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Landscape

서울시립미술관 기획展   2004_0818 ▶ 2004_0917 / 월요일 휴관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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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818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공성훈_권희정_김동기_남기호_박영균_박영준_손진아_송영규 이영옥_이준구_이흥덕_임만혁_임병국_조혜승_홍세연_황영자   담당 큐레이터_박파랑

관람시간 / 10:00am~09:00pm / 주말,공휴일_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중구 서소문동 37번지 1층 전시실 Tel. 02_2124_8800

회화! 돌아오다 ● 이 전시는 그간 미디어, 영상, 개념, 설치작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던 회화, 그 중에서 구상회화의 세계를 조명하는 전시이다. ● 한국의 추상회화가 국내외에서의 지속적인 전시를 통해 모노크롬이나 미니멀리즘과 같은 뚜렷한 양식으로 미술사의 한 조류로 자리잡은 반면, 상대적으로 구상회화에 대해서는 70년대 후반의 극사실주의, 80년대 비판적 리얼리즘 이후의 다양한 회화적 시각에 대한 접근이 미미할뿐 아니라, 그 접근에 있어서도 대부분 풍경, 정물, 인물과 같은 단순 도식의 전시가 주를 이루었던 것이 사실이다. ● 이 전시는 90년대 이후 한국미술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장르로 인식되었던 구상회화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되, 전시구성에 있어 장르상의 구분이나 연대별 조망이라는 보편적인 방법을 취하는 대신 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구상회화를 『Life Landscape』라는 체로 걸러 냄으로써, 구체적인 시각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가 앞으로 한국의 구상회화에 대한 발전적인 접근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이기를 희망한다.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Life Landscape의 의미 ● 전시는 Life Landscape(삶의 풍경)이라는 전체 타이틀 아래 「살찐 소파가 있는 풍경」과 「그 풍경 속으로」라는 두 개의 소주제로 구성된다. ● 1. 첫 번째 테마인 「살찐 소파가 있는 풍경」은 적나라한 일상성의 압축을 통해 현대인간의 일상적인 삶에 내재된 권태의 비극성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황지우의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 차용해온 테제를 바탕으로 '살찐 소파'로 상징되는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풍경'과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한없이 가벼운 흔적을 형상화하고 있다. ● 2. 첫 번째 테마가 황지우 시를 바탕으로 물리적 일상성의 흔적을 형상화한 것이라면 두 번째 테마인 「그 풍경 속으로」는 그 '일상적 풍경' 아래에 내밀히 공존하는 삶의 권태나 고독과 같은 인간 삶의 본질적인 딜레마로 확대하여 그 심리적 궤적을 삶의 풍경 안에 녹여내고 있다. 즉 전자가 황지우 시의 물리적 풍경을 담아내었다면 후자는 그 시의 심리적 풍경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왜 황지우의 시인가? ● 90년대 이후 한국 구상회화는 그 다양한 양태 속에서도 일상적인 우리 삶의 풍경과 이야기라는 '일상적 네러티브'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의 전체 타이틀인 '삶의, 혹은 일상의 풍경'에 대한 함의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이 전시에서 황지우의 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는 바로 이러한 보편적 '일상성'의 내밀한 흐름을 절묘하게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가령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를 모티프로 따온 연극이나 저널, '소파씨' 등의 이름으로 타자의 소설에서 그 캐릭터가 인용되는 등 그의 시는 이미 단순히 개인의 작품을 넘어서, '권태로운 일상에 매몰되어 있는 흔들리는 현대인의 자아'라는 사회적 상징의미를 획득하고 있어, '일상의 풍경'이라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녹여 낼 수 있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시와 미술작품은 '일상의 풍경'이라는 형식을 통해 하나로 녹아들게 되는 것이다.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황지우의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 ●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 아니, 사실은 아침에 늦게 일어나 식탁에 앉았더니, / 아내가 먼저 이 닦고 세수하고 와서 앉으라고 해서 나는 / 이빨 닦고 세수하고 와서 식탁에 앉았습니다. / 다시 뎁혀서 뜨거워진 국에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 아침부터 길게 하품을 했지요. / 소리를 내지 않고 하악을 이빠이 벌려서 눈이 흉하게 감기는 동물원 짐승처럼 / 하루가 또 이렇게 나에게 왔습니다. / 지겨운 식사, 그렇지만 밥을 먹으니까 밥이 먹고 싶어졌습니다. / 그 짐승도 그랬겠지요. / 삶에 대한 想起, 그것에 의해 요즘 나는 살아 있습니다. / 비참할 정도로 나는 편합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이빨 닦고 세수하고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 먹고 물로 입 안을 헹궜지요. / 이 사이에 낀 찌꺼기들을 양치질 하듯 / 볼을 움직여 물로 헹구는 요란한 소리를 아내는 싫어합니다. / 그래서 내가 자꾸 비천해져 간다고 아내는 주의를 줍니다. / 아무튼 그리고 나서 나는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러나 소파! / '소파'하면 나는 '비누'생각이 났다가 또 쓸데없이 '부드러움'이라는 형용사가 떠오르다가 '거품-의자'가 보입니다. / 의자같이 생긴, 젖통이 무지무지하게 큰 구석기시대의 이 다산성 여인상은 비닐로 된 가짜 가죽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 "오우, 소파, 나의 어머니!" 