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117_수요일_06:00pm
인사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Tel. 02_735_2655
20세기 마감 후에 두드러진 변화 가운데 하나가 육체의 개념이다. 지난 세기에서 육체란 정신의 하위 개념으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보조적 수단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육체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육체는 모든 표현의 대표적인 자리에 서게 되었다. 세상은 육체 자체에 주목하여 독립적인 미학의 의의를 두기 시작하였으며, 육체와 관련이 없는 개념까지도 육체를 통해서 표현하게 되었다. 911 사태로 세계무역 센터가 무너진 경우를 생각해보면, 새로운 흐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세기적 사고는 피켓을 들고 반테러 시위를 하였을 것이며, 해골과 총 등이 소품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21세기의 지금은 어떠한가 호주의 여인들은 푸른 잔디 위에서 알몸으로 "NO WAR" 라고 말한다. 전쟁과 알몸을 연결시키는 현시대는 육체를 가장 중요한 표현의 하나로 내세운다. ● 전례 없이 다양해진 육체의 시대에서 대상에 깊고 세밀한 관찰 없이 육체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語不成說이다 육체가 중요한 시대라면, 육체에 대한 개념을 변화 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을 위한 기본태도는 육체로 표현된 모든 시도를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본 작업은 이를 위하여 몇 가지 각도로 육체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시각은 누드의 열풍이다. 2003년부터 불기 시작한 누드 열풍은 톱스타 이승연의 문제까지 일으켰다. 그는 누드를 표현하기 위하여 위안부 할머니들까지 이용할 정도로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였다. 누드지상주의의 극한적인 단면을 보여준 이 사건은 우리 시대의 누드가 무엇인가를 되묻게 한다. 이승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는 인격보다는 육체에 가치를 두는 세대가 되었다. 우리는 어떠한 인품을 소유했느냐를 묻기보다는 얼짱인가 혹은 몸짱인가를 묻고 있다. 육체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의식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시각은 육체의 가치이다. 우리에게 正義나 公義의 가치는 하락하였다. 대신 육체가 소중하여졌다. 이라크 선거에 대해 취재를 한 파너즈 파시히 종군 기자에 의하면, "투표소가 폭발하여 몸이 산산조각 나거나 미국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무장 세력에 살해될 수도 있는 판국에 선거라니, 농담합니까."라는 냉소적인 대답이 대표적이라고 하였다.
이 세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상처받기 쉬운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는 것이다. 육체의 가치는 이념이나 정의보다 우의에 있다. 세 번째 시각은 육체의 다양화이다. 육체가 소중해진 만큼 육체에 대한 가치도 다양해진다. 외모 지상주의와 육체를 통한 자아표출이 한창일 때 버블 시스터즈가 등장하였다. ● 뚱뚱한 몸매를 당당히 흔들며, 가창력을 뽐내었다. 그들의 살찐 육체는 또 다른 육체의 확대를 가져왔다. 비로소 다양한 육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역도 선수인 장미란은 육체의 확대된 가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아름다워야 할 매개물로서 감동을 준다. 외모를 최상의 가치를 둔 현시대에서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육체의 다양한 각도를 전달하려고 한 이 작업은 감각 기억을 통하여 표현한 것이다. 감각 중에 촉각에 호소하기 위하여 여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삼베, 붕대, 레이스 등의 천 조각을 사용하였다. 그것들을 캔버스 위에 두껍게 찍어 이미지를 생산해내었다. 이는 신체의 주체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찍혀진 물성을 통해 감각 기억으로 일깨워지도록 의도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유도된 감각 기억이 리얼리티한 형상과 만나고, 얼마간 물감이 부어지는 행위 속에 스며들거나 배어나와 가리면서도 보여 지는 이중성을 띠게 된다. 이는 바탕이 주제가 되기도 하고 겉이 속이 되기도 하며 사라졌다 나타나는 심리적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본 작업의 의도는 육체라는 형상이 그 시대를 표현하는 시각 언어로서 고정성과 편협성을 거부한다. 육체에 대한 표현은 마치 뉴스나, 일련의 체계적인 사건의 과정처럼-단면이지만, 여러 각도로 늘어놓은 조각처럼-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즉 본 작업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물성을 통한 감각은 형상화 과정을 거쳐 시대적 반영의 대상물로 상정하고 리얼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감시 카메라이다. 좁은 공간에서 볼록렌즈로 대상을 잡아내는 이 기계처럼, 나의 작업이 이 시대의 물결을 좁은 시야로 잡아낸 것은 아닐까 혹은 일그러진 형상으로 우리 시야를 어지럽히는 것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앞선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우리 아파트의 감시 카메라가 나름대로의 직무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임현옥
Vol.20041116b | 임현옥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