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군자

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2004_1103 ▶ 2004_1109

강석문_소매화 笑梅花_한지에 먹과 흙과 채색_160×13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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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무니지니 카페_cafe.naver.com/munijini.cafe

초대일시 / 2004_1103_수요일_05:00pm

갤러리 가이아 GALERIE GAIA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7-1 Tel. +82.(0)2.733.3373 www.galerie-gaia.net

소만(小滿)에 모심듯이 그린 그림 ● "봄날처럼 살고 겨울처럼 죽자. 강석문이 쓰고 다짐한다." 강석문은 고향인 풍기에서 과수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고되고 힘든 농사일과 그림 그리기를 병행한다는 것은 보기에는 낭만적일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먹고사는 일과 작업하는 일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겹쳐 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작업할 시간적 여건을 마련하는 것 못지않게 시골에 살다보니 미술계 돌아가는 일이나 전시를 볼 기회도 그만큼 힘들어서 스스로를 추스리고 다잡을 기회, 자극을 갖기도 사실 만만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는 사과농사를 짓다 최근에는 매화(매실농사)를 키운다고 한다. 농사짓다 보면 그림을 못 그릴 것 같아 일을 줄이고 어렵게 마련한 시간에 그린 근작을 보았다.

강석문_소소매화 笑笑梅花_한지에 먹과 채색_72×91cm_2004
강석문_소매화 笑梅花_한지에 흙과 먹_65×94cm_2004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낙향한 5년의 시간이 그 그림 위에 땀처럼, 비처럼 떨어져있다. 나는 그림 앞에서 오래된 사과나무냄새와 매화냄새, 땅과 거름냄새, 그리고 그 사이로 헤집고 다녔을 지렁이와 뱀, 온갖 풀과 꽃들의 체취를 맡고 있다. 어눌하고 유치한 필치와 글씨가 낙서처럼, 아이들 그림처럼 슬금슬금 펴져 있다. 밭고랑이나 논길을 걸어 다니고 과수나무 사이로 들락거리던 몸의 기운들이 고스란히 그것들을 닮은 '필력'으로 되살아난다. ● 자연과 뭇 생명들과 함께 한 이 일부러 못 그린 그림은 기존 동양화 필법이나 먹의 쓰임, 세련되고 매력적이며 고상한 취향 내지 현란한 기법의 구사와는 거리가 멀다. 의도적인 파격이나 자유분방함, 소박함과 소탈함이 물이 되어 흐른다. 자연계의 만화경이 그림 안에서 번성하다. 인간의 인위적인 설정이나 경계, 형상의 틀에 사로잡힐 수 없는 자연만물의 생태와 본성을 자연스럽게 흩트려 놓았다. 사실 자연의 본 모습이 그런 것이다. ●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일과 과수 일을 하면서 그림을 병행해야 하는 작가로서는 늘상 자연과 직접적인 체험,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은 관조나 감상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시골에서는 별달리 볼 것도, 오락도, 유흥도 없다. 자연과 벗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그 자연은 마냥 심미적 대상에 머물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삶의 현장에 다름 아니다. 그러한 잠시 문득 자신이 자연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음을 새삼 깨닫는다. 자연은 너무 신비스럽고 따라서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실측과 헤아림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따라서 자신 역시 그런 자연처럼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

강석문_초초충충 草草蟲蟲_한지에 먹과 채색_36×140cm_2004
강석문_충충초초 蟲蟲草草_한지에 먹과 채색_36×140cm_2004

비로소 나무와 풀과 꽃, 온갖 자연계의 생명체가 생존의 욕망을 구현해나는 공간을 이루고 있음도 본다. 그는 거미, 달팽이, 지렁이, 잡초, 꽃, 나비, 매화나무, 회화나무 등을 화면 가득 그렸다. 직접적인 사생을 거친 이 그림은 그것이 하나의 그림으로 치장되기 이전의 날것으로서의 존재성, 직접적으로 자연과 함께 살고 노동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문득 발견하고 깨달은 모습들이다. 종이 위에 농사를 짓고 과수나무를 돌보듯, 매일 접하는 자연을 본대로, 느낀 대로 올려놓은 것이다. ● 이 그림 안에는 농사짓고 매화나무 기르면서 번지는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찰과 그림에 대한 고민, 시골생활의 근심과 자신의 자의식이 풀처럼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상황과 처지, 나아가 현실을 전통적인 사군자와 초충도, 절지화 형식을 차용해 풍자하거나 조롱한다. 전통은 패러디 되고 자기 생은 그 전통의 맥락 위에서 미끄러지고 겹쳐지면서 흔들린다. 일종의 키치화 된 전통화이자 어설프고 우스꽝스럽게 '카피'한 그림들은 "어디 한번 쌍스럽고 촌스럽게 그려보자"는 생각에서 나온 것들이기도 하다.

