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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21_화요일_06:00pm
드루아트스페이스 서울 종로구 화동 50번지 Tel. 02_720_0345
Cityscape / 객관적 풍경 ● 예술은 삶의 자연스런 반영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상투적이고 진부한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무의미하다고 할 수도 없는 말이다. 이는 예술적 충동, 미학적 지향성 같은 정의하기 힘든 개인의 인간적 본질과 관련된 태도나 삶의 속성에 속하는 문제들이 시각적 형상들을 통해 드러남으로서 작가의 삶에 대한 의미 부여가 정당성을 가질 수 있고 그리고 그런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들이 종종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본질을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미학적으로 특수한 상황에 속하는 개인의 문제들이 보편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 개인의 삶의 구체적인 상황들이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라는 보편적 소통(communication)의 형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 장진경의 회화는 소위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추상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녀에게 추상은 구상을 넘어선 추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팝아트적인 의미에서의 추상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구체적인 형상을 자신의 예술적 훈련을 통해 좀더 개념적인 형식으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풍경을 통해 자신이 의도한 방식으로 이미지들을 직접적으로 추상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는 팝아트 작가들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형상의 표피적인 나열이나 의미를 파편적인 형상들을 통해 개방시키거나 하는 전략적인 차원에서의 접근을 지양하고 있다. 오히려 작가는 그런 전략적 차원의 개방성내지 자유로움을 다시 한번 의미의 사슬로 형상화시키려는 또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는 언뜻 보면 자기 모순적인 특성으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왜 팝아트의 표피적인 감성적 형태들을 회화의 언어로 가져오면서 그것을 다시 한번 의미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그녀가 전략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작품에서는 전략을 넘어서는 전략의 구축에 대한 기민함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작품에 대한 미학적 분석을 시도하기 이전에 그녀의 예술적 태도에 대한 문제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그녀에게 작품은 일상적 삶의 일부이다 - 이것은 이 글의 첫 문장에서 암시했던 말이다. 일상은 특별한 의미나 형식의 생성을 전제하지 않는 평범한 우리 삶의 흐름 같은 것들을 일컫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전시 도록에서 내가 지적했던 그녀의 전통의 차원에 대한 고려와 시각적 형식을 드러내는 방식의 기의적(signified)인 특성은 여전히 의미 생성 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전통은 마음의 풍경, 시각적 형식의 기의적 차원의 드러냄은 의식의 풍경으로 혹은 반대로 전통은 의식의 풍경, 마음의 풍경은 시각적 형식의 기의적 표출로 보아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장진경 작품의 내재적인 경계들은 예술과 의식의 차원에서 기능하기 시작한다. 우리의 현상적 지각에 의해 파악되는 의미의 경계들이 아니라 작가의 내적인 감성의 세계에서 분열적으로 존재하는 경계의 생산적인 분리가 의미를 형식에 예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형식이 의식의 영역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추상의 성격은 추상을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의식의 분화(differentiation)를 수반하게 되는 것이다. ● 장진경 회화에서 보여지는 형식주의적 질서를 내재한 유기체적인 자유로움은 작품의 개별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단자적인 독립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체적인 인상을 통해 존재론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재현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즉 작가의 작품 이미지가 추상적인 존재 자체로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사유의 차원에서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필터링의 과정을 통해 오브제적 이미지로 제시된다는 의미이다. 그녀가 시도하는 재현은 형상적인 질서를 지닌 이 세계의 사건들이 아니라 의식에 의해 조율되지만 형식과 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애매성을 지닌 삶의 정신적인 지표들이다. ● 이번 전시 타이틀이자 작품들 제목이기도 한 Cityscape은 다양한 삶의 사건들을 가능태로서 내포하고 있다. 인간들의 삶에서 사건이 발생하고 소멸하는 가장 빈번한 장소로서의 도시는 삶의 긴장이 내재되어 있고 삶의 기반을 형성하는 미묘한 사건들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장소이다. 그런 장소에서 우리는 독립적인 듯이 보이지만 동시에 유기적으로 직조되어 있는 거시적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장진경은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유기적으로 구성되는 현상들이 산재해 있는 세계보다는 추상 자체의 의식적 질서를 지향하는 미학적 차원을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그녀 예술의 목적적 진술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그녀에게 작품의 구조는 의식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서고, 또 현상의 세계를 넘어서는 절대성의 차원으로 전이되어 개념적인 세계상으로 보편화되어 버린다.
