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마로니에미술관 홈페이지로 갑니다.
2004 마로니에미술관 대표작가 초대展
작가방담프로그램 "회화의 경지" _2004_1101_월요일_예정 미술관어린이교육프로그램 "체험풍경" _매주 수요일_03:30pm 학교연계프로그램 "그때로 멈춰라 " 작가 작업실 재현_장소 마로니에미술관 콘테이너
특별프로그램_대표작가전 기행 "화가 M씨와 함께 가는 벽계구곡" 2004_1015_금요일 / 강사_최종현 / 장소_명달리, 통방산, 벽계구곡
관람시간 / 11:00am~08:00pm 전시설명 / 02:00pm / 05:00pm
마로니에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130번지 Tel. 02_760_4726
전시의 약도(略圖) ● 1999년 개인전에 뒤이어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 민정기의 통산, 여섯 번째 개인전이면서 동시에 이 작가의 첫 회고전이다.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하는 마로니에미술관의 대표작가초대전은 작가의 작품을 연대기별로 일별하는 일반적인 회고전 형태를 띠지만, 동시에 그에 기초해서 작가의 작업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지를 견주어보는 '예측'의 성격도 지닌다. 민정기의 이번 전시 역시 그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간의 어떤 전시보다도 독특한데, 그 두 시간축의 교차점, 즉 회고하는 과거와 예견하는 미래가 교차되는, 바로 이 현재적 지점에서 남다른 알력과 긴장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우선, 회고의 시선과 각도에서 볼 때 이번 전시는 매우 변별적이다. 연대기별로 그의 작품들이 골고루 선별된 것이 아니라, 특정 시기, 특정한 경향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출품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80년대 초중반 서울의 도시풍광과 도시생활의 국면들을 알레고리적으로 전치시켰던 작품들이 한꺼번에 모여 있는데, 이 도록에 실린 최민의 글은 당시의 개별 작품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작업의 의미와 구성방식을 당대적으로 재검토한다. 최민이 밝혀내고 있는 바와 같이, 확실히 이때의 그림들은 그 당시 왕성한 활동을 벌였던 그룹 "현실과 발언" 시절 그의 비판적이고도 생산적인 공력을 보여준다. 민정기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궤적을 그려온 페인터임이 증언되고 있는 것이다. ● 한편, 90년대 내내 이어졌던 산수풍경 작품 일부가 이번 전시에 출품된다. 숫자로 보면 산수풍경화 중 현장의 스케치나 사진에 의거한 다분히 실경적인 그림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이번 전시에는 자연과 역사와 생활상의 시각물을 상상과 실재가 혼재하는 종합적인 텍스트로 재구성한 그림들이 호출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상의 측면에서는 감각적인 원형성이 보존되고, 주체의 입장에서는 소통의 온전함이 수반된, 보다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재현방식이 강세를 띠는 작품들이 선별되었다. ● 그런데 이 두 시기를 대별해보면, 그 사이에 인식론적 단절이라 할만한 것이 가로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시와 자연의 이분법적 대립은 서울에서 양평 산골짝으로 작가의 삶의 터전이 급변한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겠다. 개인의 소외 대 공동체의 발현이라는 반목은 작업환경과 활동방식의 문화적인 맥락이 달라진데서 온 것일 수도 있겠다. 현실과 이상이라는 대조는 80년대와 90년대라는 전혀 다른 시대적 에피스테메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식의 이분법 이데올로기는 양 항목이 서로를 지탱하는 허구적 관계에 기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투적 설정에만 사로잡혀 있는 한에서는 표면적인 대립의 기호들 저 아래에서 이 변화를 추동하고 이끌어온 작가의 작업적 충동이나 에너지를 우리가 놓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큰 차이로 보이는 것들을 희미하게 꿰뚫고 지나가는 공통 감각이나 일관된 입장이 감지된다면 그것이 얼마나 미약하던지 간에 우리는 이 작가의 정체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실마리를 마련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전시의 디스플레이에서는 두 시기의 작품들을 갈라서 정돈하기보다는 뒤섞어서 서로 반향(反響)하도록 구성하였다. 