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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08_금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8_0738
이수연-가상의 낙원 ● 이수연은 현대사회에서 욕망과 환상의 상징으로 재현되는 도상들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끝없는 소비욕구와 판타지가 창조한 영혼 없는 육체, 대중매체를 통해 빈번하게 출현하는 그 이미지를 차용해 재배치하는 한편 서구미술사의 누드화를 끌어들이거나 동시대의 광고모델과 섞어놓는 맥락의 변경 등을 통해 시대를 초월해 보편적으로 작동하는 환타지와 행복, 구원, 낙원과 관능의 이미지를 새삼 질문해본다. 그리고 이는 기존의 평면의 판작업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장식적, 키치적이며 환영성을 강화하는 재료와의 결합을 통해 허구와 환상이미지를 더욱 증폭시켜 보여주는 전략에 의해 지지된다. 작가는 컴퓨터 프린트, 실크스크린, 네온사인, 홀로그램, 3D렌티큘러 등을 사용해 이미지를 합성했다. 사실 판화란 납작한 표면에 새긴 이미지며 평면적이다. 탈평면적인 판화들도 있지만 판화 고유의 맛을 지니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다름 아닌 3D렌티큘러라고 하는 것이다. 이 재료는 기존의 홀로그램보다 더욱 선명하고 입체감이 나면서 평면 안에서 이뤄지는 효과의 극대화를 가능하게 해준다. 얇은 렌즈를 이용해서 입체감을 만들어내고 빛을 받으면 종이와는 또 다른 밝기가 생겨 깊이감을 만들어내는 효과가 나는 소재인 것이다. 여전히 판, 평면을 유지하면서도 미묘한 환영과 공간이 환상적으로 전개되는 이 기법은 또한 오늘날 디지털 문화 속에서의 이미지반응과 같은 맥락에서 숨쉰다. 어쩌면 그런 정경이 동시대의 풍경인 듯 하다. 아울러 작품은 화려하고 키치적 색채 및 블루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것은 작가에게 꿈과 관련된 색이다. 블루는 특별한 마력을 지닌다. 음울한 느낌과 강렬한 시적 몽상을 자극하는 가 하면 현대인들의 차갑고 우울한 감정을 대변하는 색이기도 하다. 또한 작가에게 이 블루는 추억, 꿈을 연상하는 선에서 쓰인다. 또한 가짜낙원, 기이한 현실경, 몽환적인 욕망의 풍경이 혹 그런 색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만들어놓은 가상의 자연은 사이버공간에 해당하고 그 공간에 배치된 남녀는 일종의 아바타 역할을 한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종류의 비물질적 공간이자 정신 공간인 이 사이버공간에 자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아바타가 그 곳을 주체를 대신해 떠돌고, 그 자아는 몸과 마음 어디에도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존재로 무한정 복제가 되기도 하고 영생하기도 한다. 오늘날 모두가 꿈꾸는 존재가 그런 모습일까?
미술의 역사는 어쩌면 현실계의 결핍을 구원해주는 이미지를 만들어왔고 그 이미지의 힘, 주술적인 믿음(이미지의 물신주의)을 통해 현실의 욕구를 충족시켜온 궤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것의 오랜 기원은 마술이고 연금술이고 치유이자 보상이었다. 서구미술사에 등장하는 신의 이미지, 천국과 낙원, 비너스, 누드, 풍경과 정물 등이 그럴 것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등장하는 모델(육체)과 수많은 상품, 물건 등이 이를 대신 수행한다. 이수연은 바비 인형과 켄, 슈퍼맨과 원더우먼, 패션모델, 서구회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그림을 끌어들여 새로운 판타지, 낙원풍경을 가공했다. 이 모조적 풍경은 가짜낙원이자 허구적 판타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변치 않는 간절한 생의 욕망이 시대를, 초월해 이미지를 빌어 지속해서 반복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실 현실의 고단함이 깊을수록, 삶의 위기감이 증폭될수록, 상실감과 공허감에 시달릴 때 그에 비례해 낙원, 판타지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여기서 바비 인형과 누드(비너스), 동시대 모델의 육체는 우리시대의 가장 이상적이고 관능적인 아름다움(성적코드)을 상징하며 또한 무엇이든 복제될 수 있는 후기산업사회의 기계적 생산력을 대변하는 결정적인 매개로 등장한다. 아울러 동시대의 삶과 문화의 이념을 핵심적으로 전달하는 상징적 이미지인 그 모델들은 또한 외모와 성공만이 결정적인 조건으로 제시되는 현대인을 표상한다.
