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117_수요일_05:00pm
관훈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5번지 Tel. 02_733_6469
기억으로 존재하는 풍경과 정물 ● 윤정선의 회화는 일상적인 평범한 풍경과 정물을 소재로 그려졌다. 작가와 사물과의 관계는 사람들과의 그것만큼 인연이 깊다. 사람과의 관계처럼 그가 접촉하였던 사물과 풍경들은 하나의 빛바랜 사진처럼 기억으로서만 존재되고, 객관적 관점이 되어 그의 회화로서 존재하게 된다. 일기를 써 내려가 듯 일상의 이미지는 묘사되고 감정이 배제된 듯 무채색으로 그려진다. 4호의 그림들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발티모어의 성이라 부르는 발티모어의 벨베도르(Belvedore) 하우스, 그가 여러 번 갔던 발티모어 항구 Inner harbour, 뉴욕의 소호에서 처음으로 만났고 걸었던 전화기는 여행했던 곳의 추억을 담아내고 있다. 마치 카메라로 찍어 나만의 색깔을 찾아 컴퓨터에서 기억의 색깔을 만들어내 듯 회색과 갈색과 카키색으로 칠해진 풍경들은 세련되면서도 공허하다. 그러나 공허함은 여행지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복합된 감정과 시간의 흐름 속에 그것을 연속해서 느끼지 못하고 거리를 두게 되는, 또는 차분하게 기억을 더듬게 되어 감정을 분류하게 되는 관조와 다시 그곳을 그리게 되는 애틋함 이 모두 담겨있는 섬세함이다.
특히 「Inner harbour 1」은 항구의 끝에서 찍은 그림자인 듯한 그림에서 비스듬한 바닥 선과 그 너머의 하나의 톤으로 보이는 배경은 바다 같기도 하고, 하늘같기도 하여 회색 빛 도시의 저 너머 바깥세계를 암시한다. 너무나 단순하여 추상적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무심한 풍경의 조각은 자아와 비 자아의 상충작용의 세계이며, 틈의 세계를 말하는 듯하다. 그것은 극도로 민감하여 그 이후의 모든 풍경의 조각을 기억하게 하여 실상과 상상의 끝을 오가는 경험을 부여한다. 윤정선의 회화에는 추억과 추억을 넘어서는 아련한 감상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것은 「from 'English patient'」에서 극단적으로 볼 수 있는데 추운 겨울 맨하턴의 한 극장에서 봤던 기억에 남는 장면과 영화가 끝난 시간인 새벽 1시경의 고즈넉한 도시풍경이 함께 겹쳐진 감성으로 표현된 것이다. 3개의 캔버스에 푸른색의 모노톤으로 그려진 풍경은 영화 속의 스틸처럼 보여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풍경과 추억으로서 그 때의 그 감성은 그의 회화를 통해 감정이 이입되어 운명의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윤정선의 정물은 아주 사소한 물건을 그린 것들이다. 친구가 보여주었던 하늘색 수면제, 친구에게 주었던 같은 일기장, 친구가 떠나기 전 선물로 준 지갑, 치즈 케이크의 달콤한 맛보다 더 아름다운 무늬가 그려진 겉 종이, 추억의 대화를 나눈 프랑스 카페의 각설탕 등 작은 사물이지만 하나 하나마다 기억이 담겨 있다. 일상의 순간들과 과거의 기억들이 교차함으로 현실의 순간과의 차별성을 가져다주지만 그 소재의 일상성으로 인해 그것들의 가치는 연장된다. 가벼운 톤과 터치로 표현된 투명성으로 그 소재의 보잘것없음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나 가운데 중심에 위치함으로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자리 잡아 그 중요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 그의 회화의 배경은 비워둠으로 공간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가운데 위치한 사물의 예민함을 더욱 표면에 드러나게 한다. 그래서 그의 사물은 시공간을 초월한 영원성을 부여받아 하나의 존재가치로서의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회화의 새로운 탐구 ● 오늘날 회화는 여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탐구되어지고 있다. 미술의 역사를 짊어지며 평면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가야할 때 화가의 고통은 대단하다. 그럼에도 매체의 역사성과 그린다는 행위에 매료됨으로 화가들은 여전히 평면을 고수하고 있다. 윤정선은 이 시대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회화에 사진, 비디오 영상매체의 영역을 도입해 새로운 회화를 표현하고자 한다. 컨셉과 드로잉의 초기 작업으로 기억되어져야할 사물과 풍경을 디지털 카메라로 담거나 비디오카메라에 담아 컴퓨터에서 색채를 선택하고, 비디오장면에서 스틸을 정하는 형식을 차용하여 그림의 장면들을 결정한다. 비디오작업이 여러 대의 기계를 통해 동시성과 공간성을 실험하듯 그의 회화도 여러 개의 장면들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며 시공간을 넘나들게 한다. 빠르게 흔적이 없이 그려진 터치 역시 이런 시간의 흐름을 잘 말해주고 있다.
윤정선은 캔버스 안에 또 흰색의 틀을 남겨두고 그림을 그려냄으로 TV 혹은 공간 안에서 비춰지는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회화의 역사적인 면을 말하기도 하는데 이미지와 허구로서 존재하는 재현의 역사를 인정하며 화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그림이 그려지길 원하는 것이다. 틀 안의 공간에서 작가는 더욱 자유로워져 내밀한 개인사적인 내용을 담게 되어 깊은 감성의 화면을 만들어내게 된다. 이미지로서 인정된 공간 안에서의 자유로움은 그 안에 그려진 화면에 힘을 받쳐주며 응집의 탄력을 만들어 낸다. 즉 틀과 틀 안에서의 안과 밖의 변증법이 크게 작용하여 시공간의 자유를 만들어낸다. 회색의 무채색은 틀 안에서 표현된 작가의 세계를 객관화하며 더욱 무심한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윤정선은 이 시대를 어떻게 투영해서 보여야 하는지를 실험하고 있는 젊은 작가다. 우리는 그의 회화를 통해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상호 침투한 섬세한 일상을 발견하게 된다. 이 경험은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사물들이 옛 기억이나 추억이 오버랩 되어 무한한 시공간의 여행을 하게 되는 즐거움을 제공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어린 왕자가 꿈의 가치를 말해주는 것처럼 우리를 순수의 시절로 이끌게 될 것이다. ■ 김미진
Vol.20041117b | 윤정선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