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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202_목요일_05:00pm
브레인 팩토리 서울 종로구 통의동 1-6번지 Tel. 02_725_9520
이세정을 만나기 전에 나는 이미 비디오 작업을 통해서 그의 얼굴을 알게 되었다. 모니터 속의 그는 비닐 봉투를 뒤집어 쓴 얼굴을 손으로 더듬으며 눈, 코, 입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행동이 끝난 후에는 비닐을 씹어 먹었다. 이세정은 첫만남에서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죠"라고 작업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나라고 기억하며 믿는, 나의 모습으로 인식되는 표피적인 무엇을 제거하고 정체성의 근원에 대하여, 또한 그것을 밝혀내는 행위에 대하여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그럴싸한 '썰(說)'을 풀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 ● 이번 브레인 팩토리의 전시에서 이세정은 담배와 수증기를 매개로 대상이 지닌 여러 겹의 속내를 보여준다. 「다림질하기」에서 붉은색 천 위에 물로 쓴 Red라는 단어는 천 뒷면을 다림질함에 따라 서서히 수증기로 기화한다. 그리고 공기 중으로 사라진 수증기는 반대편 벽면에 투사되는 푸른색 천에 스며들어가 다시 Blue라는 글씨로 맺혀진다. 사실 Red나 Blue는 Orange나 Black으로 바꾸어도 상관없다. 여기서 이세정은 단어가 아니라 물과 수증기에 일정한 외형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Red와 Blue의 반복되는 이미지 안에서 관객들은 자신을 특징짓는 고유의 얼굴이 없는 개체가 오히려 무한히 변형 가능한 대상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또 다른 작업 「time x 8」은 담뱃갑을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영상을 제시한다. 누구라도 떠올릴 수 있는 담배의 형태와 용도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시선은 마치 담배를 처음 본 듯하다. time의 이미지들은 작업의 부분으로서 연대기적인 순서로 연결되었다기 보다는 수평적인 시간의 영역에 기록된 각기 독립된 존재로 느껴진다. 물론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 이미지들은 우리가 'time은 이렇다'라고 규정짓는 특성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 「time x 8」은 영상과 함께 담뱃갑을 싸고 있는 비닐을 벽면에 부착한 오브제로 구성된다. 담배는 작가에게 한때 금기의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개인과 집단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거나 분리시키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산품일 뿐이다. 하지만 이세정은 천편일률적인 공산품 속에서도 근원적인 무엇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담뱃갑 겉면에 인쇄된 문구들을 비닐 위에 베껴 그리고, 얼굴에서 비닐 봉투를 벗겨냈듯이 비닐과 담배를 분리시킨다.
이미 뒤샹의 「샘(Urinal)」과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Brillo Box)」가 예술작품과 실제 사물 사이의 차이에 관한 물음을 던진 이후 우리는 미술이 제기하는 철학적 질문에 익숙해졌다. 나는 아티스트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자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티스트가 던진 물음을 제각기 해석하고 정답의 가능성을 지닌 모든 사례들을 검토한다. ● 다시 이세정의 작품으로 돌아가 작가가 하고 싶은 질문과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을 동시에 정리해 본다. "무생물에도 수많은 정체성이 존재할까?" "껍질에 불과한 각각의 비닐들이 과연 대상의 이면을 대표할 수 있는가?" "실제 담배와 비닐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관객들이 덧붙인 질문덕택에 작품에 힘이 더해지고 의미 또한 풍부해 진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떠한 질문으로 이세정의 작업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할 것인가? ■ 안경화
Vol.20041130a | 이세정 영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