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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본관 1층 Tel. 02_2124_8800
Ⅰ. 소위 '미술'이라는 용어가 보다 다양한, 일상 밖의 여러 의미들을 담으면서 진행되어 온 현대미술이 그 시작을 보인지도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간 미술은 새로운 재료와 방법적 시도를 통해 다양한 흐름을 만들어 왔다. ● 현대미술이 시작된 60~70년대, 하나의 미술흐름이 일정 기간동안 한국미술을 주도하기도 했고, 각기 다른 경향의 단체들이 양립하면서 다각적인 관점에서 방법적 모색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 다양한 재료와 실험을 통한 방법적 모색이 가장 활발했던 때가 현대미술이 시작된 10~20년 사이가 아니었나 싶다. 그동안 미술의 재료로 사용되어지지 않았던 사물들, 예를 들어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런 구조물들(철판, 나무, 돌, 흙, 천 등)이 등장하고, 동물이나 사람을 통한 이벤트, 행위미술, 개념미술, 대지미술, 그리고 여러 실험적 양상의 평면회화 등 다양한 시도 속에서 미술은 어느 때보다도 활기를 띠었다. ● 이러한 가운데, 70년대 중반 경부터 재료에 대한 물성 탐구, 평면이라는 지지체에 대한 관심, 진정한 한국성에 대한 모색의 열기가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일기 시작했다. 다양한 미술적 실험과 서구 미니멀의 영향 속에서, 70년대 작가들의 실험정신과 정체성 모색을 통해 보여진 단색조 회화, 즉 모노크롬은 이러한 열기의 결과로 등장한 미술이라 할 수 있다. ● 이 『한국의 평면회화, 어제와 오늘』展은 현대미술이 시작된 이래, 한국의 정체성 모색의 결과로 나타난 평면회화가 변모되어 온 모습을 조명해 보고자 마련한 전시이다. 60~70년대부터 활발한 활동을 보여온 원로세대와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젊은 세대 작가들간의 20~30년 간극, 즉 평면을 해석하는 방법과 의식의 갭(gap)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기획되었다. 그것이 단순하게는 작품의 재료, 화면의 크기나 모양의 변화 등으로 보여지지만, 30년이라는 시간적 차이에서 나타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 물성에 대한 탐구, 시대적 현실의 반영 등은 평면회화를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정신적 기반을 마련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20~30년의 갭을 가지고 있는 세대들의 평면을 해석하는 방법, 그리고 한국에서 단색조 회화가 보여주는 흐름과 더불어 그 정체성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Ⅱ. 박서보의 연필 묘법은 신체 운동의 결과물과 정신적 세계가 함께 녹아있다. 끊임없이 긋고 지우고, 또 다시 긋고 지우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감정보다는 신체의 행위가 개입된 작업이 마침내 흰 바탕위에 그어지는 반복된 선으로 작품의 완성을 보이는 것이다. 가장 순수하고 만족한 상태에서 정지시킨 작업에는 손에 의한 선과 천과 그것을 이루는 캔버스라는 사각 틀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묻어난다. 캔버스의 모서리에 가까스로 칠해진 색채와 선은 아슬아슬하게 캔버스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다. 마치 벼랑으로 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듯 조심스레 그어진 자국은 그 위에 그려진 연필 선과 함께 캔버스 자체에 긴장감을 형성하며 캔버스라는 틀 자체를 명확하게 구분짓고 있다. ● 마포나 면포의 캔버스를 지나간 윤형근의 넓은 붓자국은 칠해진 색이나 남아있는 천 자체의 그 어느 것도 서로를 지배하려 들지 않는다. 진하게 칠해진 암갈색은 마포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 그 흔적을 남기고, 마포 천의 흰 면은 칠해진 색 속으로 자신을 감추며 스며들어간다. 