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

마문호 회화展   2004_1001 ▶ 2004_1020

마문호_자생-난무_종이에 유채_262×274cm_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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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1001_금요일_06:00pm_금호미술관 초대일시_2004_1013_수요일_06:00pm_롯데갤러리 광주점

금호미술관 / 2004_1001 ▶ 2004_1012 서울 종로구 사간동 78번지 Tel. 02_720_5114

롯데갤러리 광주점 / 2004_1013 ▶ 2004_1020 광주광역시 동구 대인동 7-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062_221_1808

아직도 "바람은 깃발로 만들고..." ● "나에게도 많은 꿈이 있다. 자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반푼 어치만도 못한 그런 꿈을 꾼다. 잘라내도 자꾸만 자라나는 그런 부질없는 꿈 덩어리들을 끊임없이 잘라내는 용기를 갖고 싶다." 이 글은 1993년 "바람은 깃발로 만들고..."라는 題下의 첫 번째 개인전에 붙인 작가 마문호의 글 중 한 구절이다. 여기에서 바람을 작가의 속절없는 꿈으로 이해해도 무방할 것 같다. 93년도의 첫 개인전 이 후, 10년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도 작가는 과거의 꿈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그 꿈은 작가에게 점 점 더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면서, 그곳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보다, 그 안에서 삶의 이유를 찾고, 또 용기를 얻으려 하는 것 같다. ● 삶의 이유와 용기를 얻기 위해 부단히 다짐을 반복하는 마문호의 고백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림이 밥이나, 좌판 위의 생선이나, 사과쪼가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림이 될 수 있게 하고 싶다. 그것이 그림일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것들이 화면 여기저기에 무질서하게 널브러져 나름대로의 특성을 상실한 체 부유하고 있다. 널브러진 생선이나 무우, 배추쪼가리 등의 푸성귀들, 버려진 각종의 생활용기들은 작가의 자화상임과 동시에 "꿈의 잔영들"이다.

마문호_절창Ⅱ_종이에 유채_227×226cm_1996

마문호의 지난 10년 동안의 작업은 새로운 표현 매체의 도입이나 조형적인 실험들을 통해 변화를 거듭해 오고 있으나 소재와 주제, 형태와 배경간의 이율배반적인 어긋남에 있어서는 여전히 초발심 그대로이다. 특히 "바람은 깃발로 만들고..."에서 작가는 무지랭이들의 초상을 집중적으로 묘사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글에 언급된 바람의 의미로서, 혼탁한 세태의 바람 앞에서 나뒹구는 깃발(무지랭이)들의 초상화 시리즈라 하겠다. 이 무렵, 작가는 애정어린 눈길로 무지랭이들의 삶을 심도 있게 그려내는 반면, 배경은 단순한 풍경이나, 평면적으로 처리해 버리곤 했다. ● 이 점에서 볼 때, 첫 번째 개인전 "바람은 깃발로 만들고..."는 주제가 보여주는 신선함, 즉 깃발이 바람을 만든다는 신선한 발상만큼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해내지 못한 것 같다. 그의 진정한 작가정신은 1997년에 마련한 두 번째 개인전인 "진창"에서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여기서 다분히 사회 고발적인 성격을 지닌 무지랭이들의 초상화에서 보여준 바람과 깃발이라는 주제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거대한 작품들의 규모라 하겠다. 작품의 규모면에서 볼 때, 단일한 형태를 부각하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는 작은 규모의 초상화들의 경우와는 달리 의도적으로 다양한 형태들을 무수히 끌어들이면서 배경과의 관계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화면 위에 무수한 형상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아마도 넓은 공간이 필요했으리라.

마문호_가뭄Ⅰ_캔버스에 유채_20호_1992

마문호의 작업에서 바람과 깃발, 온갖 형상들과 그 배경은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깃발이 바람을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깃발이 민주화의 바람을 일으킨 역사적인 사건을 경험하게 되었다. 민주화 바람은 사람들에게 어떤 단순한 한 사건의 의미로서가 아닌, 의식의 혁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이 경험이 작가의 눈에는 계급혁명으로, 가치관의 혁명으로 비춰졌음에 틀림없다. 작가 마문호가 자신이 경험한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전도를 독자적인 조형언어로 드러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며, 그것이 후일 "진창" 시리즈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드러난다. "진창", 그것은 다름 아닌 계급혁명이자 시각혁명으로서 뒤죽박죽이 된 가치관의 혼란상태로서의 진창이다. 바로 이점이 작품의 규모와 함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할 변화로서, 즉 작가가 형상과 배경을 계급투쟁과 의식의 혁명에 결부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신분의 전이현상은 형상의 해체에로, 형상을 지탱해 주던 바탕으로서 배경은 새로운 유형의 가능성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진창"이 그 이전의 작업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운명적인 해체 과정을 겪고 있는 형상들과 새로이 부각되기 시작하는 배경들. 이것이 "진창"이후 마문호가 꾸준히 추구하고 있는 주제라 할 것이다. "진창"에서 "잘라내도 자꾸만 자라나는 그런 부질없는 꿈덩이들을 끊임없이 잘라내"지 않아도 되는 주제를 찾아낸 것이다.

