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솟구치는 힘

조각가 구본주 1주기 추모展   2004_0923 ▶ 2004_0930

구본주_갑오농민전쟁_합성수지, 철_350×150×400cm_1994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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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가 구본주 1주기 추모 포럼

2004_0923_목요일_03:00pm~05:00pm / 광주신세계갤러리

발제자_김준기_안인기_최금수_황호경 토론자_배인석_연영석_이원석_조정현

광주신세계갤러리 광주광역시 서구 광천동 49-1번지 신세계백화점 광주점 1층 Tel. 062_224_6116

'1990년의 구본주를 기억함' ● 1990년 구본주와 나는 수원의 손문상 선배 작업실에서 함께 기숙하며 보내고 있었다. 손선배와 그 아내 윤진, 회화작업을 하던 신경숙을 포함한 우리들은 20대 중 후반의 혈기방자한 청춘들이었고 사회변혁과 민중에 복무하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모색으로 늘 들떠 있었다. 언뜻 생각해 보면 엊그제 같은 그 일들이 벌써 14년의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던 동구권의 몰락을 바라보며 변혁운동 내에 형성되던 혼란스러운 상황들은 우리들의 작업실에도 영향을 미쳐 '노동미술연구소'라는 소박하지만 분명한 꿈을 담은 현판을 떼고 우리를 학교, 직장과 같이 우리들이 인생의 먼 곳을 유추하며 늘 경계해 마지않을 것들이 넘치는 곳으로 움직이도록 했다. 하지만 그때 구본주와 나누었던 팔팔했던 언어들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과거를 기억하면서 드는 일종의 부채감은 그때 뱉어냈던 겉돌고 부유하는 맹세들 때문이겠지만 본주는 그로부터 자유롭고 우리는 아직도 그 말들에 빚지고 산다. ● 본주의 스타일은 그랬다. 자신의 생각과 결정에 절대적인 신념을 가지고 싶어했으며 신념이 구체적이지 않을 때 고민했으며 그것을 만들려고 자신을 밀어붙이는 고집스러움이 있었다. 내 기억에 본주는 수원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학교로 돌아가면서 그답지 않은 망설임을 가지고 말했다. '노미연'에서 우리들과 함께 경험한 것과 치열히 고민하고 논쟁했던 것들을 가지고 간다고. 그것은 동시대 젊은 예술가들이 고민하고 모색했던 것들이다. 민족자주/민중민주(NL/PD) 논쟁, 민족적 혹은 민중적 예술형식의 문제, 계급성의 문제, 대상과 주체로서의 민중성의 문제들은 노동조합과 연계한 노동자 문예활동지원 현장이나 파업지원의 현장문예활동에서부터 작업실에서의 집단창작이나 개인의 작업과정에 이르기까지 젊은 신념을 파랗게 벼르기 위해 서로를 닦아 세우며 때로는 관념적인 언쟁으로 때로는 구체적인 예시와 실천의 차원에서 늘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게 만들었던 주제들이다. ● 그때 가졌던 본주와 나의 논쟁은 또래가 갖는 일종의 경쟁심과 20대의 사려깊지 못한 고집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내 언어가 공허한 편인 반면 그는 늘 그의 말을 손으로 흙 속에 축적하였다. 수원에서의 본주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선명한 것은 본주가 수원에 내려와서 말과 글로 알던 선진적 노동자를 처음 만난 날이나 파업현장의 시끌시끌한 긴장감 속에 현장 문예활동 지원을 하고 난 뒤 작업실로 돌아와서의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 상기된 그의 표정도 있지만 늘 흙이 묻어 있던 그의 손과 그 손을 놀릴 때 불끈 불끈 움직이던 팔뚝의 근육들이다. 그게 바로 본주의 정체성이었던 것 같다. 나는 '타고난 예술가'라는 말은 대부분 소위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만든 제 잘난체이거나 배고픈 예술가들을 위한 위로의 말이거나 재주 넘치는 작가들은 제 밑에 묶어 두려는 자들의 낯간지러운 립서비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본주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혹시 본주가 가졌던 그런면들이 그의 '타고난' 측면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생활에 치이면서 살다보니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내 자신의 소시민적 근성 때문이겠지만 본주를 생각하면 자꾸 과거로 소급되어 가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 포천의 작업실을 방문했들 때 내 귀를 떵떵떵 울리던 소리, 애인의 뺨처럼 쇳덩이를 쓰다듬던 그 손, 눈웃음, 첫번째 개인전 때 상기된 목소리… 같이 나이들어갈 수 없다는게 너무 아쉽다. ■ 황호경

Vol.20040923a | 조각가 구본주 1주기 추모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