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04_110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02_725_1020
김은영의 「품 만들기(poom making)」에 관한 단상 ● 작가 김은영은 붉은색을 주조로 한 따뜻한 숨결의 화면을 보여준다. 방울방울 둥글고 붉은 원들이 때로는 눈송이처럼, 때로는 꽃잎처럼, 때로는 꿈틀거리는 생명체처럼 화면 위에 가득하다. 작가는 이들 숨결처럼 스며드는 붉은 원들이 만드는 화폭으로 세상을 포근하게 안아보려 한다. 즉 작가는 자꾸만 거세지는 문명의 힘과 거기에 비해 자꾸만 적막해져가는 사람들의 내면에 한 올 한 올 뜨개질을 하듯 온기를 불어넣고 싶은 맘으로 작업에 임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품 만들기(poom making)」라 명명한다. 작가가 쓰는 '품(poom)'이란 말은 '두 팔을 벌려 안아 주는 가슴'을 지칭한다. 이 의미로부터 작가의 작업은 삭막해져가는 사람들과 이 세계를 따스하게 보둠어 안는 행위와도 같은 맥락에서 '품 만들기(poom making)'라 칭한다. 차가워지고 단절된 관계들을 뜨개실 한 올이 자아내는 연속적인 관계의 형상처럼 따스한 가슴을 바이러스와 같이 연쇄적으로 전염시키고 싶은 소망을 담는 과정이 바로 작가만의 '품 만들기'이다. ● 일종의 행복 바이러스와 같이 따스함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다는 작가의 깊은 내면에는 현재 우리의 삶과 예술에 만연된 자극과 충격, 그로테스크함, 단절 등의 부정의 분위기와 정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다. 즉 역사 저 너머에서부터 지속되었던 예술의 고유한 기능으로서의 향수의 가치는 퇴색해져가고, 벤야민(Walter Benjamin)의 말처럼 산딸기 오믈렛이 갖는 그 고유한 향내와 미감 같은 예술의 아우라(aura)를 찾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인냥 여겨지는 지금의 예술적 상황에서 가능한 한 그 긍정의 고유한 예술적 정서를 다시금 환기시키고 싶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부정의 미학이 아닌 긍정의 미학을 상기시키고 삶과 예술에서 풍요로운 따스함의 정서를 고취시키고자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작가는 따스함 혹은 따스함을 넘어 정열을 대변하는 붉은 색을 주된 색조로 선택한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는 살과 피의 색채인 그 붉은 톤이 「2002년, 붉은 시청」, 「Between」, 「Love Virus」, 「Love Pulse」등의 작품에서 시작된다. 「품」이란 타이틀이 등장한 것도 2002년부터인데, 이때의 「품」에서는 밝고 화사한 정서를 환기시키기 위해 노랑색과 보라색 등의 파스텔 톤의 한지와 둥근 원들을 접목하여 부드러운 숨결을 만들어냈다. 이와 같이 그 해에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따스함의 정서를 「품」으로, 그 주조를 붉은 색으로 윤곽 잡게 된다. 다음해 2003년에 「품 만들기」가 등장하는데, 작가의 화면의 너른 품안에 조금씩 서사적 이미지들이 끼어든다. 입맞춤, 연인, 나무, 하트 등이 붉은 톤의 화면과 둥근 원들의 구조 속에 들어오면서 「품 만들기」과정으로 형상화된다. 이 시기 자신의 둥근 원들의 연쇄적 형상으로 뜨개질의 이미지가 구체적으로 보여지기도 하고, 새로운 재료와 색채들이 시도되기도 한다. 그리고 2004년 올해 작가는 뜨개질의 형상들이 만들어내는 유연한 흘림과도 같은 연속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작업들을 완성한다. 예컨대 클림트의 「키스」에서 이미지를 차용하여 세기말의 운명적 입맞춤으로부터 부드럽고 따스한 입맞춤의 형상으로 구체화하는가 하면, 무수한 뜨개질의 연속구조 속에서 분연히 미소를 머금은 자신의 얼굴을 떠오르게 하는 등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들은 품 만들기의 작업에서 따스함의 주체를 작가 자신과 동일시하고 그 주체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온기를 퍼트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 이렇듯 작가는 따스함이라는 온기어린 정서를 붉은 색의 모나지 않은 둥근 형상들의 반복과 뜨개실의 연속체 그리고 입맞춤과 같은 이미지로 보여줌으로써 세계에 대해 긍정의 시선과 의미를 음미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 박남희
Vol.20041102a | 김은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