이런 면에서 수많은 단자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풍경인 동시에 추상적으로 제시되는 의식의 지평이기도 하다. 이런 의식의 지평 위에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적 감성을 조심스럽게 재현한다. 그러나 그런 재현이 의도하는 것은 재현을 위한 의식의 분화와 조합을 시도하는 방향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에 수반되는 삶의 단편적 상황들을 표면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하여 표면적인 형상과 의식의 조합들은 좀더 큰 방향에서의 통합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그녀의 예전 작품에서는 한 가지 색이 한 작품의 모든 분위기를 조절하는 중요한 단서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삼원색 계열의 색채들이 하나의 종합적인 작품 구성을 위해 동시에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단순한 듯 보이지만 작가에게 특별한 개인적 변화들로 인해 그녀 작품의 단자는 모티브의 확장이 아니라 그녀 작품의 미학적 테마로의 변화를 지향하게 한다. 즉 색채의 3자 관계(triad)를 통해 단자들이 독립적으로 가지고 있는 각각의 의미들의 가치중립적 평형(equilibrium) 상태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두드러지게 만들어내는 객관적 상황이다. 여기서 객관성은 의식에 수반되는 중립적인 가치라기보다는 의식의 상황을 조절하는 개념적 방향키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색채와 형상의 객관적 중립성이 만들어내는 분위기(aura)는 형식 자체도 아니고 의미 자체도 아닌 형식과 의미의 2차적인 조합 상태라 할 수 있는 장진경의 예술적 테마 구성의 중요한 형식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 예술적인 대주제(theme)를 향한 작가의 풍경은 도시라는 현상적 차원의 풍경을 뛰어넘어 정신의 생명성을 조율하는 의식과 인간가치의 풍경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작품이라는 구체적인 의식의 표지들은 예술 개념을 유발시키는 정신적인 단서들로 환원된다. 이것은 미학적으로 확장된 시각적 형상의 특성들이다. 작가는 기억의 풍경들을 화면에 끌어내는 것이다. 이런 기억의 풍경들을 통해 자신의 미적인 감수성을 확장시킴으로서 예술작품에 진정한 독립적 존재성을 부여하는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s sake)의 차원으로 진행해 가는 것이다. 작가의 이런 행위는 자기치유적(self-therapeutic) 행위라고 지적될 수 있다. 미국의 미술비평가 도날드 쿠스핏(Donald Kuspit)은 예술의 근본적 오리엔테이션을 자기치유적 행위로 규정한다. 즉 일종의 나르시즘적인 자기애를 사회화시키는 방식으로서의 예술적 의미부여가 범주적인 방향성을 지님으로써 개인의 의식의 확대를 가져올 수 있는 컨텍스트를 형성하게 되고 그리하여 확대된 개인의 의식은 특수한 공적영역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예술적인 자기애의 출발점은 자신의 행위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보면 어린아이들의 공간에 대한 접근 방법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 동력이 함의된 통찰은 내러티브를 하나의 신화로서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런 신화들은 예술가가 미적으로 완성하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로의 깊이를 성취하여 간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지닌 특수한 세계로 발전되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장진경의 예술적 행위의 범주는 완성을 향한 외적인 방향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 위에 작용하는 내적인 치열함을 일종의 배제적인 특성을 통해 통합함으로써 예술적으로 새로운 계기들을 조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개인의 예술적 합목적성이 어떻게 시각적 수단들을 통해 성립될 수 있는가를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내러티브를 만들어내지만 일정한 목적을 지닌 수단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오히려 무목적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소망을 하나하나 담아 가는 미시적인 단자들이 그녀의 예술에서 중요해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진리와 이성, 삶의 합리성과 목적적인 세계관 등등의 표면적인 질서상황은 그녀 작품의 표면적 상황들을 통해 강력하게 드러나는 듯이 보이지만 그런 것들은 그녀가 예술을 통해 성취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작가가 내적인 조화상태라든지 혹은 삶의 조화 같은 문제를 자신의 예술적 주제들로 끌어들인다고 할 수도 없다. 그녀는 단지 삶을 단편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개체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성을 존중하고 또 그런 생명성을 통해 삶과 예술적 형상의 다양한 계기들을 확인해 나아가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풍경이 삶의 지평을 넓혀준다거나 의식의 차원을 열어준다고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가 작가로서 작품에 개입하는 방식은 의식의 차원을 여러 개의 지평으로 분리하여 하나의 불완전한 풍경으로 제시함으로서 삶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거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시각은 서양적 원근법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아니라 마음을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자 하는 우리 삶의 시각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결국은 삶의 조화 속에서 의미와 무의미조차도 차별 없이 공존하는 것이 그녀 삶과 예술의 중요한 주제가 되는 것이고, 바로 이것이 그녀가 지향하는 객관성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자기애로부터 시작되는 치유적인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녀가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상징적 세계도, 의미의 세계도 아닌 이미지에 의해 환기되는 인상의 세계이고 마음의 세계이고 풍경의 세계이다.
결국 마음의 통찰을 통해 삶의 다양한 사건들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 작가의 행위는 재현의 세계를 넘어 한국적인 추상과 풍경의 단서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그리고 의식의 풍경을 마음의 지평으로 환원시키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녀의 이번 작품 Cityscape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미술의 관념적인 서양적 풍경을 떠나 자기애로부터 시작된 마음의 풍경, 간주관적 객관성이 형상화시키는 현실의 개인이 실존하고 있는 공간, 한국인이 살아가는 풍경을 직관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에서 형식적으로 관찰되는 윤곽선에 의해서 그리고 색채의 조절을 통해서 발전하는 중요한 미학적 장치들(aesthetic devices)이고 이런 미학적 장치들은 작가가 자신의 예술적 과정을 의미 있는 자기치유의 과정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 본질적인 계기들(momentums)을 제공하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헤겔이 말했듯이 예술이 절대정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계기중의 하나인 것처럼, 장진경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는 한 작가의 작품에 부과되는 존재론적인 계기들뿐만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감추고 있는 존재의 단편들이 만들어내는 의식의 해방적인 인식론적 계기들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든 예술작품을 경험하면서 예술이 존재와 진리의 차원을 넘어 우리에게도 직접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만 할 것이다. ■ 정용도
Vol.20040923b | 장진경 회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