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tic Healing

박지은 개인展   2004_1124 ▶ 2004_1206

박지은_염색체_디지털 프린트_50×7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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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로맨틱한 것에는 광기와 질병이 스며 있다. 건강한 사람은 현실 세계에 안주하지만, 병자와 광인은 다른 세계의 문을 연다. 이 이질적인 세계에서 정상 세계로 돌아오는 과정이 바로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부분이다. 심신에 균형을 잃고 이상 상태에 이른 사람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치유의 과정은 박지은의 작품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과정은 그에게 무척 로맨틱한 순간들이다. 약물이 온 몸에 퍼지면서 세포 하나하나가 바이러스에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힘을 얻으면 인체는 질병과 의학이 맞붙는 전쟁터가 되고, 건강을 회복하기까지의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력간의 치열한 투쟁의 장이 된다.

박지은_호르몬_디지털 프린트_50×35cm_2004

현대의학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없는 전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면서 중세연금술같은 신비로운 아우라를 가지게 되었다. 치료의 복잡하고 미묘한 과정을 수행하는 의사는 마치 신과 소통하는 제사장 같은 위상을 가진다. 현미경과 엑스레이, 초음파와 심전도는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질병의 양상들을 시각화시키지만, 이 역시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무늬나 얼룩일 뿐이다. 이 수수께끼는 풀어서 설명하고 그것을 치료 과정으로 연결시키는 의사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불가사이한 힘으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로맨틱한 과정은 결국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길일 뿐이며 이 길에서 벗어나는 순간 로맨스는 집착과 광기로 변하고 만다. 약물에 의존하여 점점 더 깊은 자극을 추구하면서 내성과 금단증상, 그리고 궁극적인 죽음의 위험을 외면하는 병자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라 중독자이다.

박지은_뇌파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0:12_2004
박지은_신체_단채널 비디오 영상_00:03:10_2004
박지은_Untitled-1_디지털 프린트_15×70cm_2004
박지은_Untitled-2_디지털 프린트_15×160cm_2004

다양한 의약품들은 원래의 기능을 짐작하기 어려운 화려한 이미지로 박지은의 작품에서 나타난다. 모니터 안에서 흐르는 의료용 영상은 지극히 인공적인 색채로 추상화된 신체의 지표들을 그려 내고, 겉으로 보기에는 단조로운 살색 일색인 신체의 내부들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같은 현란한 영상으로 인체의 신비와 공포를 보여 준다. 의료장비는 신체의 내부를 시각화시켜 질병을 판단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지만 그 시스템의 도움으로 우리 몸을 들여다 본 결과물은 너무 아름다워서 어쩐지 위험해 보이는 원색적인 세계를 만든다.

박지은_챠트_종이에 드로잉_160×127cm_2004

로맨틱과 악몽은 종이 한 장 차이이다. 수술도구들이 갖는 정교한 아름다움이 피가 튀는 잔인성을 동반하듯 마취의 황홀상태 뒤에는 매스의 차가운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원래 마취는 수술 시 통증을 제거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방법으로, 통증을 느끼지 못하나 의식은 있는 몽롱한 1기에서 시작하여 결국 의식을 잃는 2기, 실제로 수술을 시행하는 3기로 진행된다. 그러나 마취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호흡정지에서 사망으로 이르는 4기는 마취의 마지막 단계로 마취의는 환자가 여기까지 도달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상태를 확인하여 마취를 조절한다. 이렇게 마취를 통한 치료는 일시적인 감각 상실에서 영구한 죽음으로까지 연결되는 미묘한 과정이다.

박지은_Romantic Healing_갤러리 아트사이드_2004

아무리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약품이라도 고용량이나 장기 투여를 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 약은 병이나 상처를 고치기 위한 것뿐 아니라 환각이나 쾌락을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뭐든지 쓰기에 따라서 약도 되고 독도 될 수 있다는 말처럼 목적에 맞게 쓰면 확실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약물이라도 정확한 용량과 시간을 엄수하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약은 몸 자체의 기능을 부정하고 강제로 외부에서 투입하는 것이므로 인체의 자연스러운 순환에는 모두 독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약이 우리를 고통에서 구하는 명약이 될지 아니면 죽음의 계곡으로 이끄는 독약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건강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로맨틱한 치유를 꿈꾼다. ■ 구경화

Vol.20041127a | 박지은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