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여의(年年如意)

권순익 회화展   2004_1115 ▶ 2004_1124

권순익_소요(逍遙) 200401_캔버스에 유채_61×61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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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115_월요일_05:00pm

한전프라자 갤러리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35번지 전력문화회관 1층 Tel. 02_2055_1192

가까이. 세상 가까이 ● 그림을 그리며 생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 그린 것과 못 그린 것에 대한 정답도 없고, 운동 경기 하듯이 일등 이등 나눌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누군가 지독히도 힘이 센 누군가가 등장하여 '당신은 일등이고 너는 꼴찌야'라고 말한다면 무척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예술 활동을 접어버릴지도 모릅니다. 등수가 없는 것은 누구나 일등이거나 누구나 꼴찌라는 말과 흡사합니다. 이 말은 세상의 모든 것일 수도,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닐 수 있다고 해석해도 억지는 아니겠죠.

권순익_소요(逍遙) 200404_캔버스에 유채_61×45.5cm_2004
권순익_소요(逍遙) 200405_캔버스에 유채_61×45.5cm_2004

어느 산악인은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화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 그림 그리기이고 너무나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왔기 때문에 그림 그리기 이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 본적도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느 화가는 모든 화가일런지도 모릅니다. 지금부터 제가 잘 아는 어느 화가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 화가의 인생은 잘 모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의 그림이야기 이며, 예술이야기 이며, 예술가의 생존 방식과 예술관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마흔살이 넘어 마흔살이 넘은 아내를 만나 알콩달콩 살아가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렵니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 그 화가는 어느덧 세상 가까이 와 있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자기세계가 이제는 모든 세계와 흡사히 닮아있습니다. 그의 세상은 모든 사람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예술은 멀고 인생은 짧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이해 될 듯 말 듯 한다고 합니다. 저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가 그려내는 그림 세상은 제가 사는 세상과 같다고 느낍니다. 제가 사는 세상과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이죠.

권순익_소요(逍遙) 200403_캔버스에 유채_61×45.5cm_2004
권순익_소요(逍遙) 200402_캔버스에 유채_61×45.5cm_2004

권순익의 그림 가까이 ● 그의 그림은 초여름 새벽이슬과 닮았고, 비 개인 여름날의 물안개와 닮았다. 어지러운 세상과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 고요하고 편안한 안식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토요일 늦은 시간에 보는 명화극장과 비슷하다. 상투적인 어투와 일상의 코믹을 엮어내는 시트콤드라마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보면서 회상하고 감상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소담스럽게 스며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연년여의年年如意"를 보자. 2002년 4회 전시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그림은 온갖 행복을 다 가졌으면 하는 바램의 의미 속에 일상의 무늬들을 화면 가득 채워 두었다.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담담함이 속삭임으로 시선을 간지럽게 한다. 우측 상단에 흰색으로 발려진 것이 구름이 되고 하늘이 되고 넉넉한 고향의 품이 된다. 그것이 골목길에 놓여진 개똥이면 또 어떠한가. 흰색에 절반쯤 가려진 것이 태양이 면 어떠하고, 터지기 직전의 민들레꽃이면 어떠하고, 30촉 백열등이면 어떠한가. 세상을 바라보는 권순익 시선 안에서는 태양과 구름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의 모든 것이 되고 만다. 아랫부분의 알록달록하게 (사실은 그리 많은 색은 아니지만) 칠해진 사각틀 위로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세워지고 그 위에 또 다른 색면들이 그려져 있다. 색면들은 아파트이거나 우리네 동내 지붕이거나 세상사는 사람들의 삭막한 칸막이 이거나 이다. 거기에서 새로운 가지가 생겨나 또다른 세상을 만든다. 그곳 역시 사람 사는 동내일 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피안彼岸여기인데'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그 아래로 밭이 있고 들이 있고 세상사는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우측 하단의 빨강색 파랑색 노랑색의 네모는 아무나가 즈려놓은 분비물이고 세상의 자양분이다. 하나는 전부이기 때문에...

권순익_同樂 200403_캔버스에 유채_62.5×90.5cm_2004
권순익_年年如意 200408_캔버스에 유채_97.5×145cm_2004

또 다른 "연년여의年年如意"가 있다. 이번에는 세상 밖을 그려내었다. 좀 전의 그림은 세상 안에서 피안彼岸 이번에서는 들로 산으로 강으로 흘쳐 벗어나 있다. 올챙이처럼 생겨먹은 작은 산하나와 그 산보다 더 큰 잠자리 한 마리, 이글거리는 햇살과 빨간색 물결파문, 연밥(연꽃역시 불교적 의미가 아닌가 싶다), 하얀색 나무가 캔버스 하나 가득 메우고 있다. 지렁이처럼 생긴 강물은 들을 지나고 밭을 지나고 사람들이 사는 동내를 지나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그림을 보면서 무엇을 느껴야 한다는 의무감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권순익의 그림을 보면, 그저 묵묵하게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을 듣는 기분이어서 흡족하다. 세상 밖에서 우리 세상을 바라보면 이러한 모양일지도 모를 일이다. '니네들 그냥 그렇게 살아가니? 무척 재미있겠구나.'

권순익_年年如意 200401_캔버스에 유채_62.5×72cm_2004
권순익_年年如意 200412_캔버스에 유채_90.5×62.5cm_2004

사람 가까이 ● 최근의 미술을 보면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아래서 너무나 어려워져 있습니다. 예술작품과 함께 이론이 필요하고, 분석하고 사회구조와 비교하지 않으면 예술이 아닌 듯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 권순익의 그림에는 세상이 있고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는 예술인데 어려운 이론이 꼭 필요하다 생각하진 않습니다. 그가 만들어내는 도자들도 그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도자 이야기도 하고 싶은데 그림이나 도자나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한통속입니다. 특별합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요즘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특별하게 특출한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때문에 보통의 것이나, 일반의 것을 만드는 것이 더욱 특별하다.'고 하더라구요. 권순익의 그림이나 도자는 매우 특별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고 즐기면서 왜 특별한지를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박일양

Vol.20041114a | 권순익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