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115_월요일_06:00pm
스페이스몸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633-2번지 B1 Tel. 043_236_6622
장준석 - 욕망 읽기 ● 탈현대를 단편적으로 정의하자면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시대라고 흔히 말한다. 원본 없는 실재의 세계, 재현을 행하고 있지만 실재 대상과는 전혀 다른 읽기를 수행하는 것이 현재의 시각들이다. 이런 탈시각에서 주체는 중심이라기보다 소수적인 혹은 변방의 쪼가리 존재가 된다. 이렇게 중심적 존재에서 변방의 존재로의 이행은 자기동일성에서 자기동일성을 상실하는 타자성으로의 이행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동일적 존재에 반해 생성, 신체, 욕망을 사유하는 미시적 세계관은 거대한 사상의 틀 속에 집적시키는 것과는 다르게 시간적이며 우연적이고 상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층위에서 장준석의 영상이미지들은 우연적인 사건들을 혼융하고 있다. 감옥 같은 어둠에 열려있는 작은 창에서 움직이는 나비라든지 통로를 비추는 따뜻한 빛이라든지 또는 홍시의 단맛을 즐기는 파리들의 움직임들은 작가 자신이 그것-되기를 실천하고 있다.
천천히 그것이 존재하는 공간으로 잠시 이동해보면 대략 어두운 공간에서 반딧불처럼 발광하는 빛을 구멍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마주치게 된다. 관람객들은 구멍 속에서 어떤 은밀한 무엇과의 마주침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전복시키는 작은 불빛만이 반기고 있는 것에 당황해한다. 그 빛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면 손가락 틈에서 흘러 들어오는 빛이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는데, 손을 통해 주물러진 따뜻한 빛은 차가운 알루미늄 스틸통로와 마주치며 빠져나온다. 이 빛들은 어쩌면 상당히 낯선 상황들이며 읽기에도 난해해 보인다. 더 들어가 보자. 눈은 더 이상 그 불빛이상으로 다른 형상을 찾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쉽게 깨닫고 만다. 이 불투명한 이미지는 무엇을 생산하려는 것인가? 이것은 보려는 욕망과 보여주지 않는 욕망이 그 구멍에서 충돌하게 하는 전략을 내세움으로서 일반적으로 보려는 욕망을 해체해 버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이 머무르는 통로는 결코 이 구멍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이 구멍의 전략은 욕망이 부딪치고 교차하는 접점이자 임계점point critiques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해보자. 홍시의 깨어진 부분을 일률적으로 핥는 파리의 영상은 일상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파리의 움직임은 홍시의 한 면-깨어진 부분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인식론적 권력의 한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보편적인 영토에서 복종케 하는, 혹은 동일한 절차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 권력의 단편적인 욕망과 그것이 어떻게 하나의 집중된 곳으로만 편향되어 있는지를 자신이 파리-되기를 통해서 재영토화하고 탈영토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장준석의 이미지들은 타자적이다. 이미지들은 무수한 해석과 의미화를 이루기보단 경험과 교환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치켜든 욕망과 고개 숙인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 어떤 특수한 이질적인 요소들이 전체 속으로 탈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점들을 모색하는 것이 장준석의 이미지들이다. 탈주는 결코 위안이나 도피처가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가는 출구다. ■ 김복수
Vol.20041119b | 장준석 영상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