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04_0825_수요일_06:00pm
갤러리 아트사이드 서울 종로구 관훈동 170번지 Tel. +82.(0)2.725.1020
무표정한 도시 공간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시작하면 멈춰버린 기억인데, 여전히 꿈틀대는 무언가가 고개를 든다. 화려한 조명과 네온사인으로 숨막힐 듯한 도시 공간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귀 익은 선율에 살며시 고개를 들었던 기억의 단상들을 따라서 향수에 젖어든다. 그러나 기억의 공간으로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아름답던 기억 속 그것과 하나가 될 수 없음에 기억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현실 공간의 흥청거리는 현란함이 뒤섞인 소용돌이 속에 자신을 내맡긴다.
이호섭의 작업은 그리드화된 색채망들과 그 위로 부상하는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환영을 통해 도시라는 현실 공간과 기억 공간 모두에서 소외된 도시인들의 고뇌와 방황을 느끼게 하는 드라마틱한 무대를 연출한다. 해와 달, 창문, 시계탑, 레코드의 역방향표시, 고뇌하는 듯한 인간과 남녀의 형상 등 화면으로부터 부상하는 아이콘화된 이미지들은 전통적인 환영 공간 속 이미지들과 차이를 지닌다. 이들 이미지들을 좌우 대칭적으로 배열하여 2차원의 평면성을 고수함으로써, 기억공간으로 진입하기 위한 문의 정면성이라는 시각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색 배합으로 구성된 바탕 면이나, 그 위로 부상해 오는 듯한 좌우 대칭적으로 배열된 이미지의 조합면은 색 진동을 통해 시각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역할 이외에는 아무런 규정된 재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개별 작품에 부여된 명제들 역시도 기억이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감흥들에 대한 작가적 의미 부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호섭이 연출한 색 진동이 일렁이는 화면 앞에서 우리는 자신들만의 기억을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우리로 하여금 향수가 주는 평온함에 침잠하도록 하는 것만은 아니다. 점멸하던 바탕면의 색 형상들은 다양한 변화 속에 항상 활력으로 가득 찬 외부 현실의 풍요와 유희들의 유혹 마냥 부상하는 이미지들 사이로 침투해오며 기억으로의 무한한 퇴행을 방해한다. 이는 마치 작가가 기억 속으로 몰입하는 순간 사라져버리는 아름다움의 허망함, 기억이, 추억이 향수할 때만이 아름다울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 공간으로 되돌아가기에는 기억의 공간에 대한 향수를 진하게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결국 전체 화면 앞에서 색 진동에 의한 착시감만을 유희하게 된다. 이로서 작가는 기억 공간 속에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잃고 추억이 되어 현실 공간 속의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도시 공간의 표피적 현란함 속에 자신의 삶을 맡길 것인가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지만 결국에 소외감만을 경험하게 되는 도시인들의 정서를 느끼게 한다.
이호섭이 제시하는 기억 공간으로 진입하도록 하는 매개 형상들 역시도 무척이나 도회적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어린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은 꽃과 나무로 가득한 산과 들, 너른 바다보다는 만화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라며 바라보던 화면조정시간의 색띠들의 진동과,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던 팝송 한 구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조성지
Vol.20040824b | 이호섭展 / YIHOSEOP / 李昊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