여기서 이 두 유형의 작품들을 셔플(shuffle)하면서 핵심적 역할을 맡은 카드로 삼은 것은 2000년대 들어서 새롭게 착상하여 이번 전시에 마무리하여 내어놓은 다섯 점의 '산수화지도'이다(눈치 빠른 사람은 이 대목에서 카드와 지도가 인도유럽어 계통에서는 같은 어원을 가진 말이라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 하여튼 최근 작품에는 90년대 내내 그가 단련했던 산수화 원리와 고지도 형식이 몽타주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 얹혀져 있는 도상이나 에피소드들은 80년대의 도시풍경을 떠올리게도 한다. 나아가 이 '산수화지도'는 도시를 떠나 숲으로 산으로, 더 미시적으로는 꽃과 나무로, 보다 원시적으로는 파도와 별까지 향했던 작가의 눈과 발이 다시 도시로 돌아오고 있는 과정으로 읽힌다. 물론 이것은 그저 '다시' 라고만 할 수 없는, 많은 변화와 체험을 품고 돌아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마치 오랜만에 고향을 향하는 이민자의 친숙하고도 낯선 귀향처럼. ● 그러므로 예측의 측면에서 보자면 민정기의 작업은 아주 느리게 선회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 막 귀환점을 지나서 과거의 어떤 작업들을 거슬러 만나면서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같은 선상이나 평면에서 추돌하거나 충돌한다기보다는 나선형으로 교차하면서 서로 스치고 지나가는 회귀적이고도 위상적인 궤적에 가깝다. ● 이번 전시에서 디스플레이의 주된 장치들은 병풍의 기능과 역할에서 따왔다. 병풍은 공간을 가리고 분할할 뿐 아니라, 공간과 시간, 관념, 행위 등 서로 다른 기준의 리얼리티 사이에 필요한 경계와 전환을 창조한다._그림 속의 그림, 우훙, 이산, 1999. 병풍 오브제가 그 자체로 건축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면, 미디어로서 병풍은 회화의 표면을 구획하고 연결해 주는 것이다. 또 병풍 뒤에는 의례 글씨나 별도의 그림들이 붙어 있어 이미지의 이면을 또 다른 중요한 해석의 사이트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민정기의 그림들은 이처럼 병풍이라는 다양한 장치에 의거해서 전시장 공간을 특별한 장소로 되살려낸다. 이곳에서, 우리는 민정기가 만든 지도를 따라 그림 숲 사이를 걷고 산수풍경을 보며 그 과거와 미래를 압축해서 한꺼번에 체험하게 될 것이다.
보기와 걷기-메타(meta)지도 ● 이번에 출품된 민정기의 산수풍경 그림들은 보기와 걷기 사이의 변증적 관계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들이다. 이를테면, 그의 작업은 풍경화가의 작업보다는 차라리 등산객의 활동에 가깝고, 자연에 대한 태도는 관광객보다는 지도제작자에 가까우며, 또 대상의 경제에 대한 이해는 부동산업자보다는 풍수지리가에 가깝다. 여기서 움직이는 작가가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지형 또는 지물(地物)의 크기 및 상관거리를 측정하는 객관적인 관계항들 뿐 아니라, 보이는 세계 아래 있거나 그 너머까지 미치는 기억과 역사의 심상지세(心象地勢)도 포함한다. 걷는 것은, 따라서, 이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성을 연계하고 이를 숙달하는 신체언어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처럼 보는 주체와 보이는 대상세계의 상호간 한계를 확장하면서 걷는 것은 궁극적으로, 정적인 보기와는 다른 보는 방식을 제안한다. 흔들리고 움직이는가 하면 그 흔적까지 남기는 동적인 보기 방식은 대상을 장악하고 단일화하는 것 또는 단순하게 차이와 이질성을 연역해내는 것과는 전적으로 다른,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제공한다. 그러니까 민정기의 그리기는 이러한 보기와 걷기의 관계가 순간적으로 조응하여 계주하는, 지속적인 '차연'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특히 민정기의 작업은 여러 지점에서 지도와 깊은 연관성을 맺는다. 답사를 기본으로 하는 그의 작업은 실제로 지도 없이는 출발조차 불가능하다. 또 지도를 따라 지형을 눈으로 살피고 걸어 다닐 뿐 아니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사람들과 인터뷰하면서 나름의 '지도'를 만들어낸다. 때때로 그의 '지도'에는 직접적으로 지도의 기호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지형을 입체적으로 떠낸 모형이 삽입되기도 한다. ● 지도에 대한 이 화가의 일차적 관심은 3차원의 입체세계를 2차원의 평면으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화가들이 부딪혔던 문제, 다름 아닌 환영주의의 딜레마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지도의 제작과정은 지시대상과 기호 간 관계를 유사성에 기초한 아이콘이 아니라 인덱스의 그것으로 설정해준다. 