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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13_수요일_06:00pm
덕원갤러리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02_723_7771
근자에 사생(寫生)을 주 작업으로 하면서 그 작업으로 개인전을 계속하고 있는 작가는 그리 많지 않다. 사생은 모사(模寫)와 더불어 미술교육의 텍스트이며 아무리 시대(時代)가 어떤 것을 요구한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요지부동적인 요소(要素)가 확고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이라는 거대한 몸집은 화가를 그리는 이에서 생각하는 이로의 탈바꿈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고 하부(下部)에 형성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중요한 부분의 도태(淘汰)까지 바라는 만행을 서슴치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하나의 딜레마이지만 이 일에 앞장서야 할 것도 작가이고 이를 어느 정도 제지(制止)하여 잣대 없이 주장으로만 치닫는 미술을 바로 잡아야 하는 것도 작가의 사명(使命)이라 하겠다.
이미 언급하였듯이 시대적인 소명(召命)이란 타이틀에 걸맞는 현대 미술에 적합성(適合性)을 하나의 잣대로 사용한다면 사생과 모사는 그 중요성을 상실한 채 기성의 전유물(專有物)처럼 떠돌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많지 않은 풍경화 작가들은 그나마 입지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소멸(消滅)되어갈 것이 자명(自明)하다.
거품이 빠져야 할 곳은 비단 현대미술의 비대함만은 아니다. 어쩌다있는 풍경화 전시회를 봐도 스케치는 카메라가 대신하고 심지어는 재해석이라는 미명아래 사진 작가의 시선까지 복사해 대는 손재주 자랑에 급급한 것을 보면 야심만만한 싹이 푸른 작가들한테 외면을 당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각 계절의 온도, 습도를 체감하면서 가마솥 더위나 손이 곱는 추위에도 꾸준히 자연을 작업실 삼아 손목에 쥐가 나도록 무아지경(無我之境)으로 붓놀림 하고 있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조차가 행운처럼 여겨지는 게 작금(昨今)의 현실이다. ● 그림의 무게는 결코 크기와 재료 또는 장르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눈에 포착된 것이 그 무엇이었던 진실된 감정이 그 안에 녹아 있고 그 감정(感情)을 공감케 하는 게 우리가 추구(追求)하는 미술이 아니었던가... ● 그 과정에서 어떤 강요도, 무지에서 오는 침묵 따위도, 필요 없어야 하며 부연(敷衍) 또한 필요하지 않아야 한다.
사생작업으로 세번째를 맞는 김철우의 이번 전시회는 현장(現場)에서 그린 그림치고는 제법 대작이 몇점 선보이는데 현장 작업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보통 열정으로는 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바람과의 신경전도 그렇고 지고 다니는 화구 또한 산꼭대기까지 옮긴다는 게 결코 수월한 게 아니다. 대개 국내 풍경이지만 유럽 몇 군데와 동남아, 중국의 몇 모습들도 고명처럼 얹어져 틈나는 대로 바람처럼 떠돌아다닌 흔적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 화면이 그전에 비해 커지면서 붓질이 다소 거칠어진 것과 밑칠이 된 화지에 목탄이나 콘테, 색연필, 등의 다양한 소묘재료의 특징을 살려 다양한 질감을 낸 것도 이채롭다.
스케치 여행은 그에게 곧 생활의 전부이다. 어찌보면 그에게 있어 거의 모든 사생활은 사생여행을 떠나기 위한 준비 작업처럼 보인다. 살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닌 그리기 위해 나머지를 산다고 하는 게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혹여 매 번의 전시회가 그 기법이나 소재의 유사성으로 차별화 되지 않아 보일 수 있는 우려도 배제(排除)할 수는 없지만 변화라는 명제(命題)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느긋하게 펼쳐놓는 선에서는 큰바위가 콩자갈 되듯 진행 속도가 눈에 띄지 않는 정중동의 변화를 택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 자연을 닮아 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이라는 것을 적어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김철우의 풍경화를 통해서 그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동지(同志)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 임진수
Vol.20041014c | 김철우 수채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