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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27_수요일_05:00pm
갤러리 피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7-28번지 백상빌딩 1층 Tel. 02_730_3280
자신을 위치시키기- '경계 위의 산' ● 정주영은 1996년에서 2002년도까지 7년간에 걸쳐 김홍도, 정선 등의 그림을 보고 부분을 확대해서 그렸다.(여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1999년, 2000년에 열린 정주영展의 각각의 도록에 실린 김학량, 유병학의 글에 나와 있다.) 이후 전과는 다른 그리기의 방식으로, 2003년에는 정선 그림의 행적을 쫓아 정선이 그렸던 한강주변의 실경을 보고 그렸다. 이때부터 실경을 직접 보고 그리기를 시작하는데, 올해에는 그들의 행적을 쫓지 않고 북한산, 불암산, 아차산, 도봉산, 수락산을 그려낸다. ● 정주영은 김홍도, 정선의 그림을 보고 그리면서 일정한 패턴을 가져왔다. 이제는 그 패턴의 연장선상에서 실제의 풍경을 모티브로 하여 그리는데, 여기서 그려내는 방식의 몇 가지 변화의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그려지는 대상의 프레임(대상을 읽고, 느끼고, 자기화 할 수밖에 없는 공감각적 체험의 원천적인 바탕)의 설정이다. 1996-2002년의 그림(이하 '전작'으로 칭함)은 절대적인 모티브가 되었던 김홍도, 정선의 그림 크기(산수화 크기는 대체로 30.4 43.7cm, 91.4 41cm 등의 범주에 머문다.) 안에서 내 몸을 노닐며 세상을 훑는 것이 아닌 그 사각의 평면적인 공간 안에서만 사유하는 것이었다. 이 안에서는 전후로 이동하는 사유는 힘들고 수직과 수평적 이동의 범주 안에서 의미가 발생하는데, 이로 인해 그의 전작은 수평적인 터치의 반복으로 화면이 형성되어 2차원적인 미감을 추구하는 수평적인 평면 화법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에 반하여 2003년 이후(이하 '후작', '최근작'이라 칭함)에는 그 평면사각을 벗어나 실제 강가나 산의 풍경(공간)을 취하게 되는데, 이는 '나'를 중심으로 360도 둘러쳐진 풍경의 공감각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는 요소들인 대상과의 간격, 공간의 울림, 공기의 움직임, 부피 등을 몸으로 감지하며 내 인식의 변환에 따라 다양한 현상들을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 어떤 움직임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먼저, 전작에서의 정적인 느낌의 느리고 수평-수직적인 터치로부터 빠르고, 힘차고,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그리고 좀 더 자율적인 붓놀림에로의 변화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작업이면의 작가적 태도의 변화이다. 이는 재현 자체의 대상이 작가의 몸을 관통해 실제 풍경에로 다가감을 말한다. 즉 김홍도, 정선이 실경을 재현했고 그 재현된 그림을 정주영이 재현(바다, 바위 등을 주로 대상하여 그렸음)했는데, 이제는 역으로 재현되었던 인식의 막이 실제의 대상을 재현하는 것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정주영은 원본을 버리고 실경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려지는 방식이나 화면구성은 전작들과의 연장선상에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작가 스스로 겪게 되는 중요한 지점이 바로 전시제목인 『경계 위의 산』(2003년에 『漢水船遊』라는 제목으로 전시한 것 외에 지난 3회의 개인전에는 전시제목이 없다.)의 의미다. 경계 위의 산. 이 말은 실재의 산은 존재하되 '나'의 위치(지리적 위치, 인식적 위치, 존재의 위치)에 따라서 산이 실재로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경계'라고 하는 것은 전방위를 두루 살피면서 내가 가야할 방향을 모색-실험하는, 즉 이동하는 전환점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식의 전환(변환-변이)에 따라 대상의 관점이 여러 현상 및 양상으로 변모하게 되는 지점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주영 작업에서의 '경계'의 개념은 원본과 차용, 관념과 실재, 진경과 실경, 추상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 그림 안의 그림과 그림 밖의 그림, 그림과 그림 등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을 더듬는 행위인 것이다.
궁극적으로 정주영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지속적인 피드백을 원하며, 여기서 돌출되는 현상들을 발견하고자 하는데, 그 현상들 중에서 무엇보다 '감각적인 영역'을 확장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산들을 그린 최근작들의 화면은 그 대상들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시도로 '날 것' 상태의 붓질들로 중첩된다. 그러니까 필의 감각적 운용(운율)이 일정한 리듬을 갖는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리듬을 깸으로써, 나와 대상의 간극에서 발생되는 혼돈이 확대되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그러한 움직임을 그는 대상(산)의 외형이 아닌 '속'의 부분을 트리밍하여 멀리 있는 그 대상화면을 주욱 당겨서 바위, 나무 등이 얽혀 있는 세부적인 것들을 생략하고 골격의 형태와 외형상의 느낌(자신의 위치와 대상의 간격에서 나타나는 아련한 움직임들을 포착)을 혼합시켜 그려낸다. 그 결과물은 형태면에서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은 추상과 구상의 사이에 머무르는 중간적인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는 보여지는 그대로의 사실주의적인 형태 이전 혹은 넘어선 그 대상으로부터 촉발된 흔적들의 생생한 감각을 그대로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산 그림들은 자연이 지니고 있는 혼돈의 잠재력을 극도로 위축시키거나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지금 여기까지, 최근작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정과 계기를 나름대로 파악해 보았다. 최근 작업들은 점차적으로 초기의 방식에서 빠져나와 그림의 원본이 아닌 실제 자연의 대상을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회화를 구축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 앞으로 그간 덧씌워진 막들을 하나씩 떼어내어 그려지는 대상에 덧붙이거나 제거해 가며 자신이 펼쳐온 패턴들이 변함 없는 산들의 경계를 얼마만큼 허무는가가 정주영의 과제로 남았다. 자기가 자신이 될 수 있는 곳... 자신을 자신이 아닌 어떤 것으로 만들어 주는 곳에 위치시키기 위한 방법으로서 말이다. ■ 이관훈
Vol.20041029b | 정주영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