이로써, 재현의 대상과 비교해 볼 때 재현된 이미지에 대리적 위계를 설정하거나 보충적 서열을 매기게 된다는, 오래된 회화의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 치유의 경로는 서구 모더니즘 회화가 사실적 재현의 대당으로 회화 표면의 현존에 집착했던 방식과는 사뭇 다르다. 민정기는 산수화의 구성방식과 원근법적 시선을 중첩시키고, 동양의 고지도나 서양 중세지도에서 흔히 등장하는 실물 아이콘들을 포개놓음으로써, 이 '지도'를 과학적인 체계와 장식성 그리고 역사적인 정보와 심미성을 두루 갖춘 두툼한 생산물로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이 '지도'의 매력은 그것이 실제 지역을 인덱스해 줄 뿐 아니라, 이러한 복합적인 '지도'의 독법을 따라 읽어 갈 때, 해당 공간이 독자의 주관적 해석과 체험이 가미된 주체적이고 개별적인 장소로 변모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개발의 연대에서 벌어진 바의, 남한 공간의 사회사적이고 경제사적 변화를 염두에 둔다면 이러한 민정기의 작업은 이러한 변화를 총괄하는 미적 상관물(correlative)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대도시는 시공간의 압축을 가속화하고 있고, 도시와 농촌의 이중적 성격을 가졌던 점이 지역은 점점 더 도시 쪽의 성격을 강화하고 있으며, 또 전통적 시골 지역도 도시와 농촌의 이중적 성격을 띤 점이공간으로 이행하고 있다. 민정기의 산수화지도에서, 이제 철골과 시멘트는 나무와 흙과 대립하는 것으로만 설정되는 것이 아니다. 급격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조야하고 인위적이며 몰염치한 개발에 의해 출현한 고층건물과 아파트는 이제 북한산과 한강 사이를, 또 한강과 관악산 사이를 메워버리고 있다. 자연적 절경의 맞은편에는 급조된 조악한 인공 위락시절이 자리잡고 있다. 또 급격하게 늘어난 모텔과 양풍 건물들은 절집이나 전통 건축물들과 성조(聲調)에서 대구를 형성하며, 거대한 다리와 송전탑은 계곡과 거대한 고목과 묘하게도 압운(押韻)을 이루며 서있다. 즉, 이러한 자연적 풍광의 변질과 변화라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부정적, 분열적인 타락으로만 받아들여지고 마는 것이 아니다. 민정기의 예술적, 성찰적 역량은 압축성장이 야기한 몰염치한 변화의 총체를 나름의 산수화지도 안에 포개고 감싸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정기의 산수화지도는 철저하게 당대적이면서도 인문적이라 할 수 있다. 지도의 역사는 모든 지도가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_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앤서니 그래프턴, 일빛, 2000. 민정기의 '지도'가 갖는 당대적 정치성은 이 작가가 동시대 한국미술이라는 사이트에서 갖는 의미와 정확하게 연계될 때 확인된다. 미리 말하자면 이는 80년 한 때를 풍미했던 작가로, 혹은 그의 어떤 작품에 대한 오마쥬로, 또는 전통의 문제를 재해석한 당대의 문인화로 개별적으로 접근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과 발언"이던 「포옹」(1981)이던 아니면 벽계구곡도(碧溪九曲圖)이던 간에 그 별들이 그저 각자 저 홀로 빛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그보다는 별들의 배치(constellation)를 통해서, 그 개별 작품들을 움직이고 있는 작업의 작용점과 연계방식을 우리가 당대적으로 다시 읽어낼 때에, 예컨대 일상적인 삶에 대한 토착적인 민속지적 관심과 텍스트에 대한 인문학적 독해력을 바탕으로 이를 화면 위에 몸으로 구현하는 직업화가적 근성을 제대로 읽어낼 때, 그의 '지도'는 비로소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된다.
겹쳐놓고 읽기 ● 이번 전시의 제목, 『본 것을 걸어가듯이』는 작가의 작업실 벽면에 작가가 연필로 써넣은 구절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육성 못지 않게 육필도 사람의 개성을 드러낸다지만, 특히 이 구절을 썼을 때 민정기의 타이포그래피는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텍스트나 작품 하단에 새겨지는 사인과는 다르게 보인다. 80년대 작가의 그림에 삽입되었던 글자들은 간판 혹은 상표의 형태인 경우가 많았다. 사인이 생략되었던 그 그림에 새겨진 텍스트들은 대량생산품의 복제이미지와 작가의 개성적 스트로크 사이에 존재하는 일정한 긴장감을 보여주었다. 반면, 90년대 들어 인쇄체에 가깝게 더욱 규격화되는 작가의 사인은 앞선 시기의 글자가 갖는 의미를 전도시킨다. 즉 그것은 작가의 신체적 흔적과 그 인증에 해당하는 사인이라기보다는, 제목과 연도 그리고 작가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캡션에 가깝게, 오히려 작가의 필치를 가능한 한 객관화시키는 기호로서 그림 프레임 안으로 배치되어 있다. ● 한편, 단정하면서도 날렵한 필치로 쓰인 제목의 문장은 한쪽으로 휘어져 한껏 멋스럽게 보인다. 