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강한 기운

이강화展 / LEEKANGHWA / 李康和 / painting   2004_1013 ▶ 2004_1022

이강화_회상_혼합재료_지름 60cm_2003

초대일시 / 2004_1013_수요일_06:00pm

갤러리 상 GALLERY SANG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9번지 Tel. +82.(0)2.730.0030

회화는 어떤 매혹을 간직하고 있다. 매혹은 화가의 몸짓에서 온다. 정확히 말하면 작품을 닮은 대상과 그 대상에 대한 감성을 버무리는 몸짓에서 온다. 그래서 회화는 그려지는 대상이기도 하고, 화가의 마음이기도 하다. ● 4-5년 전까지 작가가 소재로 애용하던 동강이나 우포 늪 등은 그림의 스케일을 키워낼 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곳들은 '자연'이라는 익숙하면서도 장대한 주제를 품어낼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 자연의 외피를 쫓던 작가는 그 이후 자연의 존재 방식인 '낮아짐'(낮춤이 아니다) 혹은 '진실함'을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 속에서도 실현하고자 한 것 같다. 외적인 표현 양식과 효과보다도 작품에 임하는 자세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화면을 통한 탐색' 대신 '감성을 담고자' 소망하였다.

이강화_외출-엉겅퀴_혼합재료_53×45.5cm_2004

2000년도부터 작품에 등장한 것들은 강아지풀, 엉겅퀴, 나팔꽃 등이다. 작가를 비롯한 우리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한 것들이다. 이 작품들에서는 여린 풀들을 스토커처럼 따라 붙는 작가의 집요한 시선이 먼저 느껴졌다. 그리고, 제 흥에 겨운 화려한 색채와 머리채를 풀어 흔드는 듯한 풀잎의 나부낌이 외형상의 특징이었다. ● 작가로서 탐낼만한 조형적 구성을 뿌리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소박한 즐거움을 화면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화면 안에서 전능한 작가의 자유로움을 잠시 유보시킨 채 꼬마 같은 풀잎들에게 고개를 숙인 것과 같다. 자연의 리듬을 체득하기 위해 자연을 선생으로 삼은 것이다. 아마도 작가는 화가로서 그 리듬을 배우고 뛰어넘어 더욱 자유로운 회화적 리듬을 창조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이강화_아침_혼합재료_88×162cm_2003
이강화_회상-신트리_혼합재료_130×333cm_2004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은 자연의 리듬을 충분히 제어, 확장시키는 역량을 보여준다. ● 강아지풀, 엉겅퀴, 수초... 화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이 야생초들의 모습은 강렬하다. 이전의 작품이 선사하는 강렬함이 화려한 색상, 두터운 질감에 의존한 측면이 많았다면 현재의 작품에서는 식물 자체의 억센 기운에 나머지 요소들이 통합되어 있다. ● 생명의 강한 기운은 전체 작품을 이끄는 큰 주제이다. 소박함이 살아 있지만 나약함을 벗어 던졌다. 작가가 풀잎들로부터 얻는 생생함은 작품을 통해 실제보다 더욱 생생해진다.

이강화_외출_혼합재료_130×333cm_2004
이강화_생명-호흡_혼합재료_130×333cm_2004
이강화_리듬_혼합재료_72.7×91cm_2004

소재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도 다양하다. 선혈이 낭자한 전장을 떠올리게 하는 엉겅퀴 모듬이 있는가 하면, 긴장감이 팽팽한 강아지풀의 도사림. 옥잠화의 신비로움과 수초의 건강함 등. 작품이 드러내는 감성은 소재로부터 작가에게 온 것이기도 하지만, 작가가 부여한 것이기도 할 터이다. ● 하나의 작품을 마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작가는 '무엇을 그려야 할 것인지 느낌이 온다'고 말한다. 영감은 예술 분야에서는 특히 강조되는 요소이긴 하다. 현실적인 문제에서는 비타협적인 작가일지라도 창작의 모티브를 감지할 때는 민감하게 열려 있어야만 한다. 외압은 차단하되 오는 것은 기꺼이 마중 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강화_외출_혼합재료_130×130cm_2003

가녀린 풀을 렌즈에 담고 가슴에 담는 작가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것을 확실하게 붙잡기 위해 혼자의 시간을 갖는다. 긴 창작의 시간 속에 급격한 현대미술의 물살도 비껴간다. ● 마음으로 확신한 것을 회화로 확인하기 위한 나름의 분투가 느껴졌다. 그 시간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희미하게 '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살아 있음, 생명의 힘이다. ● 나약한 잡풀이 뿜어내는 생명의 기운이 얼마나 큰 것이랴 마는 작가는 확대경을 대고 그 생명의 신호를 포착하였다. 귀엽게 보아준 것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을 본 것이다. 시선을 잠시 던져 삶에 끼워준 것이 아니라 놀라울 만큼의 힘과 스케일을 부여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닌, 회화적 성취로 붙잡은 자연이다.

이강화_명상_혼합재료_60.6×72.7cm_2004

작가가 어린 시절을 보내고 현재도 살고 있는 인천은 근 10년 사이에 많은 아파트 단지와 상업지구가 형성되었다. 논과 밭과 개울이었던 땅은 아스팔트와 건물로 과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어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이곳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 작가는 작품을 통해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불러내고 있다. 마음을 주었던 풀과 작은 꽃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 안타까움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넉넉한 존재의 힘과 회화적 역량을 통해 재탄생시키고 있다. ● 작가는 실제 대상을 충실히 모방하였다. 그것은 물리적인 모방이기도 하고, 정신적인 모방이기도 하다. 모방은 적극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작가는 뒤따라가다가 앞서게 되었다. 참가치를 담지한 구상회화의 전형을 보여주게 되었다. 작가가 성취한 회화는 그렇게 전 존재를 투기(投寄)하여 얻어낸 것이다.

이강화_명상_혼합재료_130.3×162cm_2003

자연이 그리는 드로잉, 그 리듬을 체득한 작가가 앞으로 보여줄 변주곡이 기대된다. 외형의 자연, 당위로서의 자연에서 내재의 자연을 품게 된 작가의 성취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투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원칙은 동일할 터이다. 자신에게 진실함을 요구하며, 희미하게 '오는 것'에 대한 예민함을 잃지 않는 바로 그것이다. ■ 신혜영

Vol.20041016c | 이강화展 / LEEKANGHWA / 李康和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