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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15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토요일_10:00am∼03:00pm / 일요일 휴관
송은갤러리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7번지 삼탄빌딩 1층 Tel. 02_527_6282
아득한 옛날부터 빛은 질료 없이도 존재한다는 점에서 "영혼의 표식"으로 받아 들여졌다. 빛은 어둠과의 대조를 통해 존재함으로써 낮과 밤, 선과 악, 물질과 정신을 구분하는 "시원의 상징"이었다. 서구미술에서 빛을 자각하는 과정은 곧 세계와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해 가는 과정이었다. 빛의 밀도(密度)를 인식함으로써 화가들은 형태에 새로운 감수성을 불어넣었고, 빛의 변화를 감지하면서 선과 면의 자율적 질서를 깨닫게 되었다. ● 시간이 흐르면서 화가들은 빛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찾는 대신에 개인적 '존재의 메아리'를 투영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때 신(神)의 상징이었던 빛은, 대상을 파악하는 감각적 언어가 되었고, 독립적인 조형 요소가 되었고, 마침내는 미적 현실 그 자체가 되었다. 빛은 물리적으로 일종의 파동임에도 불구하고 입자(粒子)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빛은 물질과 빗물질 사이를 가로질러 존재한다. 빛은 또 공간의 영역인 동시에 시간의 흐름 속에 있다. 눈으로 분명 지각되지만 그 상태가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은 찰라 처럼 짧은 순간으로다가 오지만 시선과 신체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주되는 감정의 파장을 만든다. '색 그림자'를 이용한 임정은 의 작품은 빛의 원초적 아름다움과 시적인 공간감을 극적으로 느끼게 한다. '유리판화'라고 할 만한 그 작품들은 얇은 판유리에 Serigraph(스텐실)로 색채를 프린트하여 색채를 입히고 유리가마에서 고온으로 구워내어 탄생된다. 흔히 작품에 '유리에칭'으로 불리는 모래치기(Sandblasting)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그 기법들은 투명하면서도 섬세한 농담과 밀도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작품은 기본적으로 시각적으로 가장 안정된 형태인 사각형과 입방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작품을 하나 하나의 단위로 보면 간명한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이루어진 평면들이다. 그 단순한 형태는 추상적인 질서로 다가오지만 집과 방, 건물과 도시 같은 일상적 생활공간에 대한 은유이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엄격함에서 얻어지는 안정감과 은밀하게 폐쇄된 공간에서의 안락함을 암시하는 심리적 상징하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임정은 작품은 건축 적이다. 아마 빛이 가장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영역도 건축 공간일 것이다. 건축 공간 속에서는 빛은 시선의 각도와 신체의 움직임에 다채롭게 반응한다. 작가가 르 꼬르뷔제의 뱅샹을 유독 좋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작가의 초기 작업에서는 그리드와 입방체 속에 건축이나 도시 삽입하기도 했다. ● 작가의 작품들은 빛과 그림자의 투사 각도를 고려하여 철저하게 계산된 의도에 따라 설치된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방식이 '중첩과 배열'이다. 가령 이미지가 새겨진 여러 장의 유리판을 중첩시켜 두터운 평면을 만들거나, 수 십장의 유리판을 수직과 수평으로 일렬로 정렬시켜 벽면에 설치한다. 어떻게 보면 더 없이 간명한 설치방식이지만 그 단순한 공간에 빛이 개입되면서 섬세한 공간적 층위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모든 시공간적 Layer는 단순함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조명의 각도와 시선의 방향에 따라 빛과 그림자, 색채와 형태, 표면과 공간이 섬세하게 어우러지면 시시각각 변주되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 이미지들은 그림이자 그림자이고 허상인 동시에 실상이다.
"Stain Glass"의 경우에는 빛의 이미지가 완강한 유곽선 때문에 빛이 형태나 공간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작가의 작품은 순수한 색 그림자가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에 보다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은 빛과 색 그리고 공간의 상호교환을 통해 감성의 파장을 다채롭게 전이시킨다. '색 그림자'들의 회절과 간섭이 연출하는 빛의 유희는 동화 속의 세계처럼 환상적 분위기로 다가오지만, 다른 한편으로 빛이 지니 원시적 속성을 건강하게 환기시킨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은 테크놀러지의 이름으로 도입된 인공적 광선의 현란한 효과를 보는 것과 달리 지각의 원초적 즐거움을 전해준다. ● 여기서 무엇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작가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위상학적 변화다.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리드와 입방체들은 유클리드 적 의미의 기하학적 구성이 아니다. 그것은 평면이 3차원으로 전이되었다. 다시 다(多)차원으로 확산되는 위상학적 변화를 거친다. 그 차원의 변화는 연속적이면서도 동시적이다. 유리판에서 시작된 하나의 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것이고, 이미지를 바라보는 시점도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동적인 것이라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작가의 언급처럼, 시선과 현상, 허상과 실제,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분법적인 마주보기가 아니다. 그것은 짧은 순간에도 다채롭게 표출되고 무수한 양상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감각의 내재적 가능성"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각의 명징성은 도구적인 것이고 편협한 이성 중심적 사고의 산물일 것이다. 원근법적 소 실점으로 상징되는 근대적 시각의 중심은 유일하기 때문에 특권화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단일하고 특권화 된 시선에 의해 세계를 균질적인 질서로 환원할 수 있을까? 임정은 의 작품에서는 물질과 빗물질, 표면과 심층이 상호침투하고 기하학적 엄격함과 환상적인 모티브라는 이율배반적 요소가 공존한다. 그 지층은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장(場)이며 물질과 의식과 시선, 현상과 지각이 상호 침투하는 개방적인 세계다. 임정은 의 작품이 가진 매력도 그 열려진 경계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에 있다. ■ 이동석
Vol.20041020c | 임정은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