작가가 일하는 공간에 또 항상 보는 장소에 붙여 놓은 이 구절은, 그 용도에서, "가화만사성"이나 "하면 된다"처럼 작가에게는 자기다짐의 경구이자 심리적인 부적인 셈이다. 그러니까 돼지그림이나 통속적인 풍경화의 텍스트 버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민정기가 다시 그려낸 이발소 그림들이 그저 팝적인 인용이나 캠프적인 패스티쉬에 그치지 않고 뚜렷한 정서적 기의를 갖고 있듯이, 이 문장도 통속성에 대한 공감에 더해서 구체적인 기능을 갖는다. ● 『본 것을 걸어가듯이』라는 다소간 시적인 이 표현은 실은 그림을 그릴 때의 실제적인 지침이 되기도 하다. 좀 분석적으로 풀어본다면, 그리는 쪽에서는, 본 것을 걸어가듯이 그리는 측면과 걸어가면서 본 것을 그린다는 측면이 함께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감상의 쪽에서 갈라보면, 걸어 다니면서 그림을 보고, 그림을 걸어 다니듯이 본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앞의 것이 프레임 밖에서의 감상법이라면 뒤의 것은 프레임 안에서 일어나는 상상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전통 산수화의 감상법, 예컨대 걸음걸음마다 보는 방법(步步看)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전통적 미술 어법을 민정기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확충하여 독특하고도 새로운 창작 원리 및 감상 원리로 창출해낸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편으로 이것은 그림 안에서 동세를 공간적으로 구현하여 생동감을 획득하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간적인 변화에 기초하여 그림에 이야기를 직조해 넣는 방식과도 연관된다. 이 모든 과정은 어떤 것이 먼저이고 나중인지 그 순서를 따질 수 없으며, 동시다발적으로 감각의 발산을 따라 생겨나는, 시적인 이미지들의 발생과 연상과 상호작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그의 주문을 따라 우리도 그의 작품들을 '그렇게' 읽어볼 수 있다. 우선 서로 다른 시기에 그려진 그림들 몇몇을 포개놓고 걸어 다니다 보면, 작가가 그림을 구성하는 원리며 이를 뒷받침하는 사상의 골격이 자연스럽게 솟아오른다. 특히 인물이 등장하는 그림들은 어떤 풍경그림보다도 그 맥을 잘 잡아준다. 남자들 세 명이 퇴근 후 소줏집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있는 「대화」(1980)는, 작가가 도심 한복판에서 시골 골짜기로 터전을 옮긴 후 그린 그림들, 그중에서도 시골 아줌마가 한켠에 괭이를 들고 서 있는 「이른 봄 무씨 뿌리기」(1991), 할머니가 얕은 둔턱 위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한여름 고추밭 매기」(1991)와 서로 가로지른다. 여기 등장한 인물들의 표정, 복장, 포즈, 제스처는 배경의 각기 다른 구획과 분할방식에 조응하며 상황의 리얼리티를 감각적으로 전달한다. 이 찰나의 순간은 모두 노동후의 휴식이라는 그 틈새를 포착한 것으로, 이 시간 앞뒤로 펼쳐지는 움직임과 사건 또는 에피소드들의 순간적 응축 또는 포즈(pause)에 다름 아니다. 이때 작가가 얕은 음영을 주는 잔 필치로 그려낸 크고 작은 주름들은, 풍수를 보는 사람이 지세에서 내러티브를 읽어내듯이, 또는 관상을 보는 사람이 얼굴의 인상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듯이, 그림 안팎으로 시간이 흘러가는 시각적인 도랑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처럼 세밀한 관찰의 시선에 어떤 정황 자체를 전달하는 신체언어가 결합되어 만들어진 미장센의 완결성을 통해, 우리는 그림언어가 가질 수 있는 전일적인 힘을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의 뒷벽 한켠에는 복돼지 액자가 걸려있다. 이것은 일종의 중의적인 기호이다. 그 이발소 그림은 작품의 주제와 관련된 핵심적인 무대장치인 동시에 그가 별도로 그린 그림 「돼지」(1981)의 전신이자 예견이기도 한 것이다. 이처럼 프레임 안의 프레임은 민정기 그림에서 서로 다른 차원에 속하는 시공간들을 이중인화하는 하나의 시각적 장치로 기능한다. 흥미롭게도 1992년 실크로드를 답사하고 나서 그린 작품에서도 이런 류의 '액자 그림'이 발견된다. 작가가 주로 실경적인 산수풍경을 집중적으로 그렸던 시기에, 또다른 오리엔트를 여행하면서 작가의 키치적 정서가 다시 발동한 셈이다. 외연적으로는 키치그림의 통속적인 장면이 텔레비전 화면이나 포스터, 잡지의 표지로 외삽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그렇게 여겨진다. 보다 함축적으로는 일정한 커뮤니티의 정서적 공감대에 기초한, 일종의 생활 인류학적 '저인망' 훑기를 거쳐서 나온 시각적 산물이라는 공통점도 보인다.
