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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라메르 서울 종로구 인사동 194번지 홍익빌딩 Tel. 02_730_5454
주후식의 작업은 기괴하게 휘어졌거나 복잡하게 얽혀 난해함이 드러난 형태가 아닌 주관적으로 규정한 법칙에서 단순한 변형 형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벽돌을 쌓듯이 구축된 신 형상의 모습을 한 조립된 절제성을 지닌 인체변형 시리즈가 주종을 이루는 테라코타의 물성을 통한 조형적 해석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 제약된 요소가 많은 흙을 조각의 재료로 쓰는 것엔 난제가 수반되고 있으며 그것은 형태를 구축해 가는 과정에서 선호하는 재료인 철이나 돌처럼 고정되고 안정적인 단단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1차원적 재료인 흙의 물성이 지닌 고유의 색감과 자체 물성을 소유하고 있는 곡선감과 면적인 조형성을 강조하며 진행하며 이 흙색과 800°~1000°인 불 맛이 어우러진 연처리 과정 작업, 형태로 틀을 구축한 판작업, 코일링 기법 등으로 대형작업을 시도하는 작가는 원하는 형태를 불완전한 재료로 가능하게 하는 독창적인 방법을 추구해간다. ● 그가 왜 원하는 작업을 위한 가능한 재료를 포기하고 크기에 제한을 받는 흙을 선택한 것인가는 과거로 돌아가 보면 알 수 있는데, 옹기제작을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는 사물을 인식하기 이전부터 흙의 질감을 체득하였고 막연한 형상을 보았던 것이다.
태초에 흙으로 인간을 빚었을 때부터 테라코타의 역사는 만들어짐의 의미에서 예술의 역사 속으로 공존해왔고 창조적인 생명을 기저로 출발함과 동시에 죽음의 의미도 수반되어 졌다. 이집트 미이라에서도 테라코타는 사후세계로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와 함께 했고 우리의 고분에서도 테라코타는 죽은 자를 위로하는 도구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 그것은 다시 말해 영원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으로 단정적으로 규정되며 흙이란 재료에서 보여지는 본질적인 역사성은 허물어지고 만들어지고 다시 사라지는 모든 것은 본질로 돌아간다는 흙의 회귀적인 진리를 담고 있다.
고대의 신상 같기도 하며 미지의 로봇 같기도 한 형상의 고정된 표정과 인체구조는 마치 접착이라도 한 듯 부동자세로 한치의 미동도 없어 보이며, 현대인의 위장된 모습과도 같은 겉으론 단단해 보이는 형태는 틀에 끼여 맞추어져 있는 구조 속에서 이중적인 자아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조립된 구조물 하나를 빼면 한순간에 허물어지는 힘겨운 세태를 구축하고자 한 것이며, 동시에 파괴하고자 하는 이중적 잠재성을 보여준 것이다. ● 혼란스런 현 세태에 위장된 가식으로 대응해야만 존재하는 부조리적 상황의 허울에 적응해 가야만 하는 이중적인 자아의 불편한 내면을 표방하는 은폐의 논리는 보이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것은 허물어져야 하는 병폐이며, 보이고 싶은 내면은 결국 잠식되고 단절되어야 하는 가면의 씨니피에(signifie)인 것이다. ● 욕망의 일탈에서 분리된 객체로써의 주체의 모습은 가식의 가면이 진실이 되고 진실이 어느덧 가면의 모습으로 흡수된 혼돈을 안타까워하며, 진실이 사라져 가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그것을 염원하는 모습이 작업의 의도에서 보여진다.
주체적인 내면의 존재성, 혼돈으로 중첩된 자아의 이중구조, 순환되는 영원한 유한성, 구축과 파괴, 관조적 묵시와 그로 인한 소통, 사라져감에 대한 아쉬움, 기억의 편린 등으로 단계적으로 일축하며, 동일시하게 구축된 형상의 눈으로 대상을 주시하고자 한다. 날카로운 투시는 뚫려있는 형상으로, 돌출 되었거나, 움푹 꺼져 있는 다양한 형상들로 직관되고 있으며, 함축된 작가의 의도 또한 보이는 것, 그리고 그것을 보고자 하는 것, 진실을 보는 현상들을 말하는 바로 '눈은 마음의 창'이란 근원적인 선의 논리를 보이고자 한 것이다. ● 이미 동시대 미술에선 고전적 미의 구조에 입각한 형태는 인식적으로 소멸되었고 유기적 구성체 에서 벗어나 해체와 탈 신체의 구조까지 갔으며 강제적 권력에 억압받은 신체는 자아 정체성을 확립하는 매체의 도구이자 존재를 규명하고자 하는 대상으로 변모되고 있다. ● 부조리의 혼돈 속에서 조립된 이중구조의 변형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가면의 진실은 강인함 속의 나약함과 위장된 포악성이란 상반된 양분 논리 속에서 파괴되는 허울좋은 인간상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나타난다. ■ 조은정
Vol.20041021b | 주후식 조각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