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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22_금요일_05:00pm
아트스페이스 ㅁ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02_722_8897
Intro ● 컴퓨터와 테크놀러지는 과학, 철학, 인문학뿐만 아니라 미술 분야에서도 끊임없이 다루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영원한 주제일 것이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과 핸드폰 사용의 일상화로 기존 언어들은 짤막하고 함축적인 기호나 부호로 쓰여진 새로운 감정의 언어들로 대체되고 있다. 이모티콘이라 불리는 이러한 신생 문자언어는 시간과 공간과 언어를 초월하는 새로운 소통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 사용은 세계적으로 점점 더 확산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감정의 국제어 혹은 만국공통어인 에스페란토인 것이다. 이 전시를 통하여 일상적으로 쓰여지고 있는 온라인 상의 수많은 이모티콘들이 미술관이라는 뜻밖의 장소에서 또 다른 미술 형태로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온라인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겐 온라인 문화와의 낯선 만남의 장이 되고 온라인에 익숙한 사용자들에겐 그들이 만들고 사용하고 있는 일상적인 언어가 또 하나의 미술의 형식이 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전시이자 온라인 문화와 오프라인 문화의 새로운 그러나 낯선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전시 타이틀인 Wellcomm은 well communication의 합성어로 보다 나은, 잘된, 좋은 소통의 방법을 말하며 발음이 같은 welcome의 환영의 의미로 해석해 전시로의 초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 이은화
예술로 접속된 이모티콘의 세계 ● 신설 갤러리 '아트 스페이스 미음'이 신진작가 발굴을 위한 공모 형식으로 기획한 이번 전시회는 그 동안 Josephina Lee(조세피나 리)라는 이름으로 독일과 영국에서 활동해 왔던 이은화에겐 유학생활을 결산하는 귀국 보고전이 되는 셈이다. 특히 작가가 전시회의 주제로 설정한 「Wellcomm-Emotional Esperanto 웰컴-감정의 에스페란토」는 자신의 석사학위 논문인 "감정의 에스페란토-현대상형문자로서의 컴퓨터 아스키아트에 관한 연구"의 결과와 일치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론적 배경과 제작상의 세련미가 돋보이고 있다. 또한 출품된 시리즈 중에는 작가가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경험한 미술과 시장의 연관성을 패러디 화한 작업도 선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 이은화가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작업들은 모두 다섯 개의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Emoticon 이모티콘」, 「Portrait 초상화」, 「Dialogue 대화」, 「Relationship 관계」, 그리고 「Masterpiece 명화」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전시장 바닥에는 「Smiley Cube 스마일리 큐브」라는 제목의 입방체 다섯 개를 설치하고 전시장 벽면에는 거대한 걸개그림 「Beatles 비틀즈」를 걸어 놓았다. 이들 시리즈는 내용적으로는 저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기법적인 측면에서는 일상에서 흔히 사용되는 휴대폰 문자나 컴퓨터 키보드 문자를 이용해 제작된 작업들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작가의 선언적 문구에서 보듯이 그는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이른바 타이핑 작업을 통해 작품을 제작한다. 이들 작업은 과거의 회화나 조각의 범주를 넘어선 것들이라는 점에서 최근 부상하고 있는 '미디어아트'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보전달 매체를 표현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미디어아트의 영역 속에서도 굳이 그의 작업에 차별성을 규정해 본다면 이모티콘이라 불리는 새로운 문자기호를 작품제작의 근간으로 사용한다는데 있다. 신세대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모티콘(Emoticon)은 감정(Emotion)과 아이콘(Icon)의 합성어로서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문자를 뜻하는데 컴퓨터를 이용한 이메일이나 핸드폰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일상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나열해 보면 -_-, ^_^, 」_「, ^^!, ㅠ.ㅠ 등과 같은 이모티콘은 국내에서 자주 접하는 것들이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것들은 :-), :-(, :-O, :-&, 8-), ;-) 등이 있다. ● 디지털 기기의 네모난 창에서 만나는 이모티콘은 문자와 더불어 유저(User)의 기분이나 감정을 전달하는 친숙한 기호이다. 