이제 「대화」의 그림 속 액자는 「중앙아시아의 만년설」(1993)에서는 소니 텔레비전으로 그리고 「신강자치구...」(1993)에서는 다른 액자와 족자로 연계된다. 그리고 소니 텔레비전에는 관광엽서에서 흔히 보이는 풍경 사진이 그리고 신강의 액자에는 이국적인 풍경화가 그려져 있어 이 프레임이 관광 키치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을 슬쩍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이 두 그림은 모두 패턴화된 면 처리를 통해 가뜩이나 두께가 없는 민정기의 그림을 더욱 평평하게 만들고 있는데, 이러한 얇은 두께가 그림의 중층적 구조를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레이어로 읽히도록 끼어 넣어졌다는 것은 역설적인 해법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민정기의 그림은 그림에 대한 그림으로서, 여러 담론과 텍스트를 그림 안으로 짜 넣는 개념적 도구이며, 아울러 그림에 대한 감성적인 반응과 해석 틀로 그러한 프레임을 활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 서로 다른 시간대의 전혀 다른 공간들을 겹쳐서 읽어보는 것 못지않게, 작가의 작업적 동선과 그 시선을 내부적으로 교차해볼 필요도 있겠다. 이는 특히 작업 구성의 방향타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의 전개방식까지 가늠하게 해주기 때문인데, 90년대 내내 작가가 몰두해 그렸던 벽계구곡에서 움직이는 경로가 가장 뚜렷하게 잡힌다. 벽계구곡은 이상향의 자연을 승경(勝景)으로 간택하여 그에 상응하는 이름을 부여하고 그곳으로부터 삶의 이해와 실천들을 도모했던 주자(朱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마침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양평 서종면 부근은 위정척사파의 거두 화서(華西) 이항로가 조영(造營)한 벽계구곡이 위치했던 곳으로 기록에 남아 있었는데, 이 방면의 전문가인 최종현 교수와 함께 민정기는 아홉 개의 곡을 직접 찾아내고 이를 그림으로 그려내었다. ● 민정기가 왜 벽계구곡을 굳이 찾아나서야 했는지 그 내밀한 동기야 잘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의 벽계구곡도는 작가의 작업에서 생기와 생동의 원리가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는가를 이해하도록 해준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곡(曲)은 지리적으로 깊은 곳에 습곡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지형이나 지세가 특이하거나 아름다운 장소, 특히 계곡이 굽이치는 곳을 가리킨다._곡과 경에 나타난 한국전통경관 구조의 해석에 관한 연구, 최기수, 한양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89. 곡이란 산의 맥이 휘어지고 물이 굽이쳐 흐르는 곳인데, 여기서 들뢰즈의 표현을 빌려다 쓴다면, 한마디로 이것은 지형과 지세에서 여러 겹의 주름(pli), 즉 산의 주름들과 물의 주름들이 겹쳐있고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 해석에서, 이 곡은 지리적인 의미만이 아니고, 윤리-정서적인 이완과 예술적인 굴곡의 의미까지를 함축하는 시각적 지물로 이해되어 왔다. 각각의 곡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진 소우주이면서 동시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마지막 구곡으로 마감하는데, 이 때 아홉이라는 수는 끝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의 등장을 의미한다. 또 곡을 풍경 속으로 시각화하는데 활용되는 삼원법(三遠法)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그림을 그리는 시점일 뿐 아니라 유한적인 것에서 무한적인 것으로 초탈하여 창신(暢神), 즉 정신적 자유해방의 최고경지를 지향하는 회화적 장치이기도 하다._와유사상의 형성과 그 예술적 실현, 조송식, 서울대학교박사학위논문, 1998. ● 민정기가 벽계구곡을 찾아내서 살려낼 때 그는 이 삼원의 시점을 옮겨 다니며 일곡에서 구곡까지 별개의 곡을 따로따로 그리기도 하고, 구곡 전체를 다른 구도로 여러 번 그려내기도 한다. 사실적인 묘사에 집중하기도 하고 그 위에 역사적인 사건과 도상을 포개서 그려내기도 하며, 또 유화뿐 아니라 목판화나 드로잉으로, 또 간혹 먹을 써서 만들기도 한다. 가로로 펼쳐지는 그림과 세로로 길게 내리닫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입체로 구곡을 재현하기도 한다. 결국 벽계구곡도는 그저 작품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시각적이면서 성찰적이고 사색적인 환경 그 자체를 구축하게 된 셈이다. 벽계구곡에 관한 한 민정기에게 산수와 산수화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이 환류하는 곡에 담긴 화제(畵題)의 폭이나 그 깊이와 전방위성이 작가의 탐구심과 열의를 자극할 만했던 것이다. 또한 곡의 모양새와 흐름 그리고 내재적 성격이 그렇듯이, 이제 민정기의 작업은 새롭게 굽이쳐 흐르는 또 다른 동선이 시작되는 곡을 요청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는 창작행위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새로운 결절(結節)을 요구한다.
