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동화

대안공간 반디 전시기획공모II 정혜련 개인展   2004_1022 ▶ 2004_1031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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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22_금요일_05:00pm

대안공간 반디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34-26번지 Tel. 051_756_3313

I. 내게는 쉬운 책이나 단순한 만화 트렌디 드라마 썰렁한 코미디 등을 반복해서 보는 습관이 있다. 딱히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뭐든지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탓이기도 하고 새로운 것을 대할 때의 귀찮음 혹은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를 싫어하는 탓이기도 하다. 이러한 습관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알고 있는 뻔한 이야기들은 결과나 장면이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상황 내에서 전개한다. 그곳에서는 어떤 새로움의 시도도 용납되지 않으며 생각의 변화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너무나도 반복적이고 획일된 방법으로 사고를 하고 있다. ● 동화책에 나오는 이야기들... 누가 과연 그것을 어린시절의 여린 감성을 지켜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만 할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은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가장 편안히 받아드리게 하는 트레이닝과 같은 것이다.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어느 순간부터 이것들은 내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나를 비롯한 이러한 부류를 즐기는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도 같은 경향을 보인다. 반복적인 생활을 즐기고 삶을 그냥 받아들인다. 비판이나 저항은 악의 무리나 모순이 많은 어떤 특정 부류들이 행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는 아주 적합한 단어로써 이러한 인물들을 설명한다. 그는 습성을 보이는 인간을 "무사유의 인간"이라고 정의한다. ● 그는 한 유명한 악인의 사형장소에 참관하게 된다. 그는 그 사형수에게서 무시무시하고 사형수다운 모습을 기대 했으나 실제로 그는 아주 다정다감하며 선량한 공무원의 모습이었다. 성실하고 착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는 무엇이 그를 그렇게 당대를 뒤흔들 만큼의 사악한 인간으로 만들었는가를 생각하다 사람들의 "무사유"를 착안하게 되었다. ● 무사유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일을 잃어버린- 인간은 현실 속에서 많은 편견과 관념적인 행태들을 만들어내며 다수와 강자라는 절대전제를 만들어 본인도 모르는 악행을 소수나 약자나 혹은 그 누군가에게 가해하게 된다. ● 우리는 삶에 치우쳐 자신이 진실로 원하고 그것을 찾는 일을 잃어버리는 것을 어른이 되어가는 하나의 관례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 속에서 나는 악의 모습을 보고 있다. ● 이러한 장면들이 나를 구역질나게 만들고 있다. 아니 이러한 나의 모습에 혐오를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 어쩌면 동화를 읽기 시작하고 학교에서 교과서를 배우고 저질 영화를 보며 사춘기를 지내고 밤마다 트렌디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그렇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Ⅱ. 많은 작가들이 동일한 방법으로 작업을 전개해 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 그러나 머릿속에서 그려진 이미지를 밖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나타내는 일들을 할 것이다. 난 순간에 그려지는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모아둔다. 이미지들은 여러 번의 반복을 통하여 몇 가지로 추려지며 나는 다시 남겨진 이미지들의 원인과 연관성을 유추해 본다. 그러한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도구로써 나는 가죽이라는 재료를 사용한다. 인간적인 촉감과 시간의 간격을 감지할 수 있는 재료이자 과거에 각인된 차가운 사건과 내가 화해 할 수 통로가 바로 가죽이다.

정혜련_나쁜동화_가죽에 채색_가변크기_2004

이번에 보여주고 싶은 나의 작업은 매우 오랜 시간동안 내 머리 속에 존재해 왔던 이미지들이다. 그 기간은 조금과장하자면 책을 펼쳐보기 시작한 그 무렵부터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 이번에 펼쳐질 일련의 작업들은 내가 어린시절 즐겨 읽던 동화 속 인물들, 너무도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던 내 동화 속 인물들은 지금의 내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인물들의 사악한 표현과 왜곡을 통해 재해석된 동화 속 인물들의 표정들을 바라보며 우리의 무의식 속에 강요되었던 습관적 사고에 대한 반성을 하고자 한다. ■ 정혜련

Vol.20041027b | 정혜련 개인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