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구어리

최순호 사진展   2004_0902 ▶ 2004_0912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초대일시_2004_0903_금요일_06:30pm_출판기념회

금호아트갤러리 서울 종로구 신문로1가 57번지 금호빌딩 3층 Tel. 02_6303_1925

'핑구어리' 란?_ 1921년 조선 이주민인 최창호는 중국 길림성 용정시 로투구진 소귀촌에서 북한 북청에서 가져온 사과나무가지와 중국본토의 돌배나무를 접목시켜 핑구어리(사과배)를 탄생시켰다. 사과와 돌배의 절묘한 조화를 보면 당당하게 짧은 기간 내에 이주민족으로서 뿌리를 내린 중국 조선족을 느낄 수 있다. 사과배를 일컬어 "쪽박에 담아온 문화와 본토문화의 절묘한 결합이"라고 말한다. 사과배는 중국국민으로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다. ● 최순호는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다. 나는 안티 조선 운동의 심각한 동조자다. 그런데 이 글을 기꺼이 쓰고 있다. 최순호는 눈물이 있는 기자다. 사망한 중국 동포 가족들의 사진을 찍다 말고 그들과 함께 목놓아 울었다. 심지어 신문 사진 기사에 사진기자도 울었다. 라고 써놓았다.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태고 싶었다. "이런 기자는 처음 본다.??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최순호는 목숨을 걸고도 사진을 못 찍는 기자다. 1993년 박준규 국회의장이 공직자 재산등록 공개과정에서 부동산 과다보유 의혹과 시비가 잇따르자 여의도 의장공관에서 두문불출이었다. 건너편 빌딩 7층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3박4일 동안 밤낮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었다. 물론 꿈적도 하지 않고 먹고 싸고 잤다. 이러다 사람 잡겠다는 사진부장의 성화에 어쩔 수없이 교대를 했다. 화장실을 막 나왔는데, 아뿔싸! 그만 박의장이 얼굴을 내밀었고 교대한 선배의 카메라에 찰칵. ● 최순호는 사진보다 글을 더 잘 쓰는 기자였다. 사진 전공이 아니라서?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라서? 몇 시간째 최순호의 사진과 글들을 보고 또 보았다. 사진보다 이야기가 더 구수하다. 또 사진이라고 다 사진인가? 그건 분명 아니다. 껍데기는 누구나 다 찍을 수 있다. 참 사진은 따로 있다. 그럼 내면 깊은 속 사진은 누가 찍나? 모르긴 해도 그 누구는 같이 엉켜 뒹굴어 본 진짜배기일 것이다. 최순호의 사진에서는 10년 묵은 땀 냄새가 스멀스멀 풍겨난다. 중국 동포들의 아픈 속내가 고스란히 들여다보인다.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중국 동포들 생각을 하면 자랑스럽다가 안쓰럽다가 종내는 속이 터진다. 살던 땅을 등지고 떠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들. 남의 나라에 몸 붙여 사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랴 만은 우리 혈육들은 그 모진 설움을 꿋꿋하게 버텨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우리의 동포가 아니다. 지난 1999년 8월 '재외동포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제2조 2항에서 재외동포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나간 자'로 규정되어 있다. 대한민국 국적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부터 시작이 되었으므로 그 이후에 출국을 한 동포라야 우리의 동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 이전 출국자는 동포도 아닐 뿐더러 아무런 혜택도 없다는 것이다. 일제의 폭압 아래 농사지으러간 이들과 징용, 징병, 학병, 종군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찾겠다고 피흘려 싸운 이들과 그 후손들은 1948년 이전에 이 땅을 떠나갔기에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안중근 의사나 윤동주 시인, 홍범도 장군도 우리의 동포가 아니라니 때려죽일 재외동포법이 아닐 수 없다.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재외동포법은 600만여 명의 재외동포 중의 절반인 300만을 제외시켰다. 중국과 구 소련 지역의 동포는 우리의 동포가 아니다. 부잣집에 시집간 딸은 딸이고,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닌가? 재외동포법은 반쪽 짜리 법이며 동포차별법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이나 애국 따위는 하지 말라는 법이다. 중국은 최근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1948년 이전의 한국 역사를 홈페이지에서 모두 삭제하였다. 왜 하필 1948년 이전의 역사인가? 우리 스스로 1948년 이전에 출국한 동포는 동포가 아니라고 선을 그은 결과가 아닌가? 자업자득이자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꼴이다. ● 재외동포법이 헌법재판소의 도마에 올랐다. 헌법재판소는 헌법 위반이라며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국회에서도 만장일치로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1948년 이전에 나간 이들과 그 자손들도 동포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는 여전히 우리 동포가 아니다. 법무부에서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와 국회는 쓸데없는 일을 했고 한국의 중국 동포들은 그저 외국 국적자, 또는 불법 체류자일 뿐이며 대한민국은 제 동족을 체포하고 추방하는 유일한 국가이다.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최순호_컬러인화_2004

이들은 밤낮 없이 죽도록 험한 일을 하고 있다. 제대로 임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 산업 재해, 사기, 폭행을 당하고서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 불법 체류자라는 치명적인 약점 때문이다. 오늘도 많은 이들의 꿈이 부서져 흩어지고 있다. 그들은 가슴에 품었던 꿈과 희망 대신 원망과 분노를 안고 피눈물을 흘리며 돌아간다. 뼈아픈 현실 속에서 동포들은 절규한다. "당신들이 과연 우리와 피를 나눈 동포인가?" "원자폭탄이 있으면 남한 땅에다 떨어뜨리고 싶다." "남한 북한 전쟁이나 터져라. 북한을 지원해서 남한을 쓸어버려야겠다." 그들의 분노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다. 최순호가 쓴 글과 최순호가 찍은 사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 이 책과 사진은 최순호의 땀과 눈물이다. 동시에 중국 동포들의 삶이고 역사이다. 바라건대 이 책과 사진이 하나의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 민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 책과 사진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보자! ■ 김해성

Vol.20040902c | 최순호 사진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