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꽃을 피우다

임명숙 회화展   2004_0825 ▶ 2004_0831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46×53cm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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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825_수요일_05:00pm

갤러리 아트링크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1번지 Tel. 02_738_0738

임명숙의 꽃 그림 ● 꽃이란 하나의 개별적인 식물이자 자연, 생명, 아름다움, 소박함과 청초함 등을 의미하는 인문화 된 상징이자 기호이기도 하다. 인간의 눈과 마음에 가장 먼저 다가와 인격화된 상징체로 거듭 났던 존재는 아마도 꽃이 최초였을 것 같다. 꽃이란 대상은 그만큼 풍부한, 충만한 인문성 속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다. 꽃은 자연과 미, 추억과 기억, 시간을 대신하기도 하고 뜨거운 열정과 차마 말못한 사연,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복합적으로 끌어안고 그 모든 것을 침묵 아래 거느린 체 결정적인 모습으로 피어난 존재이기도 하다. 꽃은 오로지 자신의 우아하고 귀족적인 자태와 인간의 신체 깊숙이 저장될 수 있는 강력한 냄새만으로도 자존한다. 최초로 매장 풍습을 했던 네안데르탈인은 그 누군가를 추억하고 지하에서 지상에서의 삶의 연장을 희구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무덤 가에 꽃을 갖다 바쳤다고 한다. 꽃에 부여된 인문성의 흔적과 역사는 그렇게 아득하고 뿌리깊다. -누군가에 의해 그림이 그려지면서부터 오늘날까지 꽃 그림은 여전히, 지속해서 환생하고 있음을 본다. 이 지칠 줄 모르는 꽃 그림에의 열망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도 가져본다.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22×27.5cm_2003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53×46cm_2004

임명숙의 근작은 커다란 흰 꽃이 자리하고 있는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실제의 꽃을 사생하거나 극진한 묘사로 일으켜 세운 꽃이 아니라 보편적인 꽃의 상징, 기호로 다가온다. 작가는 그려진 꽃을 보는 이에게 선물처럼, 축복처럼 선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흰 꽃을 빌어 '마음'을 누군가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이란 예를 들면 따뜻함, 소박함, 순박하고 아름다움 같은 것으로 차있는 마음이다. 작가는 그런 마음이 여전히 가치 있다고 보며 그것을 이미지를 빌어 전달하고 그렇게 해서 보는 이를 감염시키는 것, 그로 인해 보는 이의 마음과 정신이 새삼 정화와 순화로 환생되기를 희구하는 것이 여전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미술활동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임명숙의 꽃 그림은 작가가 지닌 예술관, 한 개인의 인성(人性)에서 향처럼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꽃은 그러한 매개로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현실계에 자리한 꽃에서 그 같은 의미, 마음을 읽고 이를 화면에 담아두었다. 꽃을 변형해서 자신의 의미상으로 만들었고 그것은 이제 하나의 '도상'이 되었다. 의인화 과정을 거친 이 꽃은 식물성의 육체에서 작가의 분신으로, 의미의 문장을 거느린 언어가 되었다.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46×53cm_2004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53×46cm_2004

핸디코트, 모델링페이스트, 아크릴, 수간채색과 커피찌거기 등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만들어진 임명숙의 꽃은 화면에 비교적 일정한 두께를 지닌 질감으로 요철화 되어 부감된다. 그리는 행위를 포함해 만들어 가는 즐거움과 공간연출 및 질감의 다양한 효과를 고려하는 이런 작업은 작가에게 있어 즐거운 행위, 의미 있는 노동이다. 아울러 평면에서의 다채로운 질감과 회화적 표현의 맛이 감각적으로 충만한 그림이다. 그 안에 나이프자국으로 밀착된 꽃잎의 표면과 목탄과 물감이 서로 혼재되어 침잠된 자취가 만든 줄기와 잎사귀의 선들은 감각적으로 화면에서 조우한다. 세련된 도회적 감수성과 장식성이 짐짓 소박함을 전면에 두르고 펼쳐진 풍경이다. 꽃잎은 표면에서 살짝 융기되어 도드라지게 부풀어오르거나 화면 밖으로 올라가 있다. 펄이 섞여있고 금분, 은분이 입혀지는가 하면 흰색의 두드러진 편재가 화면 전체를 다분히 환영적 공간, 비일상적이며 상상적인 그런 공간의 느낌을 자극한다.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46×53cm×4_2003~2004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110×111cm_2004

하얀색의 꽃, 연분홍 꽃, 크림빛깔을 가득 머금은 커다란 꽃이 화면 가득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얼핏 달 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환한 백자가 되어 눈에 어른거린다. 작가는 그 같은 색채를 분청사기나 백색의 항아리에서 따온다. 그것은 소박하고 절제되어있으면서도 지극히 자연스럽게 베어 나오면서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색이지 자신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색이 아니다. 그녀가 다루는 색상은 그 어떤 색채, 색명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확실하지 않은 색감, 언어화될 수 없는 색채의 분위기가 퍼지면서 동시에 다분히 한국적이라고 생각되는 색채의 선호 아래 적셔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색, 혹은 미색으로서의 색감은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움을 지닌 색채, 가장 한국적인 색으로 설정된다. 꽃의 형태 역시 특정한 꽃의 형상이 아니라 보편적이며 개략화 된 일반적인 꽃의 모양을 띠고 있다. 명확한 형태감과 구체적인 지시성에서 벗어나 약간 어눌한 형상을 짓고 있는 이 꽃들은 화려하거나 화사하기보다는 소박하고 평범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자신의 꽃 그림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봐주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쉽고 편안하게 읽히고 다가오고 그렇게 마음에 물처럼 스며드는 그림에의 선호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27.5×22cm_2004
임명숙_마음속에 꽃을 피우다_혼합재료_27.5×22cm_2004

여기서 작가에게 그림이란 행위, 의미는 그 선을 넘지 않는다. 그림 그리는 일 역시 그러한 편안함과 소박하고 쉽고 따스한 그림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여기에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개념화와 논리화에 대한 나름의 부정적인 인식 혹은 그런 모든 미술의 정치화나 욕망화에서 은연중 벗어나고 싶다는 심정의 기미로 다가온다. 미술이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거나 지나치게 대중과 유리된 전문화, 논리화, 개념화로 치닫는 길에 대한 소극적이지만 자신에게 무엇보다도 절실한 방어적인 길의 하나가 이 같은 꽃(자연)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생각이며 동시에 여전히 미술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소박함, 편안한 정서에의 침윤 같은 것들에 대한 믿음을 꽃(자연)으로 가시화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현대미술이 어느 지점으로 질주하든 아직도 미술이 가능하다면, 그리고 존속할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여전히 자연에서 받은 감동의 전이이자 쉽고 편안하게, 누구에게나 미적 감동을 전해주는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동시대 한국화작업의 한 성향, 보편적인 인식의 한 특성을 또한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 박영택

Vol.20040823a | 임명숙 회화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