼합재료_72.7×91cm_2004

프랙탈 패턴의 사각형은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한지를 우리의 전통 조각보의 형식처럼 붙이고, 또 뜯어내면서 반복된 사각형 구조를 형성한다. 수없이 반복된 행위의 결과로 제작된 사각형의 조합은 화선지에 먹과 오방색의 채색된 프랙탈로 나타난다. 격자형의 프랙탈 구조는 화면 밖으로 연장되는 무한의 공간성과 시간성을 암시한다. 동시에 결정체와 같은 낱낱의 작은 사각형들은 하나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비대상 미술(non-objective art)의 인간적 흔적(trace)을 담고 있다. 기하학적 형태의 단순한 사각형들은 어떤 주제나 사실적 형상의 재현이 아닌 정신적 활동의 결과이며, 자연의 내재된 질서를 구축하는 기본 형태인 것이다. ● 사각형의 프랙탈 구조는 절대성과 무한성의 공간이며, 동시에 꽃을 탄생시키는 하나의 장(場)이 된다. 사각형들의 확산 공간 위에 피어난 꽃은 실제 형상과 거리가 있다. 작가는 꽃을 사실적 묘사가 아닌 단순한 드로잉으로 변형시킨다. 간략한 선으로 꽃의 이미지만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모티브의 작업을 작가는 「부유하는 꽃」 또는 「혼돈으로부터 꽃으로」라는 제목 붙이고 있다. 여기서 꽃은 사물의 재현이 아닌 개념일 뿐이다. 즉, 꽃은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형상이 아니라 은유적 대상이다. 작가는 화려함과 일시적 영광이 아닌 영원성의 상징, 혹은 우주의 기운을 표현하는 상징으로서의 꽃을 그리고 있다. 꽃은 자아(自我)이거나, 보편적 인간성의 숨겨진 모습이다. 사각이라는 절대의 시간과 공간 속에 피어난 꽃을 통해 우리 인간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자연의 내재율'이라는 작품 주제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열쇠가 된다. 작가의 비대상적 회화는 현실적 대상으로서의 꽃과 같은 대상의 추구가 아닌 정신세계의 추구이다.

정순희_혼돈으로부터 꽃으로_한지에 인디안 잉크, 혼합재료_53×45.5cm_2004

자아의 탐구를 위한 이러한 프랙탈 구조의 사각형들의 조합과 꽃의 상징적 표현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꽃의 추상적 형상성을 상징하는 색채대비의 설득력이 다소 자의적인 느낌이 든다. 그러나 사각을 통한 프랙탈 패턴의 구조 형성과 그 적용으로서 꽃의 메타포가 무엇보다 비물질의 세계를 잘 나타내고 있음은 분명하다. ● 결론적으로, 눈에 보이는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의 탐구, 그리고 자아의 발견을 위한 꽃의 상징적 개념설정 등 다원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성향으로 보아 앞으로의 작가의 활동이 더욱 기대된다. ■ 유재길

Vol.20041201b | 정순희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