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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표류(漂流)하는 사람들 / 2004_1029 ▶ 2004_1112 초대일시_2004_1029_금요일_06:00pm 참여작가 / 권두현_임태규_최익진
② 스치는 공간:일상의 생경함에 대한 고찰 / 2004_1116 ▶ 2004_1130 초대일시_2004_1116_화요일_06:00pm 참여작가 / 김수현_정세라_정재호
갤러리 드맹 서울 강남구 청담동 12-17번지 Tel. 02_543_8485
Reality in Banality, 진부함 속의 리얼리티 ● 일상(日常)이란 것에 대해 말해 보려한다.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 곳이건 그곳에서 얼마동안 반복적인 일을 할 경우 일상은 그 일과(daily routine)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그래서 그 반복성으로 인하여 흔히 말하는 우리의 일상은 진부하다. 조금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하자면 우리의 일상은 내가 지내는 서울, 낯선 이들의 어깨와 맞닿아 흔들리는 지하철 안에 있고, 무표정하게 서로 같은 모습으로 서 있는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선 동네의 저녁 무렵에 새어나오는 불빛 속에도 있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이십대를 다 소진(消盡)해버린 신촌의 소란스러운 골목 안에도 있다. 그래서 일상은 피상적으로 우리가 사는 이 익숙한 도시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물리적 장소를 떠나 반복적으로 만들어내는 우리의 판에 박힌 '일과' 안에 있는 것이다. ● 이런 일상에서 시작된 예술들-예를 들자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시작이 늘 우리가 젖어 사는 일상에서 시작되어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아가는 길고 짧은 여정을 다루고, 차이 밍량 감독의 애정만세(愛情萬歲,1994)가 도시 젊은이들의 공허한 삶과 우리가 사는 도시를 생경하고 건조하게 그리는 것처럼-은 평범한 주변에서 마주치는 일상의 다양한 모습과 익숙한 공간들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저변에 깔린 진실을 담아내며 이것은 시각예술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것으로 말미암아 이미지의 전쟁과 담론의 범람 속에 살고 있는 지금, 예술은 우리들 주변의 소소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일상의 주와 부의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런 관점에 대해 이충걸은 그의 글, '슬픔의 냄새'에 이렇게 언급했다. ● "요즘 문화적 기류는 범속하거나 평범한 것들을 강조하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어떤 시리얼 상자를 살지 상자들을 찬찬히 살펴보거나, 테니스 셔츠를 반바지 속에 넣어야 할 지 논쟁을 벌이고, 초콜릿을 두껍게 바른 칩이 가져올 사회적 반향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세기인 것이다.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들이 어떤 경계를 두고 구별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지가 갖는 진실에 호기심을 갖는다." ●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미술에서 '일상성', 즉 삶에 대해 말하는 미술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Trend)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일상의 진부함 속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미술로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시를 통해 개성 있는 젊은 작가들이 우리 주변의 것들-사람들과 공간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관조하고 그것을 다양한 매체의 작업으로 표현한 '진부함 속의 리얼리티'를 본다는 것은 각별한 일이 될 것이라 믿는다. 