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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개인展   2004_1028 ▶ 2004_1109

이정훈_The labyrinth_혼합매체_설치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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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28_목요일_05:00pm

주최_아티누스 갤러리

작가와의 대화 2004_1102_화요일_05:00pm_당신도 공간 안에 있습니다

아티누스 갤러리 서울 마포구 서교동 364-26번지 Tel. 02_326_2326

게임으로 풀어낸 정체성 탐구 ● 국제화 시대, 이미지 중심 시대라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특성으로 인해 우리가 부딪치게 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그리고 그들과 동화가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겪게 되는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생각들, 그들과 경쟁하고 교류하면서 우리가 보여주고 나타내야 할 것으로 떠올리게 되는 것들이 바로 정체성에 대한 자각과 실현의 문제이다. 또한 후기 산업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들 중 하나인 실체개념의 해체 및 이미지를 통한 사유와 소통 방식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여 질 수 있는 자아의 이미지에 관한 기능과 효과에 대한 생각도 갖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점들이 또 다시 우리 자신을 규정짓는 정체성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오게 한다. ● 한 동안 영국에 가 있다가 불쑥 나타난 이정훈이 필자에게 보여준 작품들은 이런 정체성의 문제에 대한 고민들을 담고 있었다. 영국에서 그림공부를 하고 생활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고, 그것이 자신의 작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정체성 자체에 대한 생각으로 자신의 작품들을 이루어내려 했다 한다. 따라서 이정훈이 이번에 전시하는 작품들 대부분은 그가 생각해온 정체성 탐구를 향한 모색이라는 제목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정훈_The labyrinth_혼합매체_설치_2004_부분

이정훈의 전시는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제1 전시장에는 물리적 공간에 대한 그의 여러 가지 생각들이 담긴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프레스코 작품이 그려진 기둥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球 형태의 조형물들이 부유하고 있다. 그것들은 서로 만나기도 하고, 서로를 관통하기도 하며, 서로를 배척하기도 한다. 또한 그것들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벽면과 바닥에 표류하듯이 떠돌기도 한다. 기둥과 철 구조물 球라는 단순한 두 가지 형태들이 배치와 결합 방식을 달리하면서 전시장 공간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놓고 있다. 마치 단순한 구조를 통해 만들어낸 공간의 변주곡을 듣는 듯하기도 하며, 고요한 공간에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잔잔한 움직임을 보는 듯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의 이 작품들이 갖는 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만나는 물리적 공간 속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것들이다. 특정한 사회 속에 나 자신이 묻혀 들어가기도 하고, 이질적인 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긴장감을 갖기도 한다. 때로는 동화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배척해내기도 한다. 이러한 관계들이 이 작품들의 조형적 형태에 암시되어 있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사회 속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우리의 모습을 확인하는 과정으로 나타내져 있다. 프레스코 기둥이 나 혹은 우리라면, 철 구조물 球는 환경이 된다. 그리고 이 은유적 방식으로 만들어낸 공간 속에서 우리는 정체성 탐구라는 과제를 갖고 부유하고 있다.

이정훈_I, my, me, mine-who am I?_혼합매체_설치_2004
이정훈_I, my, me, mine-who am I?_혼합매체_설치_2004

이정훈이 보여주는 정체성에 관한 두 번째 물음들은 심리적 공간을 통해 나타난다. 사회나 특정장소와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는 제2 전시장에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로 심리적?문화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벽면에 붙어 있는 조각그림들, 벽과 바닥에 놓여진 박스들, 그리고 마스크들. 이 모든 것들이 그가 고민 해온 정체성이란 문제의 해결을 향한 모색으로 보여진다. 조각그림들에는 각 나라들의 문화적 상징과 이미지들이 기호의 형태로 그려져 있어 그것을 만들어낸 나라와 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인하게 해준다. 그 문화적 기호와 상징들을 원근법적 구성으로 조합을 해놓고 있지만, 때로는 하나의 초점에 모아지는가 하면, 때로는 퍼져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초점을 이룰 수 없도록 그려져 있다. 이런 방법을 통해 각각의 문화적 상징과 기호들로 대변되는 정체성의 문제가 하나로 모아질 수 없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문화간의 충돌과 교차라는 국제화 시대의 상황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이것들이 벽면을 미로의 형태로 가득 메워 놓고 있어 복합문화적 시대상황 속에서 정체성 찾기가 쉽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려 하고 있다. 벽면의 미로는 우리와 같이 정체성 찾기 게임에 참여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벽면의 빈 공간을 따라나서다 문화적 기호들을 새롭게 만나기도 한다. 그 기호들에 당황하기도 하고, 그것들이 인도하는 새로운 길로 접어들기도 하지만, 따라가는 그 길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또 다시 미궁에 빠지고 또 다시 새 길을 찾고자하는 시도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정체성 찾기에 대한 확신이라는 기대를 포기하게 된다.

이정훈_space-1_프레스코 스틸_설치_2000

이 밖에 정체성과 관련짓기 작업에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이정훈이 고안한 것 중의 하나로 마스크가 있다. 빈 마스크 위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천을 붙여 갖가지 형태들을 재현해 놓고 있다. 마치 파편화된 우리들의 삶의 모습 속에서 나타나는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 지기도 한다. 정체성과 관련하여 그가 사용한 또 다른 한가지 방법은 눈의 홍체이다. 홍체는 지문처럼 모든 사람들마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가 생각하는 자아의 모습의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박스 형태로 만들어진 상자 안에 놓여져 있다. 박스는 그 속에 놓여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고 있는 틀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구조와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때로는 백색으로 표면을 처리하여 발가벗겨진 채로 제시함으로써 그 어떤 편견없이 우리가 보여지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상자표면에 여러 가지 문화적 기호들을 그려 넣음으로써 문화적으로 규정된 틀 속에서 우리들이 보여지는 상황을 연출해내기도 한다. 이것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 보여지는 현실에 대한 적절한 은유로 작용하고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그 박스에 구멍을 뚫어 놓아 들여다보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람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작품세계로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역시 정체성 찾기 게임에 같이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쪽 눈으로 만 바라 보아야 한다는 점은 우리가 항상 제한된 시각을 갖고 세상과 우리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풍자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이정훈_space-2_프레스코 스틸_설치_2000

이상에서처럼 이정훈의 작품들은 우리자신의 살아가는 모습에서부터 시작해서 그 속에서 갖게되는 자아에 대한 인식, 나아가서 문화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정체성에 관한 여러 가지 생각들로 향하는 단계적 전개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그가 제시하는 대로만 움직여지기 보다는 관람자가 같이 참여하고 같이 모색해 보자는 제안적 형태로 담아내고 있다. 벽면의 미로가 그렇고, 박스에 담긴 각양각색의 마스크와 그리고 들여다보기라는 방식을 통한 홍체 인식의 과정이 특히 그렇다. 정체성이라는 무겁고 어려운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것을 찾는 작업과 그것에 대한 고민을 마치 하나의 게임처럼 풀어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분명한 메시지가 있기에 그 작업들은 지루하지 않을 수 있다. 또 형식적인 다채로움을 향한 노력의 흔적도 느낄 수 있기에 단조롭게 보이지도 않는다. 물리적 공간으로부터 심리적 공간으로의 이행이라는 어법도 시사적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작품의 형식들이 조금 거칠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많은 생각들을 작품 들 속에 담아내려 하다 보니 일관성과 형식적인 연결이 매끄럽지 않게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아닐까 생각된다. ■ 박일호

Vol.20041030c | 이정훈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