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이기칠 조각展   2004_0903 ▶ 2004_0930

이기칠_작업실 계획_드로잉_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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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903_금요일_05:00pm

후원_한국문화예술진흥원

김종영미술관 서울 종로구 평창동 453-2번지 Tel. 02_3217_6484

나의 작업실 ● 나는 과천 관악산 기슭의 오래된 축사를 임대하여 몇 몇의 동료 조각가들과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작업실 건물 자체는 낡고 허술하지만 계곡을 끼고 위치하여 경관이 수려하고 한적하다. 이 지역은 온통 돌로 덮여있기에 그곳에서 나는 무심히 굴러다니는 자연석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나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는 오랜 기간 동안 자연석을 파고 들어가는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나는 '작업'한다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돌을 뚫어왔다. 따라서 돌의 뚫린 구멍은 물리적인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갖기보다는 나의 작업이 시제로 이루어지고 그로써 나의 실존을 확인할 수 있는 장소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작업실은 나의 작업에 직접적인 모태가 되고 다시 작업은 그 속에 나의 작업실을 품고있는 형국이 되기에 나에게 작업은 작업실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 하지만 이 작업실이 나에게 완벽한 장소인 것만은 아니다. 사실 과천 신도시 개발 당시부터 이 지역에서 목축업은 금지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류상으로 여전히 축사이기 때문에 이 작업실 내에서 예술을 위한 작업 행위는 행정적으로 불법 행위로 규정된다. 그래서 우리는 늘 담당 공무원의 감시를 받으며 작업을 해야 한다. 한편 이 작업실은 높은 임대료 탓에 여럿이서 공유해야 하고 그 이유로 많은 사람이 오고 간다. 이것은 작업실이 활력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각자의 작업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를 유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이기도 하다. 작업실의 또 다른 문제는 건물의 상태가 워낙 낙후되어 난방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바, 겨울에는 거의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불편함은 어떤 형식으로든 극복할 수 있으리라. 정작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예술가라는 한 직업인으로서 한 사회 내에서 자신의 아주 작은 밀실조차 확보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다. 사실 어디서나 젊은 조각가라는 입장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심지어는 사상적으로 매우 불안한 위치에 자리하는 것일 테다. 그리고 이것은 어찌됐든 불평보다는 작업을 통해 극복해야 하리라는 점을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이기칠_작업실 도면_전시장 벽에 테이핑_2003
이기칠_작업실 평면도 작업과정_전시장 벽에 테이핑_2003

나는 한 예술가로서 어딘가에 간절히 정착하고 싶은 마음에서 내 손으로 직접 작업실을 짓고자 한다. 하나의 건축물이 서기 위해서는 건축 허가를 비롯해서 대지, 벽, 지붕, 문, 창문 등 다양한 요소가 필요하지만, 나는 바로 이 순간 나 스스로가 해 낼 수 있는 일부터 하고자 한다. 현재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작업실 주변에서 의미 없이 굴러다니는 돌을 잘라 벽돌을 만드는 것이다. 벽돌은 15cm 두께라는 유일한 기준에 따라 다양한 크기의 육면체로 제작된다. 그리고 이것들은 수년에 걸쳐 6x5m의 전ㆍ후면 벽과 8x3.5m 의 좌ㆍ우측면 벽이 되어 작업실 구조의 기본을 이룰 것이다. 물론 고도로 분화된 현대사외에서 땅 한 조각 없는 사람이 맨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생각은 자못 비현실적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 예술은 현실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는 현실적인 도구이다. 그래서 이 돌벽돌들은 오랫동안 진정한 벽이 되지 못한 채,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전시장 바닥에 누워야 하는 또 다른 현실 속으로 진입하게 된다. 나의 돌벽돌 작업을 조각이나 오브제, 혹은 단순 건축행위로 분류해야 하는 일은 나의 몫이 아니다. 나는 그저 이 돌벽돌들이 이 사회 내에서 무언가로 규정되고, 어딘가에 자리 잡아 어떻게든 기능하길 기대할 뿐이다. 나의 행위를 나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리라. ● 개인이 사회에서 한 부분을 차지하려면 그 사람은 무언가 할 일이 필요로 하고, 그 일을 통해 그것이 재화이건 이념이건 어떤 특정 가치를 생산해내야 한다. 나는 이것이 적어도 생존을 위한 기본 조건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작업에 어떤 의미나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작업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는 가에 관심을 갖는 모순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것은 '어디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가'라는 기초적 질문에서 늘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우유부단 때문이고, 한편으로 세상의 중심은, 그것이 아무리 위태로운 것이라도, 내가 서 있는 바로 이 자리일 것이라는 오만을 뱃속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의 자리는 들풀의 그것보다 불안하고 나의 생각은 본능의 지배를 받는 유아기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항상 사회의 어느 한 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싶어하지만 그 정착의 고통과 어려움을 감수할 만큼 용감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나는 작업이라는 집 속에 스스로를 가두려 하고 그곳에서 거짓으로나마 정착의 희열을 느끼려 하는지 모른다. ■ 이기칠