인접해 있는 면 사이를 잔잔하게 진동시키며 서로를 감싸고 스며드는 관계는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키며 드러내는 무언의 공간이다. 어떠한 말도 없고, 어떠한 이미지도 없고, 어떠한 표현도 없이 자신을 비우는 무아(無我)의 세계로 빠져드는 공간이다. 마치, 평면을 분할하는 하나의 색면회화를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윤형근의 작품은, 그러나 작품이 담아내고 있는 공간에서 한없이 깊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말없이 잔잔하게 번지는 발묵의 정신속에 자신을 녹여 조용히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 정창섭의 닥종이 작업은 서구 현대미술의 도입에 대항하는 강한 의지를 지닌 정체성 표명으로 다가온다. 이 작업은 닥종이라는 가장 한국적인 재료에 자신을 합일시키는 행위를 통해 화면에 그 흔적을 남긴다. 물통에서 끊임없이 빨아대는 행위를 통해 씻겨져 나가고 남은 섬유질을 면포위에 고착시킨다. 끊임없는 손놀림을 통해 종이와 호흡하고, 그 안에 자신의 체온과 육신을 담아내는 행위는 물질과 육체를, 물성과 정신을 합일시킨다. 이것이 결국 평면적 행위로 귀결되지만, 그 안에는 행위를 통한 시간의 흔적과 자연의 생명력이 녹아들어 변화하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단지 평면회화라는 이차원적 세계를 넘어 그 안에 시간성과 생명력이 부여된 하나의 정신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캔버스 전체를 하나의 색으로 덮는 김기린은 흰색, 검정색의 캔버스에 빨강색, 노랑색, 오렌지색, 남색 등 강한 시각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캔버스를 인접시킨다. 커다란 캔버스 안에 일정하게 박혀있는 무수한 점들은 캔버스 전체를 덮고 있는 색 밑에서 원이라는 입체적 형상을 이루고 있다. 캔버스 표면을 덮고 있는 강한 색이 칠해지기 전 다른 색으로 그 형체를 이루어 그 위에 다른 색이 덮여짐으로써 밑의 수많은 원들이 살짝 그 형체와 색채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 「안과 밖」이 드러내는 효과이다. 작품 안에서 하나의 색채가 덮고 있는 작은 입체들은 그 명암의 효과를 통해 그 안에서 안과 밖을 보여주고, 그것들이 모인 하나의 작품이 인접해 있는 또 다른 작품과의 사이에서 서로 소통하며 공존, 혹은 확산됨으로써 색을 통한 열려진 세계를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 정상화의 모노크롬 작업은 아주 흔하게 미니멀 작업이라고 얘기하지만 작품들은 미니멀이라는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일체의 일루전을 거부하는 냉정한 미니멀은 그 안에서 연상되는 감정까지도 일체 거부한다. 정상화의 작품은 한국에서 모노크롬이라고 하는 미술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그의 백색 모노크롬은 다른 색들이 배제된 백색으로서의 모노크롬이 아니라 다른 색들을 머금고 백색을 표방하고 있는 모노톤 회화이다. 각각의 화면이 보여주고 있는 백(白)이라는 색들은 마치 한껏 물이 올라있는 나뭇잎이나 꽃 봉우리처럼 금방이라고 머금고 있는 색들을 터드릴 것 같은 그런 다양한 표정의 백색들이다. 그 안에 정교하게 화면을 채우고 있는 세밀한 모자이크 같은 균질들은 이 색채들 속에서 서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며 평면이라는 절대공간을 더욱 명확하게 해석해내고 있다. 평면의 탐구를 통해 평면이라는 것을 재확인시키면서도 그 안에 작가의 감성과 맑은 생명력을 담아냄으로써 깊은 정신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 끝없는 「접합」시리즈를 통해 물질과 정신, 혹은 물질과 신체의 일체감을 보여주고 있는 하종현의 작업은 그 안에 신체성과 물질성, 지지체에 대한 고민 등 70년대부터 작가들이 고민했던 많은 부분에 대한 끝없는 탐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까지도 작가가 끝없이 찾아 나가는 것은 자아가 물질에 합류하는, 우주에 합류하는 그 접합 지점을 찾는 일이다. 