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송은문화재단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04_110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3:00pm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주관적 시간을 '짓는' 작업들 ● 최은정은 시간을 짓는다. 어쩌면 시간의 결과물을 짓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듯하다. 시간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지만, 그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바람과 같은 구조이다. 바람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것이 스쳐지나간 흔적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나뭇잎과 거세게 변한 광폭한 파도는 그곳에 바람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시간은 바람과 같아서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만질 수 없지만, 바람과 같은 시간은 최은정의 작업에서 무수한 결과 겹 그리고 층위를 통해 머물어진다. 최은정의 작업은 시간의 은유이자, 시간 그 자체를 짓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공간의 층위는 시간의 집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작들은 시간의 구축과 신문지죽을 사용하는 점에서 2002년 덕원갤러리 개인전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다소 변화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 작업의 경우는 한층한층 쌓아 올리는 방식이 구사되어 '겹'과 '층'에 대한 관심이 드러난 바 있다. 이 증축의 방법은 전체적으로 반구형의 형태와 구축물 형태의 작품에서 보이듯이, 시간의 퇴적과 그 추이의 과정을 명확한 어조로 환기시켰다. 이와 같이 시간을 축적하려는 다소 정직하면서도 객관적 방식이, 최근작에서는 작품 크기의 확대와 더불어 주관적인 감정이 생동감 있게 이입되고 있는 것으로 변화되고 있다. 즉 무심한 객관적 시간 쌓기로부터 주관적 시간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른 연계된 감정들이 작업에 활발하게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고 가지런하고 선명한 시간의 구조는 이제 감정의 이입으로 이완되어, 은유적이며 감성적 구조를 지닌 것으로 나아갔다.
단순한 동심원의 형태가 아니라 다양한 결과 두께 등이 창출해낸 부조 작품에서는 논리적 시간이 퇴적되고 있는 느낌보다는 바람과 같은 시간이 몰고 온 결과들이 산재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시간을 객관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비객관화시키기 위한 '주관적 시간'이 삽입된 듯하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과 통로를 일관되게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가가 시간의 경계 속에서 느꼈던 명상, 기분, 감정 등을 포함함으로써 주관적 시간이 활성화 되었다. 따라서 예전의 작업이 소박하고 젊은 시간을 지향했다면, 최근작은 훨씬 미묘하고 섬세한 서정적 시간을 지향하고 있다 하겠다. 그것은 시간의 영구화를 넘어 그 경계 속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까지 포괄하는 복잡미묘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최은정의 작업의 율동적인 선은 보는 이를 시간의 현장 속으로 이끌어 몰입시키게 하는 파동이다. 그 운율은 시간의 흐름 속에 마음을 던지게 하여, 그곳에 서 있게 하는 새로운 경계가 된다. 단지 시간의 증축을 바라보게 하는 시선을 넘어서, 그 표면과 질감 속으로 끌어들여, 어느덧 새로운 시간의 핵으로 이끌게 하는 장이다. 그것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시간의 경험을 초월하게 한다. 마치 그것이 지층의 단면을 연상시키게 하는 다소 구상적 환기를 하게 하더라도, 비유적인 율동들은 흐름으로 인해 그곳의 구체성을 망각케 한다. 마치 무수하게 형성된 높고 낮은 등고선, 무수한 지형의 골짜기, 깊고 얕은 계곡의 파동과 운율은 빠르게 일상적 시간을 교란시키고, 그곳에 비일상적 시간과 주관적 시간을 머물게 한다. 관람자는 그곳에 빠져들어 흔쾌히 길을 잃도록 자신을 맡겨 다른 시간의 여정을 떠난다.
이번 작업에서 최은정은 시간을 구축하는 반복적인 행위를 넘어서서, 시간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부드럽게 구사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즉 그것은 시간과 감정을 미묘하게 결합시키는 시간을 짓는 방식이다.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까지도 섬세하게 포괄된 주관적 시간을 제시한 것이다. 최은정은 시간을 짓는다. 시간을 짓는다는 것은 시간의 리얼리티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함께 하여, 그것을 벗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시간의 결과물을 무심히 제시하는 아니라, 시간을 이해하며 그것과 공존하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 김지영
Vol.20041107b | 최은정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