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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105_금요일_05:00pm
희망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58-80번지 Tel. 02_337_8837
내가 아는 한국의 일본 작가 유학생은 두 사람이다. 첫 번째는 현재 동경예대 교수로 있는 나카무라 마사토. 90년대 초에 홍익대 대학원에 재학하면서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던 그는 이불, 최정화, 고낙범 등 당시의 젊은 작가들과 교유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유사성과 차이에 대한 깊은 관심을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두 번째가 이십대의 젊은 여성인 이토 아카네. 나고야 출신으로 일본에서 이미 활발하게 전시와 퍼포먼스 활동을 하다가 한국의 계원조형예술대학 특별과정으로 유학을 왔다. 두 사람의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나카무라 마사토는 90년대 초 이제는 일본의 간판스타가 된 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함께 앞서 말한 한국과 일본을 이발소 간판이나 신문로고, 일기예상도 등의 문화적 아이콘들로 비교하는 전시를 가졌던 반면, 이토 아카네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주관하는 젊은 작가들의 프로모션 전시인 게이쥬츠 도죠 (藝術道場) 그랑프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결성한 'Team Potato'라는 그룹으로 금상을 받았다.
이토 아카네의 작품들은 크게 페인팅과 퍼포먼스, 그리고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리는 개인 출판물들, 만화 그리고 초 저 예산 애니메이션 등으로 열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은 일관된 톤으로 서술되는 작가의 몽상과 기억, 사적인 경험들, 사람들에 대한 관찰,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신의 입장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이토 아카네의 작품 속에서 흥미로운 것은 시각적 서술의 방식이다. 그는 아주 짧은 일화를 한 컷의 이미지, 혹은 여러 컷의 이미지로 압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대부분의 서사는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중간 부분으로 되어있다. 페인팅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는 대체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주변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려나간다. 이들은 왠지 알 수 없지만 후지산에서 뿜어져 나온 고래의 입 속에서 온천을 즐기고 있거나 (「a paradise」) 역시 후지산에서 뿜어져 나오면서 계란을 익히고 있는 주방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의 모자는 구름, 혹은 화산에서 비롯된 연기처럼 보인다 (「I am a chief of cook」). 또 다른 그림에서는 전통 일본화에서 볼 수 있는 수직형의 구도로 가족과 세간, 심지어는 개집과 마당의 나무까지 모두 이고 어디론가 떠나는 일본의 어머니를 그리고 있다 (「무제, 2004」). 한 화면에 복잡한 이야기를 압축하는 이러한 서사방식은 일견 초현실주의적 배치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생활에서 엮여져 나온 생각의 구성물들이다. 대체로 그의 작품들이 단순한 배경과 간결한 묘사로 이루어진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대상에 매우 근접한 화면의 구성을 고려한다면, 그의 그림은 심지어 현대적 '하이쿠'의 시각적 번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이쿠에서 보이는 대상에의 빠른 줌-인(zoom-in)은 여기서는 이미 줌-인된 사물들의 생략된 연쇄로 다루어져 있을 뿐이다.
일본의 단편만화는 그 촌철살인의 성격이 한국의 그것과는 다소 다르다. 훨씬 싱겁다고나 해야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순간적 포착으로 파고드는 시선은 한국의 그것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유의 속도감과 방향을 가지고 있다. 이토 아카네가 그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페인팅에서 보여지는 압축감에 더하여 구어체 대사의 속도감과 모호하지만 순간적으로 명멸하는 감정을 가볍게 약간 어눌한 필선 위에 실어서 보여준다. 예를 들어, 애니메이션 「무릎을 껴안은 남자」는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한 시선의 거리와 마음의 접근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릎을 껴안고 아무 것도 안하고 앉아 있는 남자는 사실 매사에 사려 깊은 대답들을 전해준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혼자 방안에서 끄적거린 종이들을 콤마촬영으로 이어놓은 듯한 이 애니메이션의 형식적 가난함은 오히려 그 때문에 서사의 섬세함을 부각시킨다. 강한 마음씀과 섬세한 시선, 어눌한 필선과 빈곤해 보이지만 끈기 있는 기법. 감동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최근에 이토 아카네가 한국과 프랑스의 젊은 작가들과 함께 '국경'이라는 주제로 작업한 『우미노 소라미(海野空美』 프로젝트는 타블로이드 신문 형태로 일본의 어떤 코스모폴리탄 여성의 삶을 픽션으로 다룬 것이다. 특징은 이 여성이 '괴물'이라는 점. 어떤 일본 남성이 기린과 사랑에 빠져 태어난 아이로부터 비롯된 이 엄청난 유전자 합성의 결과물은 결국 인간, 기린, 새, 물고기, 거북이, 도마뱀, 투구벌레, 개 등이 혼합된 형태의 여성으로 이어졌고 그녀가 바로 우미노 소라미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성 역시 만만찮은 합성체. 혈연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아시아의 작가로서 그녀가 지어낸 혼성에 대한 이 공상물은 그 내용만으로 상당한 재미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세세한 디테일과 사건들을 구성하는 작가의 말투와 필치 역시 유머와 세심함이 가득하다. 다만 '변신'으로서의 정체성 이후에 동일한 문제들의 선상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이어질까가 궁금해진다.
이토 아카네의 한국에서의 작가적 모험은 한국말을 배우고 그것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의 관심과 시선이 움직이는 방식은 우리에게 흥미로운 거울을 제공한다. 그의 친구들도 점점 더 한국에서 자주 전시를 하고 있다. 경원대학교 갤러리와 '스톤 앤 워터'의 전시는 한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준 바 있다. 이들의 작업이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그려내는 지형과 더불어 지금보다 나은 교류를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흥미로운 영역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 유진상
Vol.20041105b | 이토 아카네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