거친 마대의 깊숙한 곳에서 밖으로 밖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밀어내고 있는 물감은 그의 신체에 의한 정신에 의한, 물질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엉기성기 짜여진 마대는 작가의 신체성을 통한 물질성이 보여지는, 마대를 뚫고 나오는 물질과 신체의 접합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말없는 신체의 행위가 결집된 보이지 않는 이 평면의 접합 지점은 사물의 안과 밖, 환원과 확산, 긴장과 여유, 고뇌와 환희 등 작가의 내적 정신성과 외적 표현성을 한꺼번에 보여주고 있는 긴장된 지점이다. ● 김창열과 이승조는 평면을 해석하는 방식에서 여타 작가들과 차이점을 보인다. 물질 자체에 부여하는 성질이나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아낸 결과물로 나타난 모노크롬의 정신을 이들은 역으로 평면의 부정을 통해 평면을 인식해 가고 있는 것이다. ● 70년대 중반부터 줄곧 물방울의 화가로, 물방울이라는 불명확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온 화가 김창열은 사물이라고 할 수 없는 비물질적 요소, 곧 평면 속으로 사라져 없어질 듯한 물방울과 그 그림자가 보여주는 사물의 정체성을 통해 평면에 대한 인식을 명확하게 해준다. 표면에 그려진 물방울은 물방울이라는 비물질과 그림자를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그것은 자연으로서의 물방울이라기보다는 그 개념을 통해 평면으로의 환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이승조가 60년대부터 1990년 작고하기 전까지 줄곧 그려왔던 파이프 이미지들은 평면성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을 보여준다. 처음에 작가는 기하학적 추상이나 이후에 등장한 모노크롬에 영향을 받거나 대항하는 작품들을 통해 자신의 독자적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파이프를 연상시키는 띠 이미지로 일관된 작업은 시기별로 점차 변화를 보인다. 이미지를 거부하기위해 그려낸 그림들은 이미지를 수용하게 되고, 이미지를 수용한 작품들은 끝내 평면으로 환원되어 균질성을 통한 모노톤을 지향한다. 다른 작가들이 그리는 것 자체를 없애버리며 물질이나 구조 자체를 부각시켰던데 반해, 이승조는 평면과 모티프가 일체화된 개념적 평면으로써 다른 작가들과의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Ⅲ. 70년대 한국의 정체성 모색과 물성 탐구, 지지체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등장한 모노크롬을 하나의 흐름으로 만들어낸 작가들은 평면 안에서 이루어지는 물성 자체의 성질에 관심을 갖는다. ● 그것이 80년대로 이어지면서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화를 통해 보다 다양한 시각과 재료에 대한 새로운 정체성 모색으로 나타난다. 80~90년대의 산업사회가 보여주는 재료들을 통해 시대적 감수성을 담아내거나, 새로운 물성에의 탐구를 통해 최소한의 색채와 일루전 속에 작가적 감성을 담아낸다. ● 7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혹은 80년대의 정체성 즉,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대적 흔적들로서 단색의 회화가 재현되기도 했다. ● 70년대의 모더니즘과 80년대의 리얼리즘이 대립양상을 보이던 80년대 작가들의 작업에는 양 측의 이념 사이에서 방황하는, 혹은 모호한 지점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시대적 움직임을 담고 있다. 끊임없는 자기 발견을 위해 노력하는 흔적들, 또는 명확한 흑백의 논리를 표방하지 않는, 같은 색조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움직이고 있는 형체들이 드러나기도 한다. ● 또는 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단색이라는 명확한 색이나 선들이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지며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기하학적 양식들도 눈에 띈다. 색이나 선 자체가 의미를 갖는 결과물로서의 단색회화는 70년대의 작가들이 표방했던 모노크롬과는 그 근본적 의미가 다르다 하겠다.