또한 이번 전시를 통해 별 의미 없이 다가오던 우리 주변과 일상을 돌아볼 수 있다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그것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 ● 때로 판에 박힌 일들이 주는 진부함과 일상 속에 눅눅하게 자리 잡은 안주를 참아내지 못함을 소리내어 말해 보는 것, 혹은 제 스스로의 일상조차 갖지 못한 채 부유(浮遊)하며 주변인(周邊人)으로 떠도는 이들을 관조해 보는 것, 계속되는 일상을 생경하게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의 팍팍한 일상을 되짚어 보는 것, 너무 익숙해져서 마냥 스쳐 가는 일상의 공간을 남과 다른 시선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어느 커피 광고나 아파트 광고문구에서 그려지는 '인공의 안락과 행복의 미소'는 없더라도 우리들 가까이에서 보여지는 일상의 다큐멘터리를 정지된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들이 여섯 명의 젊은 작가들-김수현, 권두현, 임태규, 정세라, 최익진, 정재호-의 진지한 성찰과 그들만의 감각을 통해 보여 질 것이다. ● 주변을 돌아보기보다는 제 앞만을 보며 살아가기 쉬운 요즘, 화가의 눈을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 진부함 속에 존재하는 진실과 예술가적 상상력은 무엇일까? ■ 양옥금
나는 내 사진이 다음과 같기를 바랍니다. / 내 사진은? / 기억을 불러오는 출발점이기를 /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을 ( 볼 수 있는 ) /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 할 수 있는 ) /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 만들 수 있는 ) / 그의 생각이 잠시 머물러 ( 쉴 수 있는 ) / 그래서 과거와 대화할 수 있는 쉼터가 되기를.... / 또 / 희망이 있음을 보여줘 / 어느 누구도 홀로가 아님을 알려주길 바랍니다. ■ 권두현
그간 나의 작업은 1회, 2회 개인展을 통하여 주변인이라는 화두로 줄곧 일관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주변인이라는 것은 어느 쪽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타의든 자의든 문화와 사회라는 영향아래 일상생활에서 끝임 없이 충돌하고 나름에 변증적으로 변해 가는 정체성의 이탈과 도전 받는 현대인의 강박적 심리 세계 속에 나의 그림의 화두는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작업해온 인물들과 세계관은 이러한 나의 의식의 저변에서 생겨난 실존적 물음의 부산물쯤으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다양한 세계관과 문화의 체험, 일상 속에 녹아든 이념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며 말하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목소리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주변인은 이러한 저변에 존재하는 자기중심 가치관을 주변인이라는 익명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복합적인 가치관의 상충들과 부유하고 방황하는 가치관들을 관심 있게 바라보며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적 어감에서 지금 시대정신을 자신의 삶 속의 솔직한 독백의 고형성(固刑性)으로 표현하려 노력하였다. ● ...중략... 나의 작업은 먹에 흠뻑 젖은 두터운 장지 위에 얇은 한지를 대고 그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내가 말하고자 하는 주변인과 인물을 고형성(固刑性)으로 표현하고자 자연스레 얻어진 표현방식이다. 선의 엉킴과 섬약한 정교함 속에서도 정신적 차원에서 인물의 형상을 운위하여 주변인의 익명성과 불특정한 소수 또는 다수의 표현성을 형상화하려 하였다. 소재와 취택과 주제의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변인은 우리의 모습 혹은 나를 포함한 자신이외에 누가 될 수 있는 부유하는 의식일 것이다. 나의 그림 속에 원초적인 갈구와 탐구는 현존해 있는 자신이 처해있는 정체성의 부재들과의 맞섬으로 파상적인 제스처에만 자족하는 것이 아닌 문화적 혼성 속에 자신을 찾아가는 방식을 나타내고 있다. ■ 임태규