'산수화지도' 또는 '정선오회도(旌善五繪圖)' ● -「여주 신륵사」, 「금사면 이포 나루터」, 「양수리」, 「아차산에서 보이는 한강」, 「압구정」(2004) ● 산맥을 따라 걸어가듯이 본 것을 그리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는 물길을 따라 본 것을 걸어가듯이 그림을 그렸다. 철학적인 화풍을 보여주는 「무이구곡도」의 산수화 전통을 재해석했던 벽계구곡도에 비해, 이 대형 '산수화지도'는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나 「청명상하도(淸明上河圖)」가 그랬듯이 시대의 변화와 연관된 풍경화 내지는 풍속화에 오히려 가깝다._변방에 구현된 은둔적 세계관-주자의 무이구곡도, 최종현, 트렌스, 2000. 「청명상하도」가 강을 근간으로 한 수로를 축으로 전개된 삶의 공간을 표현했다면, 민정기가 뽑아낸 오경(五境)은 이제는 잊혀진 정선 뗏목의 물길을 따라서 펼쳐진다. 떼꾼들이 때로는 목숨을 걸고 때로는 흥에 취해서 뗏목을 옮겼던 이 물길은 그저 경제적인 조운(漕運)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소리와 연극과 연흥이 '아우러진' 퍼포먼스의 현장이었으며, 일찌감치 그 주변에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며 형성된 굵은 문화 벨트였다고 한다. 우리시대의 화가 민정기는 다시 그 강의 물줄기를 따라 여주에서 출발하여 이포에 닿았다가, 물길이 갈라지는 양수리를 거쳐 송파에서 한강을 타고 동시대 소비문화의 중심부 압구정에 이른다. ● 벽계구곡도가 축을 기본으로 하는 병풍의 형태를 받아들이고 있다면, 물길을 따라 길게 펼쳐지는 이 한강의 오경도는 두루마리 그림 형식을 차용한다. 원래 두루마리 그림은 미장센과 에피소드를 감상자가 읽기에 적당한 길이로 분절하여 연결해가기 때문에 서사적일 뿐 아니라 사적인 내러티브를 형성하기에 매우 적합한 형식이다. 민정기의 오경도는, 말하자면 한강을 타고 도는 훨씬 긴 두루마리 그림의 서사성을 환기시키면서도, 작가의 다소간 주관적인 구획에 따라 다섯 개의 '나루터' 장면을 특별히 팝업시켜 재현한 것이다. 각각의 이 도드라진 광경을 작가는 산수풍경과 역사와 이미지와 시(詩)가 어우러진, 두툼한 텍스트로 제시한다. 그런데 이 텍스트는 두툼할 뿐만 아니라 촘촘하기도 한데, 다양한 시점과 각도와 스케일로 잡아낸 산수의 모양새, 재미난 아이콘처럼 제시된 건축물들과 시대를 관통하면서 엮어내는 설화, 그리고 다시 그 위에 개발의 흔적과 여러 현대적인 삶의 풍경들이 오버랩되면서, 텍스트의 밀도는 점점 커진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생활세계의 틀과 내용을 받아들인 이번 그림들의 텍스춰(texture)는 고르지 않으며 텍스트 안의 대상들은 비균질적인 형(形, figure)을 이룬다. 일단, 전체적인 그림의 구성원리는 회화와 지도가 미분화되어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는 회도(繪圖)를 상기시킨다._표상공간의 근대, 이효덕, 소명출판, 1996. 회도란 일본에서 전통적인 그림지도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일본의 회도는 서양의 근대 지도 제작기법이 전래됨에 따라 사멸하고 이제 박물관이나 화첩 안에서만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민정기의 그림지도는 일본의 회도와는 정반대의 발생론적 과정을 밟아나간다. 서양의 근대 지도는 객관적인 정보를 시각적으로 제공한다는 명분 아래 생활세계의 모든 활력적이고 생명적이며 구체적인 것들을 추상적이고 균질적인 좌표 공간에서 증발시켜버리고 말았다. 테크놀로지 발전에 따른 오늘날의 지리정보시스템(GIS)이 지도 제작에서 획기적 전환을 가져왔지만, 이것이 우리 구체적 삶의 윤택함이나 풍족함을 실질적으로 매개하지는 않는다. ● 이에 반해 민정기가 다시 회복시키려고 하는 것은 전통 사회에서 우리가 풍수지리라는 패러다임으로 개념화하고 포착하려 해왔던 것, 즉 인간이 땅, 산, 하늘, 물, 바람 등의 대상 세계와 맺고 있는 구체적이면서도 총체적인 삶의 관계이다. 이 관계망에서 포착되고 배치된 대상은 그것이 자연적인 것이든 혹은 문화적, 인공적인 것이든 간에 생활세계의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삶의 감수성에 의해 포착되는 만큼 각각이 두드러지게 재현될 수밖에 없다. 이 대상들은 일관된 비례원리나 단일한 조형 원리의 독재에 따르지 않고 이질적, 비균질적, 개별적인 형(形)을 가진 채 화면 안에 구체적으로 자리잡게 되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이렇게 구조화하는 힘을 우리는 전통적으로 세(勢)라고 불러왔는바, 이제 민정기는 산수화지도를 통해서 독특한 회화적 형세를 제시하려고 하는 것이다.