Ⅳ. 강요하지 않는, 중성적이면서도 무한한 상상을 투영하는 흰색의 평면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아내고 있는 몇 명의 작가들은 어느 것도 거부하지 않고 무한정 받아들일 수 있는 흰색이 가지는 속성에 매료된 듯 하다. ● 최인선의 흰색을 통한 평면 작업에는 물성탐구에의 의지가 한없이 드러나고 있는데, 작가는 그것을 통해 자신을 감추고 물성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드러내고 있다. 평면의 캔버스위에 얹혀진 물질들은 '물성(物性)'을 드러내며 인격화된 하나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 ● 최근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작업은 아크릴과 돌가루를 섞어 칠한 흰색 바탕위에 크리스탈 비드(bead)를 잔뜩 얹어놓은 작품들이다. 그 위에는 아주 세밀한 드로잉들이 여기저기 그려져 있는데, 빛의 방향이나 양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들이 다르게 보여진다. 투명한 크리스탈 비드를 통해 우주적, 정신적 세계를 표방하고, 흡수되고 반사되는 빛들을 통해 물성과 비물성의 접점을 찾아내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를 보여준다. ● 전병현은 질료에의 탐구를 통해 여전히 한국성 모색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는데, 그가 자주 사용해온 대리석 가루는 조선시대의 백자와도 같은 유백색의 느낌을 담아내면서 그 안에 절제된 선들 혹은 점들로 최소한의 이미지를 그려내고 있다. 대리석 가루를 바르고 다시 문질러내기를 수차례 반복하여 얻어낸 밀도 속에 작가는 몇 개의 점을 찍거나 선을 눌러 그리고 '적(積)'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대리석 가루를 바르고 발라서 만들어낸 캔버스 자체를 지적하기도 하고, 그 위에 그려놓은 점, 선들을 지적하기도 하는 듯한 '적'은 작가의 절제된 내면을 돌가루위에 담아내고 있다. 작가는 70년대의 절제된 이미지와 80년대의 이미지 회복 사이에서 고민하는 흔적을 새로운 조형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 장승택의 폴리페인팅은 소재적인 특징을 통해 회화의 피부, 비물질이 접촉하는 물질의 표피를 강조한다. 폴리에스테르 필름과 플렉시 글라스라는 반투명의 재료들을 통해 자기방어적인 형태를 취하는데, 작업은 색채와 색채 사이, 경계와 경계사이에 존재한다. 흰색이 부가된 무채색의 색채로 어떤 선명한 색채를 택하지도 않고, 선명한 경계를 택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살, 피부와 같은 감수성을 지니며, 폴리라는 재료를 통해 그 표피를 살짝 덮어 버린다. 작가는 이런 자신의 작업을 '폴리페인팅(poly-painting)'으로 명명한다. 이것은 회화의 중층적인 구조를 보여주며, 중층적인 회화는 모호한 경계를 지향하면서 회화의 지층을 드러낸다.
70년대와 80년대는 사회적 이념과 갈등으로 인해 회화에 있어서도 많은 변화를 보이는데, 그 접점에서 고민하는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는 작가들이 있다. 김춘수와 문범은 70년대의 모노크롬 회화와 80년대의 구상회화 속에서 구상과 추상의 경계, 모노크롬의 물성과 구상회화가 가지고 있는 사실성, 혹은 70년대의 정신과 80년대의 이념사이에서 끊임없는 고민을 담아내는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 김춘수는 그림의 불확실한 형상을 언어적 기능으로 해석하여, 확실한 구상도 아니고 확실한 추상도 아닌 이중적 성격의 그림을 수상한 언어로 표현해 내고 있다. ● 작가는 70년대의 회화가 보여준 단색에 대한 관심으로 작품은 온통 푸른색을 담고 있지만, 색이 주는 의미나 내용 이전에 단색으로 표현해내는 제스처, 그 속에 감춰진 자신의 정체성에 관심을 갖는다. 색을 통해 얻게 되는 감정이나 다른 요소의 개입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단색회화에서 70년대와 80년대 사이의 작가적 고민과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 문범의 작품은 70년대의 모노크롬과 80년대의 사회적 현실에 주목한다. 먼저, 단색의 이미지들이 자유자재로 만들어내는 여러 형상이나, 단색으로 표현한 회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들, 마치 생명체와도 같이 움직이며 스며드는 이미지들은 버려지고 소외되는 산업사회의 상징적 산물들이다. ● 어떤 규정지을 수 없는 것,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서의 혼란스러움, 말할 수 없는 어떤 것, '그럴듯한',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이 되는 것이 그의 그림이다. 보편적으로 규정짓는 시각에 대한 반어적 방법으로써 그는 단색의 애매모호한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김택상과 이인현은 천에 중첩되는 색의 깊은 맛에 관심을 가진다. 색을 입히는 방식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결과물로 보여지는 색의 중첩된 섬세한 이미지들에서 잔잔한 감동을 보여준다. ● 천에 물감을 스며 색의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김택상의 작업은 마치 명상을 위한 깊은 수련과도 같은 과정이다. 작가는 천에 물감이 스며드는 느낌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재료가 하나가 되는 느낌에 관심을 갖는다. 여러 번의 물 흐름들이 만들어낸 색채를 통해 작가는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빛깔을 담아낸다. 노력 끝에 만들어낸 깊은 색은 자연의 빛을 머금고 숨을 쉰다. 은근한 멋을 지닌 색채는 그 깊이감과 색채를 머금고 있는 천이라는 사물의 물질성을 강조하며 마치 살아있는 피부처럼 숨을 쉰다. ● 이인현은 「회화의 지층」이라는 작품들을 통해 회화를 다른 모습으로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있다. 다량의 오일에 섞인 물감을 붓으로 엷게 발라놓은 작품들은 맑은 색들이 쌓이고 쌓인 붓자국의 선들이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이인현의 회화는 사방에서 바라보기를 시도하고 있는데, 정면에 그려진 묽은 붓자국을 통해 물감이 쌓여가면서 만들어지는 깊은 정신적 지층을 보게 되고, 물감을 한겹한겹 바르면서 나타나는 측면의 물감 층을 통해 시각적 지층을 발견하게 된다. 단색의 캔버스는 칠해진 안료에 의해 그 물질성이 여실히 드러나고, 그것을 정신적 세계와 연결 지음으로써 사물의 존재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을 통한 사고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다.