그것은 모니터나 휴대폰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기호이며 수억의 대중들 사이에서 통용되면서 어형변화를 일으키는 운명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이모티콘은 문자언어로는 표현되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 상태나 기분을 전달하는 감정의 메신저이자 사용자들 사이에서 정해진 약속에 따라 모습을 바꿔 가는 가변적 코드인 것이다. 이모티콘은 또한 거대한 인터넷 망을 오가는 정보의 흐름 속에서 정확한 출생지 없이 태어나 공유되다가 다시 소멸하는 일시성의 운명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이은화의 「이모티콘 연작」은 이러한 이모티콘의 특성에 근거하고 있으나 임의로 선택하고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가 개입되면서 그것들은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어진다. 모니터 화면 위에 빛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감정전달의 기호에서 벗어나 바위나 흙에 새겨진 상형문자처럼 영원성을 확보하게 되면서 의미의 전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가상의 디지털 공간에서 빠져 나와 아날로그 언어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개념상의 전치 효과이며, 전시장이라는 축성된 공간에 걸린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놓이게 되면서 야기되는 재탄생을 의미한다. 이은화의 작업으로 초대된 이모티콘이 단순한 감정 전달의 기호라는 차원을 넘어서 문화적 소통의 기호로서 다루어질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모티콘 의미와 기법을 확대시키는 과정에서 이은화는 또 다른 연작들을 만들어 내었는데 앞서 살펴보았듯이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인물연작에 「Portrait 초상화」, 「Dialogue 대화」, 「Relation 관계」, 「Masterpiece 명화」, 「Smiley Cube 스마일리 큐브」 등의 제목을 붙이고 있다. 이들 인물 작업들은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자판에 제시된 문자와 기호들을 제한적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제한성은 역설적으로 누구든 동일한 이미지를 생산해 낼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이 시공간을 초월해 소통될 수 있다는 이모티콘 아트의 특성으로 제시될 수 있고, 관객들과 친밀한 관계를 이어주는 효과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이모티콘 작업이 모니터에서 빠져 나와 하나의 작품이 되기 위해서 거쳐야 될 기법은 매우 다양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우선 살펴볼 「Portrait Series 초상화 연작」은 컴퓨터 자판의 기본 문자와 기호를 이용해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이 시리즈는 초상화와의 연계성 속에서 단순한 이모티콘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파생하는 표현상의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제한된 자판의 기호를 이용해 캐리커처를 그린다는 것은 의외로 상상력과 표현능력이 요구되는 작업이다. 이은화의 초상 작업은 인물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초상화의 범주에 속해있지만 컴퓨터 자판의 기호와 부호로 조합된 초상 이미지라는 점에서는 대상 재현적 사실주의와의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단순한 몇 개의 컴퓨터 자판 기호만으로 특정한 인물의 신체적 특성과 표정을 캐치하고 묘사하고 있는 그의 초상화가 단순한 타이핑의 결과물이 아닌 작가의 조형적 능력의 소산이라는 것을 이모티콘 그림을 그려본 이라면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 이은화의 이모티콘 그림의 다른 유형인 「Dialogue Series 대화 연작」은 익명의 인물을 커플로 제작해 라이트 박스로 프레임을 만들고 설치해 놓은 것이다. 라이트 박스의 빛을 배경으로 자리한 커플들은 마주보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작가의 노트에 따르면 「초상화 연작」이 개개인의 모습이나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면 「대화 연작」은 디지털 소통의 시대에 익숙한 이 시대의 평범한 커플들의 초상화이다. 화면에 등장한 가상의 커플들은 서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이별을 고하기도 하면서 만화의 한 컷처럼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 진부하고 평범한 연애상황을 디지털 시대의 인물들이 만들어 내는 지루한 소통방식으로 인식함으로서 일상의 대화에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직설적이며 단순하지만 유쾌한 면을 동시에 갖는 그런 네티즌들의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Relation Series 관계 연작」은 가장 흥미로운 방식의 컴퓨터 레이어 작업으로서 사진 이미지를 이루는 망점을 글자들로 대치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글자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세 인물의 일상적 대화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 하지 못하는 말, 할 수 없는 말, 해서는 안 될 말들을 속삭이듯 비명 지르듯 내뱉고 있으나 결국 오해만 남기고 소통은 전혀 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내용과는 별개로 필자에게 관심이 되는 것은 두 장의 레이어로 인쇄된 문자 이미지 판을 겹쳐 설치해 놓은 기법이 주는 시지각적 효과에 있다. 