나는 속으로 이렇게 영어식으로 말하면서, / 그리고 양놈들이 하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소파에 앉았던 거디었던 거딥니다. / 나는 오늘, 밥먹고 T.V 보고 잤습니다. / 자기 전에 아내가 이 닦고 자라고 해서 이빨도 닦았습니다. / 화장실 앞에서 난 돈 쳐먹다 걸린 전 해군 참모총장처럼 포즈를 취했더니, 아내가 쓸쓸하게 웃었다는 것도 적어야겠습니다. 아, 참. / 오늘 날씨는 대체로 맑았고 / 서울과 중부지방 낮 28도였습니다. / 끊임없이 부글거리는 이 수족관. / 가련한 물고기들이여, 아니, 가련한 공기족들이여. 안녕, 빠이빠이!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와 예술가들의 초상 ●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전시의 주제가 던져졌을 때 참여 작가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 시가 자신의 모습을 나타낸, 바로 자신의 얘기라고 고백했다는 점이다. ● 황지우의 시 「살찐 소파에 대한 일기」에서의 절묘하게 표현된 일상의 구절구절을 통해 바로 작중화자로서의 시인 황지우와 대면하게 되는데, 가만히 들여다보자면 비단 시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들 화가들의 그것과 같은 것이기에 이 시는 바로 예술가들의 초상으로 오버랩된다. ● 애당초 그림은 화가의 자기고백적 성격이 강한 법이며, 이것은 특히나 구상회화에서 두드러진다. 구상회화의 가장 큰 매력중 하나가, 관람객들이 작품의 형식에서나 주제면에서나 실로 가지각색인 개별 작품들을 통해 작가의 과거나 현재, 혹은 사고의 흔적까지도 구체적으로 발견해내고, 그 흔적들을 근거삼아 실체적인 이야기로 구성, 혹은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 특히나 개체적 인간으로서의 작가를 대상으로 한 일종의 퍼즐 맞추기인 셈이고, 관객이 행하게 되는 퍼즐 맞추기는 그런 점에서 예술의 상호교류적인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셈이다. ● 오늘날 예술의 형식이 영상·미디어가 되었던, 설치 혹은 기존 장르가 되었던 간에 첨단의 물적 기술이나 혹은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생략되고 해석되어진 추상적 개념에 기대어 관념적인 것으로 흘렀던 현대 미술로부터 관객이 느끼는 공허는 바로 이러한 태고적 인간의 본성이기도한 내러티브의 부재로부터 출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미술작품이 근본적으로는 시각적인 유희의 발현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이들 구상회화 전시의 즐거움이란 것은 상당히 큰 폭으로 다가올 것이며, 특히나 황지우 시가 지니는 연극성은 이러한 즐거움을 더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그의 시가 제공하는 눈앞에 잡힐 듯 섬세히 잡아내는 일상의 물리적 풍경과 물리성 너머의 내적 풍경은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회화 작품들과 더불어 관객에게 장르를 넘어선 문화적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믿는다.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참여 작가 16인의 Life Landcape ● 황지우의 시가 그랬듯이, 이 전시는 여기 16명의 구체적인 작품들을 통해 예술가들의 초상에 대면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16명의 작가들은 몇 명을 제외하고는 이른바 미술평단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다. 그 이유는 한편으로는 그들중 몇몇이 젊은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90년대 이래 근 15년 가까이 포스트모던과 개념미술이 난무하던 한국미술계의 주류에서 비껴선, 나홀로 버텨온 아웃사이더 같은 존재들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자신만의 회화적 세계에서 구축해나가고 있는 더할 나위 없는 분방한 선과 살아있는 구체적인 형태와 붓 터치 그리고 원색의 생동감을 통해 구.상.회.화.의 시각적 매력을 독자적으로 터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혹은 미래의 한국 구상회화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그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작가들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 80년대 민중미술가라는 백그라운드 속에서, 지금은 고교 미술교사로서의 일상인의 삶을 영위하면서 80년대의 뿌리의 연장선상에서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온 이흥덕, 70을 눈 앞에 둔, 그 시대의 보편적인 한국의 여류 화가들의 작품에서는 보기 어려운 적나라함과 정서적 흉포함으로 인해 근 30년 넘게 철저히 무명의 작가로 지내며 세상과 스스로에 상처받은 황영자, 역시 90년대 운동권 출신으로서 현장에서 걸개 그림을 그려왔던 과거를 배신하지 않고 그 시절 386세대의 상징물, '김대리'를 2000년대를 생존해야만 하는 캐릭터로서 그 계보를 잇고 잇는 박영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지역미술계와 중앙 미술계 양쪽으로부터 감내해야만 했던 아웃 사이더로서의 분노를 200호가 넘는 블랙 페인팅 안으로 발산하는 이른바 지방작가 김동기, 한낱 뒷마당의 똥개 쯤으로 자신을 투영하며, 회화적 깊이를 특유의 음산한 매력으로 구현해 내는데 탁월한 공성훈 등 16인의 작품을 통해 이들 예술가들의 삶의 풍경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Life Landscape_서울시립미술관_2004