강석문_회나무가 있는 풍경_한지에 먹_50×57cm_2004
강석문_회나무가 있는 풍경_한지에 먹과 쪽 생염_87×152cm_2004

조선시대 양반문화의 전통이 여전히 유장한 고향에서 겪게 되는 전통과 현대간의 갈등, 유교적 이념과 근대성의 이념간의 배리 및 동양화를 전공한 자로서의 전통에 대한 일종의 부채의식 같은 것들이 착잡하게 얽혀서 나오는 강석문의 그림은 한켠으로는 박제화 되어 있는 전통을 흔들고 해체하며 또 다른 측면에서는 21세기의 군자 상, 사군자와 초충도를 그 위로 덧쓰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고향 풍기는 유교이념과 양반문화의 자존이 여전한 곳이다. 한국 전통사회의 윤리와 문화적 근간이 현재의 시간 속에서 현실적 힘으로 작동하는 곳이라는 얘기다. ● 양반문화와 이념이 요구되고 그것이 척도로 작용하는 곳에서 산다는 것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고한 시선 속에 자신이 가늠되는 불편한 상황을 노정한다. 그래서인지 그림들은 대부분 그러한 상황과 연관된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박제가 되고 형해화 되어 버린 전통이 현실적 삶에 뼈대를 이루는 기이한 공간, 양반(군자)에 대한 신분적 이상이 무의식적으로 요구되는 삶에 대한 반성, 상념이 그것이다. ● 매화를 그려놓고 매화꽃에 갓 쓴 사람의 얼굴 내지는 가족의 얼굴을 가득 그려놓거나 흑립과 도포를 두르고 있는 자화상 그림, 재미있는 좌우명과 함께 손바닥, 발바닥이 그려져 있는 그림 등은 그런 문맥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무척 자조적이며 신랄한 풍자가 깃들어 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자신의 생활과 삶에서 나오는 일종의 '문인화'를 그리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문인화가 그러했듯 자신의 구체적인 일상적 삶에서 궁구하고 깨닫고 그렇게 살아가면서 스스로를 다짐하던 경계의 의미로서의 그림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농사짓고 과수일 하다가 발견(격물치지)한 자연의 모습을 그린 그림, 회화나무 세 그루가 있는 자신의 작은 집 풍경, 갓 쓴 남자 얼굴(작가의 초상)이 매화가 되어 매달려 있는 매화나무 등이 나로서는 변형된 동시대의 문인화, 일상화에 가까운 그림들이란 생각이다.

강석문_멋대로_한지에 먹과 채색_75×70cm_2004
강석문_소만 小滿_한지에 먹과 채색_71×74cm_2004

시골생활은 돈이 귀한 삶이다. 따라서 촌에서 산다는 것은 돈을 많이 버는 삶이 결코 아니다. 무엇이든지 있는 것을 아껴 쓰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돈버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자투리 종이를 활용하고 망친 그림을 이용해 그리는가 하면 그림의 크기 역시 대부분 작은 것들이다. 시골에서는 재료 구하기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있었던 것을 응용하거나 활용하는 재활의식이 그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본다. 이 검소함에서 소박한 생활의 내음이 번져 나온다. 좋은 그림은 경제적 그림이다.

강석문_다짐_한지에 먹과 콩댐_36×66cm_2004

현대미술이 뮤지엄을 의식하고 백색의 벽면을 절대화시키면서 대규모화되거나 스펙타클화 되고 혹은 매체의 연출로 줄달음질치고 있는 형편에 작가는 역으로 나간다. 작고 평범하며 소박한 재료, 일상에서 자연스레 취한 재료들을 가지고 늘 보던 전통화 형식을 끌어들여 그 위에 자신의 심성을 또박또박 눌러 쓰듯이, 그려나갔다. 자기 육신의 무게와 의식의 중량, 마음의 근들이 서로 포개져 얹혀진 화면 위에는 낙진처럼 자의식이 그렇게 내려 앉아있다. 자기가 보고 느낀 것, 자신에게 다시 반향이 되어 부딪쳐 나오는 비수 같은 경계의 언어들과 자조와 반성이 한 몸으로 얽힌 삶 안에서 식물들이 자라듯 그려낸 강석문의 그림에서 가물하고 퇴색된 전통화의 서늘하고 예리한 정신의 편린들이 유머와 풍자 속에 문득 발아되고 있음을 본다. 꽃이 피고 풀이 자라듯, 지렁이가 지나고 뱀이 스치듯, 매화가 피고 지듯, 모든 것이 즙이 되고 사람이 살다 죽듯이 말이다. ■ 박영택

Vol.20041105a | 강석문展 / KANGSUKMOON / 姜錫汶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