이른바 문자로 인쇄된 텍스트가 집합적으로 모여 인물 이미지를 이루도록 조작해 놓은 디지털 기법은 언어구조와 의미 그리고 형상이 일치를 이루는 조형방식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조형어법은 디지털 시대의 이미지와 그 정체를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 다음으로 소개할 「Masterpiece Series 명화 연작」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거장의 작품들을 디지털 문자코드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백 라이팅 필름 (Back-Lighting Film)에 디지털 프린트를 실행하고 라이트 패널에 넣었는데 마치 광고판을 연상케 한다. 문자는 $자를 이용해 $$$$$$ 등의 식으로 조합하고 이 구조를 이용해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가의 작품들이 일상 속에서 향유되고 소비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살펴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라이트 패널에 새겨진 반 고흐와 리히텐슈타인의 명화들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명작의 이미지와 더불어 디지털 기호의 최소단위인 비트로 환원된 이미지의 실체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시각 체험은 디지털 정보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감각을 통해 미술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의도를 잘 나타낸다. 아울러 미술과 미술시장을 둘러싼 문화 소비의 경비에 대한 물음을 재치 있게 표현하고 있기도 하다. ● 마지막으로 살펴볼 「Smily Cube 스마일리 큐브」는 다양한 색상의 반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다섯 개의 입방체 설치작품으로 각 입방체의 면마다 다양한 표정의 인물들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고 내부에 설치된 조명으로 인해 다양한 색의 빛을 발산하고 있다. 이 작업은 갤러리 벽면에 설치된 가로 3m 세로 1.8m의 대형 걸개그림 「Beatles 비틀즈」와 더불어 그의 작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은화의 작업은 컴퓨터와 휴대전화가 일상을 지배하는 현대의 상황을 가장 밀접하게 드러내는 매체라는 점에서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하나의 경향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따지고 보면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통신 기술이 대중적 차원으로 확대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남짓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통신에 의해 인터넷 상용서비스가 시작된 1994년 6월이고 보면 우리나라의 인터넷 역사는 한 세대도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을 이용하는 네티즌들의 수(백분률)는 세계최강이라는 사실은 특이한 것이 아닐 수 없으며 예술가들이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반응하는 것은 필연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맞추어 국내의 컴퓨터와 인터넷을 이용한 작업들은 꾸준히 실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이은화의 이모티콘 작업은 이러한 국내의 디지털 정보통신 사회를 환경적 배경으로 삼아 진행되고 있는 살아있는 미술이자 연구되어야 할 미술 유형의 하나로 생각된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다양한 작업들은 새로운 소통의 매체로 자리 잡고 있는 온라인상의 디지털 문자를 오프라인 상의 예술적 차원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정보화 시대를 반영하는 새로운 장르의 출현을 암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은 소통, 감정, 기호, 언어체계, 대화, 대중, 온라인, 오프라인 가벼움 즐거움 단순함 등의 미학적 성찰의 대상이 될 가능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성찰의 가능성 속에서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업들은 작가의 새로운 감각과 재치를 드러내고 있으며 새로운 장르로 정착되어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 김영호
Vol.20041022b | 이은화 개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