일상성(everydayness) ●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를 들어 보면 또 하루 멀어져 간다... 작기 만한 내 기억 속에 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라는 가사가 나온다. 도시에서 무미건조하게 사는 나의 모습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이렇게 대중가요에서도 등장하는 일상성 역시 건조하게 반복되는 삶, 분절되어 계속 병렬되는 시간에서 일상성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 끊임없이 소비되는 삶, 철저하게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 오로지 표면에만 집중하는 모습, 이렇게 일상성은 욕망으로 점철되어 읽혀진다. 이러한 우리의 팍팍한 삶의 태도는 일찍이 하이데거 역시도 일상성의 속물이라고 경계해 왔다. ● 나에게 있어 일상성이란 사물의 표면으로 다가왔다. 그 표면은 도시풍경으로, 버스를 타고 획 지나가는 너무나 짧은 거의 초 단위로 분절되는 시간으로 이해되었다. 깊이는 존재하지 l않고 넓이만 존재하는, 투사되지 못하고 반사되어 튕겨 나오는 풍경, 이러한 풍경은 자본주의 풍경의 전형이다. 자본주의 전형에 물든 우리는 성숙한 시각과 미성숙한 지각을 동시에 지닌 퇴행적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한 표면은 위선과 소외, 무의미 등을 상징하며 욕망의 덧없음을 말하고자 한다. ■ 최익진
나에게 있어서 방이라는 공간은..... 과거, 현재, 미래 언제나 나와 함께 하는 곳.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시간이 흐르고 나를 비롯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움직이고 변해간다. 꼭 방안의 모습을 그린다기 보다는 방이라는 하나의 공간을 통해 그 속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과 상상, 공상을 통해 나를 중심으로 일상을 거쳐 넓은 세상을 바라보며,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요소와 공간적인 개념 그리고 긴장감과 스피디한 분위기로 전개시켜 오늘도 나는 또 다른 나만의 공간세계를 그려나가고 있다. ■ 김수현
도시, 편리한 삶과 모든 혜택을 주는 풍요로움. 그러나 이면엔 온갖 키치와 싸구려 모조품들로 뒤죽박죽인. 이 모든 것들을 다 드러내놓는 낮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밤은 도시를 아름답게 포장한다. 어둠 속에서 도시는 새로운 풍경으로 나타나고 ,여러 가지 색으로 빛나는 조명들과 함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슴푸레 발광하는 빛들은 각자의 삶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평범하게 보이던 일상의 꿈틀거림. 꿈인지 현실인지 인수 없는 모호한 상황들. 뒤틀린 숲과 엉킨 도시의 불빛들. 수많은 욕망으로 녹아 내린 도시. 밤... 그리고 꿈._생활의 발견 전시 글 중 부분발췌 ■ 정세라
사물들 ● 사람들이 떠나고 비어있는 아파트에서 그 삶을 증거하는 것은 버려져 있는 무수히 많은 사물들이다. 한때 누군가의 소유였을 가구며 가전제품이며 옷가지들은 그 주인이 떠난 뒤 이리저리 뒤엉키고 쏟아지고 흩어져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사물(死物)이 되어 버렸다. ● 사물들은 항상 그 사물의 주인에 대해 얘기한다. 낡은 구형 가전제품들과 유행이 지난 옷가지들, 인쇄된 최후의 만찬 그림이 들어가 있는 값싸 보이는 액자 그리고 영어단어가 빼곡이 적힌 연습장과 김장 담그는 방법을 적은 노트, 집의 크기에 비해 과분해 보이는 피아노와 용수철로 움직이는 목마. 그 말없이 딱딱하게 굳은 죽은 물건들 위로 사람들의 모습이 유령처럼 떠오른다. 연속극을 보며 주말저녁을 보내는 가족들, 남루한 살림을 꾸리며 한숨을 쉬는 어머니, 스탠드 아래서 잠든 가족들 몰래 볼륨을 죽이고 라디오를 듣는 소녀,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창에 나무를 대고 못질을 하는 아버지. 까르르 웃으며 새로 산 목마를 타는 아이. ● 아파트의 이곳저곳을 점유하고 있는 사물들은 마치 오래된 지층 마냥 쌓여서 그 겹겹의 시간들을 증거하고 있다. 이 아파트가 처음 세워졌을 때 이곳에는 청와대의 경호원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대를 추억하는 책과 사진들이 여기저기에서 발견된다. 앞면이 완전히 뚫린 1층의 어느 집의 방바닥에는 방금 전까지 누가 있었던 것 마냥 가지런히 이불이 깔려 있다. 그 머리맡에는 청와대 비화 류의 책들이 쌓여 있고 또 그 옆으로는 봉사단체에서 골판지에 적어놓고 간 무료세탁에 관한 메모가 놓여 있다. 이 방의 주인은 아마 이 아파트에서 그 시대를 관통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아마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해 낮에도 이불을 펴고 생활했어야 했을 그 노인은 이 구멍 뚫린 집에 자신의 삶의 끄트머리를 그렇게 박제처럼 굳혀놓고 떠나버렸다._2004. 청운시민 아파트 전시도록에서 발췌 ■ 정재호
Vol.20041101b | Reality in Banality, 진부함 속의 리얼리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