마문호_볕-Ⅰ/Ⅱ/Ⅲ/Ⅳ_혼합재료_1993

이 시기부터 마문호는 과도한 규모의 화면 위에 과도한 붓질로 억제되었던 자신의 욕망을 분출해 내기 시작한다. 작가가 쏟아내는 과도한 물감 덩어리들이 배경에 집적되어 갈수록, 널브러진 형상들은 "그렇게 보일 만큼 재현적이지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 만큼 비재현적이도 않다."는 김학량의 애매모호한 지적처럼 어지러이 춤추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인물묘사에 집중되던 물감 덩어리들이 점 점 배경으로 자리를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학랑은, "...붓질이 수세미 잎이며 줄기, 열매에 가는 것보다, 배경 즉 바탕에 계속 얹히는 횟수가 훨씬 많다는 점, 배경이 형상 앞에 나서서 화면을 휘젓고 있다..."고 작가의 배경에 대한 집착을 적절히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진창"의 경우뿐만 아니라 2000년 마련한 세 번째 개인전 "자생의 꿈"과 현재 준비중인 "하류" 시리즈에서 더욱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배경에 대한 작가의 고집스러운 집착을 엿보게 한다.

마문호_풋것들_종이에 혼합재료_305×228cm_2003~2004

노란 색 터치 몇 개에 의해 겨우 구분되고 있는 지배, 피지배 영역간의 계급적인 갈등의 장으로서 화면 안에서의 재현적이지도, 비재현적이지도 않은 형상과 배경의 갈등양상은, 시간과 공간적 차원에서도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대나무나 식물의 줄기들로 엮어 가는 바구니의 장식 문양처럼, 마문호의 배경은 반복적인 패턴으로 거대한 화면 위에 너울거린다. 범람하는 하류의 수면을 묘사한 사선형으로 짜여 있는 배경은 일정한 패턴을 통해 다분히 세잔의 조형언어를 연상시켜 주고 있는데, 동일한 색채로 꾸며놓은 부유하는 형상들과 함께 뒤얽혀 있다.

마문호_풋것들_종이에 혼합재료_300×170cm_2003~2004

현재에는 어제의 기억과 경험의 편린들이 절반이상 묻어 있듯이, 맞이할 내일도 꿈으로 스며들어와 있다. 이처럼 마문호의 작업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기다리는 내일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함께 뒤얽혀 있다. 즉, 마문호에게서 온전한 오늘은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작가는 일찍부터 이런 유형의 중첩과 짜깁기가 기억과 경험, 그리고 꿈에 대한 기록들을 전사하는데 적절한 방법으로 여겼으며, 그것이 동양적이건 서양적인 공간이건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마문호 예술에서 시ㆍ공간적인 짜깁기가 작품의 전개를 이끌고 있음에 틀림없는데, Hubert Damich는 "서양 사람들은 바구니를 단지 곡식을 담는 그릇으로서 기능뿐만 아니라 모체로부터 분리된 신생아가 처음으로 눕혀지는 장소로, 생을 다한 생명이 다시 찾는 영원한 안식처로 인식하고 있다."고 정의하면서 자유구상 계열의 포름들을 바구니 짜기와 관련짓곤 한다. "줄기로 엮어 바구니를 짜는 장인들은 줄기들 간의 상호작용과 창조의 원칙을 준수한다. 이 원칙을 바구니 짜기에 직접 적용하며, 포름의 증식을 통해 완성한다."고 밝혔다. 마문호의 예술 역시, "바람은 깃발이 만들고" 에서부터 형상과 그 배경의 상호작용, 형상의 해체와 재구성, 포름의 증식에 몰두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마문호를 자유구상 계열 작가로 분류한다 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마문호_연두그늘_종이에 안료_258×456cm_2002~2004

자유구상적인 요소들은 마문호의 근작 「하류-열매」에서 한결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지난 10여 년 간 작가가 추구해온 예술을 4m에 이르는 거대한 화면 위에 집대성해 놓은 역작이다. 「하류-I(나의 하류를 지나)」 역시 「하류-열매」와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된 8m에 이르는 연두색 그림으로서, 종이를 곁붙여 만든 바탕은 일정한 틀이 없이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일종의 두루마리 그림이다. 이 두 작품은 단색조로 겹겹이 쌓인 두꺼운 물감의 부피와 면적에서 작품제작에 투여한 시간의 길이 미루어 짐작케 한다.

마문호_하류-연두그늘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02~2004

이번에 마련한 마문호의 개인전은 이처럼 지지대가 없어 종이뭉치가 부서져 내려 버릴 것 같은, 게다가 의지가 될만한 지지대 만들기도 쉽지 않은 대작들이 대부분이다. 작가는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하류」를 "어떤 지지대를 갖지 못한 자들의 무대"임과 동시에 "세상에 기생하면서 삶을 꾸려 가는 모든 쭉정이들과 화가 마문호가 스치며 지나가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하류에서도 여전히 "바람은 깃발이 만들고" 있을 것이다. ● 그야말로 쭉정이 같은 「하류」 그림들만 보여줄 모양이다. ■ 오남석

Vol.20041001c | 마문호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