평원산수를 기본으로 하지만 물길을 따라 바로 서기도 하고 뒤집어진 것처럼 배치되기도 한 건축물들은 묘하게도 밋밋한 공간의 깊이에 중층적, 복합적인 맛을 더해 주고 있다. 또 예의 산수풍경 그림에서처럼 초록색이 주조를 이루지만 풍속화적인 다색조 아이콘들이 중간중간에 돌출적으로 삽입되면서 전체 톤을 흐트러뜨린다. 그림의 양 측면에 세워져 있는 형상적 칸막이들은 화면 안에 또 다른 공간적 레이어를 만들어 내지만, 다시 올오버로 찍혀 있는 하얀 점들이 그 차이를 문질러 버린다. 또, 대상마다 다르게 적용된 시점과 각도와 스케일은 구체적, 주관적인 도드라짐의 원리에 따라서 다양하고도 이질적으로 화면 구조를 형성한다. 궁극적으로 이 그림에서 감지되는 생동감도 벽계구곡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산에서 바라본 구곡의 시선이 초월의 활시위를 당기는 것과 같았다면, 이 그림의 활력은 저자거리의 떠들썩함을 닮아있다. 정선뗏목을 타는 떼꾼의 몸사위는 낙향한 선비의 몸가짐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무엇보다 이번 산수화지도에서 그림의 기조를 형성하는 커다란 형식적인 특징은 두드러진 나타나는 장식성이다. 그림의 패턴화된 구성방식이나 아이콘화된 지물들, 무늬처럼 보이는 가늘고 잔 필치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화면에 골고루 산포되어 있는 흰 점이 그렇다. 이렇게 전면화된 장식성은 공예적이라고도 할 만한데, 민정기의 그림 곳곳에서 의문부호처럼 자리잡고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건드린다. ● 데리다는 장식에 관해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바 있는데, 그는 칸트에게서 빌어온 파레르곤(parergon) 개념으로 이것을 풀어 설명한다. 원래 파레르곤은 부수적 제작물, 부가물, 부록, 소품 등의 뜻을 갖는 독일어 단어로, 본 작품(ergon)에 부가되었다는 취지의 종속적인 뜻과 가치를 지닌 개념이었다. 데리다는 파레르곤을 실은 회화에 있어서 내용과 형식, 안과 밖의 대립에 의하여 규정된 모든 칸막이와 울타리를 넘어설 수 있는 것으로 재규정한다. 미학적 사례는 아니지만, 우리 한반도의 경우, 비무장지대라는 파레르곤이 그 경계지대 바깥에 분단되어 있는 남한과 북한 사회라는 에르곤에 대하여 행사하는 바의 압도적인 사회, 역사적 규정력을 상기한다면 이 개념에 대한 데리다의 적극적인 해석이 쉽게 이해되리라고 믿는다. ● 데리다의 이런 해석에 기댄다면, 민정기의 다른 그림에서 도드라진 씨앗이나 흩뿌려진 별처럼 자연의 인덱스인 기능을 하는데 멈추었던 하얀 점이 이번에는 철저하게 화면에 또다른 회화적 의미의 겹을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장치로 기능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장식적인 성격이 한껏 개화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게 되는 셈인데, 이 때 이 파레르곤은 일단은 회화 표면의 통상적인 영역 밖에서 부가된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렇게 탁월한 외면성은 일단 안으로 끼어들어서는 이제 내면을 직접적으로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파레르곤은 안팎의 경계 자체를 압박하고 마찰하고 스치고 거기에 이웃하면서 놀이를 한다. 그러니까 "파레르곤으로 구성되는 것은 단지 과잉의 외면성이 아니다. 그것은 에르곤의 내면에 있는 결핍에 얽매어 있는 내적 구조 연관이다. 그리고 그 결핍은 에르곤의 통일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_데리다의 해체철학, 김형효, 민음사, 1993. ● 파레르곤의 또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그림의 프레임이다. 그림 표면의 경계를 지정해주고 이를 물리적으로 지지해주는 역할을 갖는 액틀은 전통적으로 회화의 내적 의미구조의 수준에서는 부가적인 장식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막상 역사적, 정치적 비판을 통해서 따져 본다면, 프레임의 정의나 한계, 역할은 예술의 정의나 한계, 역할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실체적이고 자기충족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제도화의 산물이고 제도의 효과라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민정기의 이번 그림에서 프레임은 이중의 형태로 짜넣어져서(enframed) 그 자체로 그림 안에서 다양한 기능과 용도를 갖는다. 이전 그림에서도 그림 안에 외곽 틀을 그려 넣은 경우가 더러 있기도 했지만, 이번 그림에서는 하나의 화면구성 장치 내지는 재현장치로 개발되어 독자적인 형상적인 틀로 정착하고 있다. 그림 양 측면에 배치되어 그려진 이 형상적 틀은 가운데 포진된 그림과 사방으로 둘러싸인 바깥 물리적인 틀 사이에 끼어들어 있으면서 일종의 전이 공간을 만들어 낸다. 시각적으로 이것은 그림의 끝이 말아올려져 그 배면의 스토리를 보여주는 카투시(cartouch)처럼 보이기도 한다. 회화적 발화(enunciation)라는 개념을 상정한다면, 민정기는 두 층위의 회화적 발화를 한꺼번에 하고 있는 셈이 된다. 또 이 형상적 틀은 기능적으로는 본문의 장소와 관련된 이야기나 역사들을 일러스트해주는 각주 역할을 하기도 하며, 그런가 하면 산수화의 경우 이미지에 대응하여 텍스트의 위치를 구획해주는 제발(題跋)의 바탕에 상응하기도 한다. 