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제의 밤

공성훈 회화展   2004_1001 ▶ 2004_1007

공성훈_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50×150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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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01_금요일_06:00pm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광주점 1층 Tel. 062_224_6116

회화는 다른 미술매체에 비해 보다 직접적인 '몸의 부딪힘'에서 비롯되는데, 그 신체적 사건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난다. 하나는 그리는 순간 발생하는 몸과 화면의 부딪힘, 즉 화면과 붓이 만나고 그 촉감이 손가락을 통해 전달되고 몸과 화면이 서로 대응하면서 이루어지는 신체적 사건, 다른 하나는 그리는 대상을 화가의 온 몸으로 직접 접촉하고 체험한다는 의미에서 몸과 대상의 부딪힘. 모두들 전자의 신체성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데... 후자에 대해서 말하자면, 세잔이 그린 사과들, 그리고 산을 그린 풍경화에 나타나는 원경의 집들, 그건 그가 뻔질나게 돌아다녀 너무도 잘 알고 있던 집들이다. 그것들은 시각으로만 파악된 대상들이 아니다. 터너가 폭풍우 속에서 배의 마스트에 자신의 몸을 묶고 겪었던 것 또한 다름 아니다.

공성훈_팔각정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30.3×193.9cm_2004
공성훈_필리핀군 참전비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30.3×162.1cm_2004
공성훈_벽제화장터 계단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12.1×145.5cm_2004
공성훈_벽제화장터 계단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12.1×145.5cm_2004
공성훈_나무_캔버스에 아크릴 채색과 유채_145.5×112.1cm_2004

모더니즘은 그 두 가지의 신체적 사건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즉 모더니즘회화의 경우에는 그리는 순간의 신체적 사건 자체가 그림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묶여버린 신체성을 다시 원래의 두 개로 나누는 것, ...(중략)... 내가 매일 보고 만지고 돌아다니는 동네의 개들, 풍경들을 설치나 사진매체로 다루기에는 왠지 그것들에 미안하다. 내 몸에 다가와 부딪히는 그것들을, 그림 그리면서 다시 한번 몸으로 부딪히는 것이 그들을 정당하게 대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공성훈

Vol.20041002a | 공성훈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