살찐 소파의 의미 ● "......다만 한 사나이가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소파에 앉았다. / 젊었을 적 사진으로는 못알아 보게 뚱뚱해진, /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 최근에 입에서 나쁜 냄새까지 난다고 아내에게 비난받은 바 있는 / 이 사나이가 멍하니 소파에 앉아, 마치 동물원 짐승이 그렇게 하듯이, / 하품을 너무 길게 하고, 눈물이 난 눈을 두 번 깜,빡,깜,빡하고...." ● 그렇다면 살찐 소파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찐 소파는 이들의 게으른 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이자, 혹은 물화된 예술가들의 자아로 읽혀질 수 있다. 따라서 살찐 소파가 있는 풍경은 바로 이들 스스로의 풍경이고, 이는 외적, 동시에 내적의 풍경도 동시에 함축하고 있는 매제이다. 젊었을 때와는 몰라보도록 살이 찐 어느 예술가의 자아는 살찐 소파라는 물적 투영에 의해 구현되고 있는 셈이다. ● 결국 회화의 문제란 어떠한 대상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이다. 구상 회화는 더더욱 이러한 고민들이 관객 앞에서 무방비인 상태로 발가벗겨 지는 것이기에,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은 예술가 그들의,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다각적, 심층적인 자기 고백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사회적 무직자(?)로서의 예술가들의 처연한 일상을 통해 우리가 목격하게 되는 것은, 삶에 대한 상기(想起)에 의해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역설의 과정에서 베어 나오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 그들은 말한다. / 사람이 희극이 되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 없기에, / 사람이 만화가 되어서는 아니되기 때문에, / 그러므로 무위(無爲)는 그들이 이 나머지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 '그리하여 나는 소파에 앉아서 하루 종일 격조 있게 놀았다.'는 그들의 고백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기에 더욱 슬픈 풍경인 것이다. ■ 박파랑

Vol.20040822b | Life Landscap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