또 다섯 장의 그림이 세로로 연결되어 하나의 연속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우리가 감상할 때는, 만화의 홈통, 병풍의 배접 문양, 필름의 검은 띠의 기능들을 총괄적으로 함축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민정기의 '정선오회도'에서 프레임이라는 파레르곤은 프레임 안의 에르곤-텍스트에 대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아주 강력하고도 함축적인 텍스트 상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들은 오늘날 미학 및 문화이론에서 중핵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인트라텍스튜얼리티(intratextuality) 및 인터텍스튜얼리티(intertextualty)의 극명한 사례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 '정선오회도'의 프레임은 초기작 「대화」와는 달리 그림 속의 그림이 아니라 오히려 그림 밖의 그림으로서, 그것을 통해, 그림에 대해서 발언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마티스 그림 (1911)을 상기해 볼 수 있다. 그는 나중에 다시 수정하기는 했지만, 애초에는 자신의 그림에 이슬람 문양그림을 외곽에 액자처럼 둘러서 그려 넣은 바 있다. 이렇게 어떤 중대하고 함축적인 모티브를 일부러 경계선에 배치한다는 것은 실상 그 모티브를 회화공간의 필수적인 요소로 설정하려고 한다는 것을 뜻한다._The Rhetoric of the Frame, Paul Duro (ed.),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민정기는 프레임과 표면에 덮인 흰 점들을 재현의 불가결한 구조적 요소로서 집어넣는다. 이러한 독특한 포진(布陣) 내지는 구조화(structuring)는 그것들이 이전에 가졌던 잠정적이고도 파레르고날한 위상을 부정하고 지양하는 중대한 미적 진술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재현의 한계를 표시하는데 그쳤던 이런 장치들은 이제 민정기의 산수화지도에서, 프레임 안에서 직조된 것(text)과 분리된 것으로는, 또 프레임에 의해 감싸여진 에르곤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으로는 결코 설정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작품과 프레임, 안과 밖, 내용과 형식, 나아가 순수미술과 장식의 대립이라는 설정은 실은 그 관계의 불안정성을 제도적으로, 또 잠정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이런 대립을 변증법적으로 지양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민정기 그림에 배치된, 구조화하고 있고 구조화되어 있는 이러한 장식성을 달리 규정한다면, 이것은 단순한 액자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액틀과 그림 사이에 있는 미적 완충지대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림 안팎 구조의 수사적 의미를 매개하는 형이자 세이고, 궁극적으로는 차이를 생산하면서 동시에 지연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 민정기의 산수화지도는 산수와 인물, 풍경과 풍속, 인문과 지리, 지도와 그림을 한번에 포개어서는 그 안에서 감싸고 포함한다. 또한 이 산수화지도는 자연과 역사와 사회와 생활이라는 서로 다른, 오래된 제도들을 한꺼번에 관통하고 횡단한다. 이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식성은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자면 억압된 것의 귀환과 관련된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회화에서 최소한의 프레임 영역이 물감이 물리화학적으로 덮여 있는 표면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가장 넓은 영토는 그림이 걸려있는 뮤지엄이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프레임이 기능하는 바가, 경계에 대한 제도적이며 실천적인 표식이라고 할 때 이 뮤지엄-프레임은 가장 큰 억압의 실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민정기는 키치 작업을 통해 현대미술에서 억압적으로 작용했던 뮤지엄-프레임을 위반하려 했다. 또 한때는 이야기와 텍스트를 통해 그 경계의 벽을 월장했다. 90년대에는 전통의 내러티브와 구성을 통해 그것을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 이번 전시 작품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회화적 형세로서의 장식성은 이러한 앞선 시도들을 총괄적으로 상기시키는 강력한 귀환의 징후로 떠오르고 있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끈질기면서도 굳센 의지로 민정기는 묵묵히 되돌려 놓고 회귀하면서 말한다. "텍스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 백지숙
Vol.20041003a | 민정기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