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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08_수요일_05:00pm
인사미술공간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번지 Tel. 02_760_4722
포스트모던적 실존을 사유하는 한 매력적인 방식 ● 최형섭의 세계가 추구하는 주제, 늘 그의 작업을 출발하게 하고, 또 결국 그것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모멘트는 길이다. 그 위에서 자주 우리의 삶이 휴식을 잃고 고단해지는 그 길. 우리 모두가 걷는 혹은 걸어야 하는 길,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서, 그 저변엔 일테면 우리가 스스로를 확인하거나 혹 상실하기도 하는 도상에서의 실존이란 화두가 암시되어 있다. ● 최형섭의 많은 작품들에선 이러한 길의 사색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그것들은 때론 그저 분방하게 선들을 실험하는 여타의 드로잉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고, 때론 마치 실존의 지도와도 흡사해 보이는 복잡한 미로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다. 매우 긴 투명한 프라스틱 튜브 안으로 푸른색의 액체를 순환하게 했던 작품도 이와 다르지 않은 맥락이었다.
이번에 최형섭이 보여주는 『Sliding Space』에서도 작품 전체의 모멘트는 여전히 길이다. 사방이 벽으로 밀폐된 정방형의 공간을 이루고 있던 각각의 벽들은 마치 운명처럼 사전에 주어진 경로들을 따라 이동한다. 이경로들은 천정에 장착되어 있는 레일들에 의해 지시되고 있다. 이 네개의 벽의 이동을 지정하는 네개의 레일을 따라 각각의 벽은 상이한 커브를 그리면서 미끄러져 나간다. 첫 번재 벽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서 공간의 밀폐가 결정적으로 손상된다. 두 번째 것이 떨어져 나갈 때, 그곳에 있었던 지시된 공간의 개념은 완전히 해체된다. 그 다음 차례로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벽이 그 뒤를 따르면서 부재의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각각의 움직임들이 이미 지정된 경로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점이다. 움직임의 어떤 과정에서도 지정된 경로로부터의 일탈은 꿈꿀 수 없다. 제기랄, 길은 주어져 있고, 그것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가능성도 없다니! 아니면 최형섭의 공간설치는 기꺼이 주어진 운명을 따르는, 어떤 순응주의적 사유의 일환을 시각화하려는 것일 수 있다. 보라, 그것들은 스스로 판단하지도, 우려하지도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해체와 복원의 변주에 스스로를 맡길 뿐이다. ●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동한 벽들이 다시 공간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동하면서 해체를 실천했던 벽들이 그 끝에서 다시 해체의 복원을 성취해낸다는 사실이다. 더 정확히 하자면, 해체와 복원은 사실 동시에 일어난다. 부재의 프로젝트는 곧 생성의 그것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이곳에서 하나의 부재와 현존, 해체와 해체의 복원을 되풀이 한다. 물론 여기서 복원은 그리 정확한 개념이 아닐 수도 있다. 이동하는 과정에서 어떤 극적인 반전이 야기되기 때문이다. 즉 안과 밖의 역전, 즉 이전에 외부를 향했던 것이 내면이 되고, 내면이었던 것은 외보루 노출되어 있다는! 벽의 양면이 동일한 색이었다면, 우린 이 사실을 지나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분명한 색의 차이로 인해 내부와 외면의 확연한 전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안팎의 전도를 제외하곤 동일한 해체와 재구성이 이미 주어진 방식으로 끝없이 되풀이 된다. 하여 그 되풀이는 오래지 않아 해체와 복원을 그 고유한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할 것이다. 해체는 더 이상 해체 이전의 상태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은 해체가 될 것이고, 오히려 복원을 지지하는 해체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동일하게 제한된 경로 안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파괴와 재구축이 주는 뉘앙스는 다분히 니체적이고 영겁회귀적이다. 반플라톤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이다. 이 현기증나는 되풀이는 일테면 소설 『데미안』에서 상징화된 소위 알을 깨고 나오는 식의 행위와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반복 안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행위는 곧 또 다른 알을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을테니 말이다. 이미 주어진 노선을 다라 묵묵히 미끄러져 나가는 벽들의 저항없는 이동이 보여주는 운명과 순응의 상관관계에서 우리는 도상의 실존이 우리에게 걸어놓은 어떤 무거운 부하를 환기하게 된다. ● 더 나아가 동일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허물고 다시 구축하는 것의 반복은 포스트모던적 실존의 사유를 경험으로 알게 한다. 작가 최형섭이 보여주는 복잡하지 않은 장치, 그리고 그것이 권장하는 단순한 행위에는 이같은 동시대적 실존에 대한 통찰의 모멘트들이 함축되어 있다. 이 점을 포착한다면, 누구든 단지 네 개의 벽을 옮기는 짧은 시간, 이 시대의 실존을 관통하는 하나의 뼈대 있는 사유를 접하는 짜릿한 효율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최형섭의 세계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인이다. ■ 심상용
Vol.20040910b | 최형섭 설치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