이수연 작업에 등장하는 '바비와 켄'은 이상적인 남녀로 상정되기도 하고 모든 욕망과 관능의 상징으로 모델처럼 자리한 인형이다. 1959년에 탄생한 바비는 그간 현대인들의 자아반영의 매개로 다뤄졌고 지난 세월동안 이상적인 여성다움을 구현해 온 상징이었다. 20세기 후반 미국 팝 문화의 가장 영향력 있는 우상으로서의 역할을 맡은 바비는 무엇보다도 미국 중산층의 가치관을 대변한다. 바비는 패션을 가장 멋지게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디자인된 마네킹과 같은 신체비례를 갖고 있으며 그 이상적 신체에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진 백인이다. 더구나 바비는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다. 이처럼 바비는 분명 확립된 페르소나를 갖고 있고, 백인 인형으로 완전히 정착된 존재다. 바비는 섹스 없는 섹슈얼리티를 표현하고 있다. 이 기묘한 이상형은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거대한 유방과 이를 부인하는 듯한 가는 몸통을 가진, 일종의 정신분열증적인 신체다. 동일한 맥락에서 바비의 남자친구인 켄 역시 이상적인 남성의 육체를 재현한다. 바비를 갖고 노는 여자아이 대부분은 은연중 가는 몸에 큰 가슴을 갖고자 애쓰며 물질주의적 가치관을 갖게 된다고 한다. 결국 바비는 페티시즘의 상품화를 관념적으로 상징하며, 젠더의 정의를 고정시키고, 이성애의 절대적 우의를 제시하는 데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일한 맥락에서 작가는 서양미술사의 고전에 속하는 몇몇 작품을 패러디한다. 루소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숲(정글)이 그림의 배경이 되고 그 앞에 비너스가 누워있다. 자연과 여자의 누드는 오랫동안 동일한 대상으로 이해되어왔다. 그 몸들은 이상적인 누드상이다. 여기서 누드상은 살아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재구성된 육체로, 형태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완벽한 것으로 표상된다. 알프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도 보이고 조르조네의 비너스, 그리고 바비와 켄, 크리스챤 디올 광고의 남녀모델들이 뒤따른다. 성서 텍스트를 도상화 한 그림들을 희화화하는가 하면 여성이미지에 따라붙는 팜므파탈의 의미도 슬쩍 내려놓았다. 다양한 패러디 전략에 의해 한 쌍의 남녀 육체와 그들이 시선이 숲, 풍경을 배경으로 교차하고 미끄러지고 있다. 화면 속 여자들은 늘상 남자의 시선 속에서 관음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존 버거의 지적처럼 서양미술사의 모든 누드화는 남자의 시선에 종속된 여성 육체를 일방적으로 제시한다. 끊임없이 훔쳐보며 욕망의 관계를 형성하듯 오늘날도 그 관계는 여전히 반복되어 모방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숲(자연)은 일종의 낙원에 대한 모델에 해당한다. 서양의 경우 낙원(파라다이스)은 잃어버린 에덴동산으로 표상된다. 그래서 그곳은 신화의 세계가 그랬듯이 인간의 말과 짐승의 말이 구분 없는 세계, 동물과 인간이 발가벗고 어울려있는 풍경으로 곧잘 시각화된다. 신화시대란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는 오늘날과 대비되는 완벽하게 좋았던 시대로 설정된다. 따라서 그런 시대가 낙원으로 상정되고 그곳이 죽음 이후에 갈 곳이자 지상의 삶이 절멸한 자리에 도래할 곳으로 이해된다. 옛날에 인간과 동물은 완전한 대등한 존재로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인간과 동물이 대칭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동화적 혹은 신화적 광경인데 그것 역시 현대인들의 판타지에 무의식적으로 녹아있다. 그런가하면 자연은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의 억압에 따른 고독하고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린 현대인들에게 정신적으로나마 안락함과 평화로운 삶을 충족시켜주는 곳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를 인공의 자연공간으로 설정해놓았고 그 안에 이상적인 남녀를 배치해놓았다. 그러나 이 낙원은 역설적으로 깊은 상실감을 심어준다. 꿈과 추억, 신화와 환상의 결정으로 위치한 자연과 완벽한 육체로, 관능과 섹슈얼리티의 상징으로 자리한 남녀의 몸은 그만큼 자연주의와 복고, 판타지에 의존해 현재 삶의 궁핍을 견디는 현대인들이 간절한 가상적 소망에 불과해 보이는 것이다. ■ 박영택
Vol.20041008a | 이수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