남춘모와 홍승혜의 평면회화는 최소한의 재료를 이용한 미니멀적 작품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천을 소재로 만들어낸 남춘모의 「Stroke Line」 연작들은 천이라는 재료가 보여주는 촉각적 성격에 좀더 엄격성을 꾀한 시각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ㄷ'자 형의 개별 단위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깨끗하게 재단된 선들이 보여주는 구조적 엄격성이 감정의 개입을 최소화시키고 있다. ● 홍승혜의 「유기적 기하학」 시리즈는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pixel)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형태에 대한 작가의 관심으로, 컴퓨터라는 화면 안에서 구축되어지는 사각형의 형태들이 만들어내는 건축적 공간은 감정이 없고, 은유가 없는 마치 현대 사회를 보는 듯한 절대 공간이다. 그 안에는 인간의 온기도, 조금의 어긋남도, 방황도 허용치 않는다. ● 그러나 이들의 작품이 미니멀 작품들과 다른 점은 그 엄격한 구조안에서도 일정 부분의 감정개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 남춘모가 허용하는 부분은 작품의 색채들이 담고 있는 은은한 색들이나 그 잘려진 선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그림자의 작용이다. 잘려진 선들의 연속성으로 인해 연상되는 운율과 은은한 파스텔 톤의 색조들이 담고 있는 감각, 그리고 화면을 덮고 있는 플렉시 글래스(plexiglass)와 그림자가 보여주는 빛과 그림자의 변화적 시각들은 모두 자연의 변화들을 통해 감각적 시각체험을 돕고 있다. ● 홍승혜는 하나하나의 세포로 간주되어 쌓여 중첩되어지는 픽셀들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작업을 통해 시간적 움직임과 공간적 깊이를 보여준다. 여타 작가들이 끊임없는 붓질을 통해 평면에서 추구하는 시간성과 공간적 깊이를 홍승혜는 컴퓨터라는 현대적 매체가 만들어내는 시간과 공간으로 대체시키고 있다.
Ⅴ. 70년대의 평면회화는 물성탐구와 지지체에 대한 고민 등을 통해 모노크롬이라는 단색화로서의 귀결을 보였다면, 80~90년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보여지고 있는 평면회화는 70년대의 정신 속에 80년대 이후의 사회적 현상들이 투영되어 보다 다양한 의미와 형식을 갖는 미술로의 변화를 보인다. ● 한국에서 현대미술이 시작된 이래, 많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어온 평면으로의 환원은 그동안 평면회화가 가지고 있던 회화의 구조적 개념에의 새로운 탐구에서 비롯되었다. ● 현재는 보다 다양한 재료와 방법으로 회화의 평면성을 모색하고 있지만, 작가들이 추구하는 작업은 그린다는 것과 평면과의 일원화를 통해 그려진 이미지 자체가 평면 속으로 환원되는 것이다. 그려진 이미지 자체가 평면 속으로 함몰되어 평면의 구조적 특성을 확인시키는 작업들이다. ● 70년대 평면회화를 통해 이루어진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은 앞으로도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모색되어질 평면으로의 환원 작업에 그 방향성을 제시했고, 한동안은 그 틀 안에서 평면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도 다양하게 모색되어질 평면성에 대한 탐구와 작가들의 변화되어 가는 정신을 꾸준히 지켜볼 일이다. ■ 이은주
Vol.20041031c | 한국의 평면회화, 어제와 오늘展 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