이기칠_작업실 형태연습_석고_2003
이기칠_작업실 형태연습_석고_2003
이기칠_작업실 내부형태연구_석고_2003

오늘의 작가-이기칠 ● 김종영미술관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평생 일관된 자세를 유지한 우성 김종영 선생의 뜻을 기려 젊고 유능한 예술가를 발굴, 격려하기 위한 사업으로 「오늘의 작가」전을 마련하였습니다. 우리 미술관은 매년 두 명 이상의 자기세계가 분명하고 작업 의욕이 투철한 작가를 「오늘의 작가」로 선정, 이들의 개인전을 마련해 줌으로써 1990년부터 우성 김종영 기념사업회가 시행하고 있는 '우성 김종영조각상'과 함께 한국조각의 발전을 위한 기틀을 확립하고자 합니다. 「오늘의 작가」는 조각분야에서 작업성과가 현저하거나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를 미술관이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기준을 통해 엄선합니다. 이 제도는 젊은 작가들의 창작의욕을 고취시키고 이들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으므로 후학의 양성에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기울였던 김종영 선생의 뜻에 부응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기칠_겨울 작업실 계획_종이에 수채_2001
이기칠_여름 작업실 계획_종이에 수채_2001

올해 두 번째 「오늘의 작가」로 선정된 이기칠은 오랜 시간동안 거대한 자연석을 파고 들어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이 구현하려는 의미나 가치를 내세우기에 앞서 '무엇이 조각이 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집착하며 작업 그 자체의 존재 가능성을 찾으려 하였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책무와 자신의 가치체계에 대한 회의의 상충으로부터 시작된 그의 '작업'은 자신의 모든 관심과 회의를 함께 제거하는 형식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그의 금욕적 태도는 단단한 돌의 물리적 저항을 뚫고 나감으로써 극복하려는 작업과정을 통해서 자신만의 실존적 공간체험이라는 구체적인 관심과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 이기칠의 실존적 공간에 대한 개인적 관심은 최근 자연석을 파고 뚫는 대신 벽돌의 형태로 잘라내어 자신의 작업실을 직접 짓고자 하는 한층 현실적인 개념의 '작업실' 작업으로 전개됩니다. 그는 현재 작업실을 지을 부지와 경제력, 심지어는 뚜렷하게 확립된 계획안조차 없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연석을 잘라 벽돌을 만들고 어디선가 부지가 확보되었을 때 그 자리에 합당한 작업실 계획을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작업실 모형을 만들고 도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소 무모해 보이는 듯한 이 작업을 통해 이기칠은 작업실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만드는 과정을 예술이라는 사회의 공적 제도 속에서 논의하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예술의 사회적 기능과 예술가의 현실조건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고 이것을 작업이라는 기제로서 풀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기칠_돌벽돌 작업 설치_자연석_2001
이기칠_작업실 설치 작업_2004

이번 「오늘의 작가」전은 그의 최근 '작업실' 작업과 관련하여 그가 실험하고 있는 모든 형식의 결과물들이 전시됩니다. 여기에는 아직 벽이 될 수 없는 그의 돌벽돌이 바닥에 설치되고 하나의 마을이 형성될 수 있을 만큼의 수많은 작업실 모형이 전시됩니다. 벽에는 그가 부지 특성에 따라 설계하는 작업실의 도면이 그려집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건축과정과 어떻게 다른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한 조각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질문에 집착하던 그가 조각 자체에서 더 이상의 가능성을 찾지 못하고 궤도를 수정한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기칠은 건축행위 그 자체보다는 작업실이라는 현실적인 공간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 철저하게 조각적인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가 조각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각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어떻게 성립될 수 있는가 질문하는 것이기에, 이 땅에서 조각이 뿌리를 내리도록 헌신하였던 김종영 선생이 추구한 태도와도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미술관은 이기칠을 「오늘의 작가」로 선정하였고 이번 전시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김종영미술관이 의욕적으로 마련한 「오늘의 작가」전이 한국조각의 발전을 위해 작은 역할이나마 담당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도편달을 부탁드립니다. ■ 최종태

Vol.20040904a | 이기칠 조각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