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110_수요일_05:00pm
성보갤러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4번지 Tel. 02_730_8478
아수라, 그 환각의 미니멀 ● 서지현의 사진은 꿈속, 우주여행 중 만났거나, 깊고 어두운 바다 속, 느린 헤엄치기 가운데 언뜻 보았던, 수면 위의 환한 빛의 풍경들이다. 별들의 생멸(生滅)이 창조한 찬란함 같고, 푸르고 깊은 침묵 속을 헤집고 들어온 바람 같고, 어머니의 자궁 안에 가득 찬 생명의 숨결 같기도 하다. 나의 궁핍한 상상력은 이 사진 같지 않는 이미지 앞에서 쩔쩔매며 '같고, 같고'를 이어 나간다. 익숙한 사진들과 결별함으로 얻어진 암시적 이미지의 매력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불편함과 '같고, 같고'와 같은 상상력의 유발에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기존 사진에 딴죽걸기 시도는 언뜻 재치의 소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순한 재치만 드러내는 가벼움을 털어 버린 것이기에 이 사진들은 매력이 넘친다.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통찰력을 젊은이다운 상큼함으로 풀어내기에 가벼운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사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진이란 사진기와 대상과의 일정한 거리 둠에서 나름대로의 인식을 얻는 것 일 터이지만 서지현의 세계는 사물들끼리 서로 들러붙고, 엉키어 있어 어떤 것도 마음 속에 저장 된 단어들과 짝짓기를 할 수 없게 만든다. 뭐라 이름지을 수 없는 이 혼돈의 사진들은 그대로 아수라 사진들이라 부르고 싶다. 빈속에 술 몇 잔을 털어 넣고 세상을 볼 때, 그것이 그것 같은 그 흐릿한 세계의 아수라 말이다. 전경과 배경도 없고, 주제와 바탕이 뒤섞이고, 선과 윤곽이, 색채와 패턴이 아수라가 된 사진은 실체는 사라지고 환각만이 미니멀한 형태로 남는 독특한 세계이다. 그러나 이 카오스 상태의 세계가 실은 생명의 씨앗(卵)을 숨기는 세계라는 것이 이 젊은 사진가의 범상치 않은 인식이다. 마치 천지 창조 이전의 카오스 상태를 아수라의 세계에서 엿보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보고 있는 외양(外樣)의 세계를 너머, 그 어떤 세계를 보고 싶은 욕심을 사진을 통해서 드러낸다. 어쩌면 우리가 보고 있는 저 세계는 실재의 모습이 아니고 그것의 그림자일지도 모른다는 것. 처음 서지현이 달걀 찍기로 시작 된 이 작업이 수년간 계속 됨으로 인식의 지평을 확대 한 셈이다.
사실적 대상을 재현해야 된다는 틀에서 벗어 날 때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흐릿한 색들이었다. 텅 빈 인화지 위는 빨강, 노랑, 파랑과 같은 기본적인 색들로 붐비는 평면의 공간이자 사진가가 3차원의 공간을 뒤틀어 놓은 흔적들이다. 찍은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주변의 둥근 형상을 띈 모든 것이다. 둥근 어떤 것! 그것이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둥근 것에 사진가는 매달리는 것일까? 그 까닭을 생각하기 전에 이 사진들의 제작 방법을 생각해보자. 그녀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모든 대상은 렌즈의 초점 범위 밖에서 찍을 것, 강한 색상을 얻기 위해 렌즈의 앞에 혹은 조명 앞에 색 필터를 사용 할 것. 둥근 것과 색 필터 그리고 초점 밖의 심한 아웃 포커스. 이것이 서지현이 사용한 모든 기법이고 그 결과물은 3차원의 환영이 없는 미니멀한 색의 축제이다. 이 색 추상 사진은 애초부터 그 대상이 무엇이냐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상상력의 사진이다. 즉 지각 된 구상적 이미지가 감각을 통해서 사진가의 정신적 이미지로 바뀌는 일종의 이미지 도착(倒錯)을 자신의 반응물로 내놓는 것이다. 대상의 원형은 죽고 흔적만을 남겨두고자 하는 것이고,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고 찍은 자가 상상력에 기대어 찍듯, 보는 자 역시 상상력을 동원해 보라는 주문이다. 그것은 사진가의 내부 이미지가 대상으로부터 오는 '날' 이미지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고, 물질 속에서 그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의 소출(所出)이다.
이제 흔적만을 남긴 '둥근' 것들에 생각을 모아보자. 왜 견고한 입방체가 아니라 구를 수 있는 구(球)인가? 많은 민담과 전설이 생명의 기원을 둥근 동굴의 형식에서 취하듯, 서지현 또한 생명의 메타포를 '둥근' 것으로 풀고 싶어한다. 마치 태극기의 한 가운데 있는 원이 음과 양이 공존하는 생명의 세계이듯 '둥근' 것 속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는 양극성의 세계가 상생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 세계는 신이 세계이고 화해의 세계이며 모질지 않은 세계이다.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그 '둥근' 세계를 이렇게 썼다. 하늘이 만든 것 치고 어떤 물건이건 모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저 모기 다리, 누에 궁둥이, 눈물, 침 같은 것이라도 둥글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넘어짐이 없는 '둥근' 세계에서 사진가는 생명의 상상력을 키워간다. 감정 표현적이고 개성적인 세계를 입동(立冬) 지난 겨울의 문턱에서 만나보자. 아마도 다른 사진과 차이를 벌리고자 애쓰는 한 젊은 사진가의 힘을 느낄 것이다. 이 차이를 밀고 가는 힘이야말로 진정한 자기 세계를 갖기 위해 길 떠나는 첫 걸음 일 것이다. 나는 이 힘이 시간의 퇴적 속에서 점점 강성(强性)해 지기를 바란다. ■ 최건수
Vol.20041110c | 서지현 사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