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레이트 photorait

책임기획_곽혜란   2004_0809 ▶ 2004_0823

권순학_나는 껍데기일 뿐... 실망스러운 수다쟁이다(bigmouth)_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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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04_0809_월요일_06:00pm

참여작가 권순학_김영선_최지연_최진아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미술스튜디오 서울 도봉구 창동 601-07번지 Tel. 02_995_3720

'현대성' 그 끊임없는 화두 ● 항상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현대성'이란 무엇일까? 참으로 쉽게 말하여 지지만 쉽지 않은 개념이다. '현대성'의 의미 안에 '동시대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항상 그 시대에 대한 인식은 그 시대가 조금 지난 후에야 가능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상당한 모순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시대 개념은 더욱 혼란해서 '현대성'을 정의 내리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현대성을 '전체 역사의 지평으로부터 자신이 처해 있는 지점을 확인하고자 하는 역사 철학적 시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9세기 중반 이후 보들레르는 과거와의 단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변화하는 불안한 현대의 삶 속 일시적인 현재들이 모여 현대가 되고 그 안에서 영원한 것들을 포착해 내려는 태도가 현대적인 태도라 여겼다. 이는 현대가 미래를 내포하면서 새로운 것을 이루어 내는 '동시대성'의 의미이다. 과거와의 단절이라기보다 극복을 표방한다면 '현대성'의 의미를 조금은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전시 '포토레이트(Photorait)' 의 핵심은 이러한 현대성, 동시대성이다. 사진(photograph)과 초상(portrait)이라는 소재와 형식으로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젊은 작가들이 각각 어떠한 식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지 그들의 눈을 보고자 함이다. 이 전시에서 사진은 회화로서의 사진으로 그것은 사회적 상황과 시대적 분위기가 회화와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이는 다양한 사고 및 세계관과 결부되어 있으며 단순히 시각형식 상호간의 미친 영향의 측면뿐만 아니라, 시대적 문화적 상황과 복합적으로 얽힌 관점에서 사진을 회화로 바라본다. 초상은 나의 얼굴, 타인의 얼굴 뿐 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까지도 범위를 넓힐 수 있다. 작가들은 자기의 외형적인 모습은 물론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적인 성격이나 필연성을 호소하고 쏟아 부으며 자기와의 대결의식을 심화시켜 나감으로써 자신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 왔다. 이 곳에서는 그 것이 자화상일 수도 있고 타인의 초상일 수도, 시대의 초상일 수도 있다. ● 여기 네 명의 작가들은 이 시대와 자아와의 끊임없는 관계 속에서 세상과 자신과의 단절 또는 흡수됨을 표현한다. 세상과 타협하기도 하고 거스르기도 하는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를 사유하고 미래를 이루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 시대의 초상인 포토레이트, 그 속에서 과거와의 단절 혹은 극복들을 발견하는 일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 음성상으로 '포트레이트'라 느껴지는 '포토레이트'는 Photograph와 Portrait가 결합된 필자 나름의 합성어이다. 회화로써의 사진으로 시대의 초상을 나타낸다는 의미로 썼다.

권순학_느끼고 있다고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therethere #0)_2004

권순학 ● 필름조각과 그 조각들을 밀착시킨 사진으로 디지털과 아날로그, 인간의 3요소를 표현한다. 디지털 세상이 도래하였지만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 그리고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항상 고민하는-인 정체성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결국 인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처음의 인간성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 을 보여준다. 언제나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앞서 나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빠르게 발맞추어 나아가는 양 계속 쫓아 나간다. 세상은 깊게 생각하게 우릴 놔두지 않는다.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우리는 내달리고 또 내달린다. 그러나... 잠시 멈추어서 지금의 나를 보자. 내가 어디에 있는가? 난 왜 이렇듯 숨차게 쫓아다니고 있는 건가? 나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지고 있었던 나를 찾고 싶다. 나를 찾는다는 것은 뒤를 돌아본다는 의미이다. 과거를 본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자기의 반성, 자신을 찾는 과정을 그의 작품 과정에서 엿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찾기까지 수많은 필름들과 씨름을 하면서 결국 하나의 인화된-보여지는-이미지가 나오지만 결과물보다 과정물, 작업행위 등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 과정물들은 또 다른 구성으로 또 다른 나의 모습, 그들의 모습을 재생산 할 수 있다. 비록 결과물의 비주얼은 조금씩 달라지고 느낌도 조금씩 다르지만 본질은 같으리라. 이것이 인간이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일 것이다.

김영선_침투_2004

김영선 ● 스타를 발굴해 가는 연예계조직처럼 미술시장도 점점 더 자본주의적이고 마케팅화 되어가고 있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댄스그룹처럼 두세 명이 팀을 만들어 활동을 하기도 하고 작품만으로 자신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은 마치 신인가수처럼 '뜨기'위해 다른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내 보인다. 필요충분조건 또한 우릴 괴롭힌다. 그렇다고 이러한 현실을 묵과해 버린다면 우린 점점 불안해지고 도태될 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밀려올 것이다. 그래, 들어가 보자! 나도 해보는 거야! 혼자 불안해하지 말고 들어가 보자! 장마철 나도 모르게 온 집안을 점령해 버린 곰팡이처럼 김영선은 자신의 얼굴로 자신의 주변부터 조금씩 자신을 캐릭터화 시켜 침투해 나간다. 가까이서 보면 그녀의 얼굴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하나의 포장지와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당연한 듯 영선표의 캐릭터는 전시장 한 곳을 점령한다. 같은 얼굴 똑같은 색의 반복은 어쩌면 지루하고 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뻔해 보이는 것들의 경로는 결코 뻔하지만은 않다. 바이러스처럼 점점 퍼져 문틈에도 창고에도 뻗어 나간다. 정지되어 있는 느낌들이 없다. 살아 움직이는 듯 하다. 내일이 되면 또 이만큼 퍼져 있을 것 같은 두려움 아닌 두려움까지 든다. 이러한 바이러스가 다른 곳으로 점점 퍼져나가고 번식하면서 또 다른 성격의 그 무엇이 생겨 날 것만 같다. 영선표 캐릭터도 변할 것이고 퍼져나가는 곳 또한 더욱 예상치 못한 곳이 될 것이다. 이러한 번식들이 작가가 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순수한 마음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던 초심도 어쩌면 새롭게 생겨나는 바이러스처럼 변해 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되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유쾌한 침투로 보인다.

최지연_무제_2004
최지연_무제_2004

최지연 ● '나는 이 세상 유일무이한 존재이지만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 속에 나는 너무나 서로 다른 모습이다. 내가나를 바라보는 것조차도 난 너무나 여러 가지의 모습을 지녔다.' 가면과 같은 자신의 껍데기인 얼굴과 몸을 그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형상을 남기고 바탕을 칠해 나간다. 그녀의 처음 패널 작업은 거칠고 형상 또한 구체적이었다. 형사(刑似)를 중시하는 사의(寫意)적 표현으로 보였다. 지금은 많이 단순화되긴 하였지만 추상으로 보이는 몇몇의 작품들도 미시적인 자신의 형상인 것들이 많다. 그것들은 반복되기도 하고 휑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에게 보이는 정적인 형상들은 그녀 작업실에 쌓여있는 수백 자루의 볼펜들과 대조를 이룬다.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준다는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다져짐이므로 보이는 것은 껍데기일지라도 나의 내면이 어떠냐에 따라서 겉모습 또한 다르게 보일 것이다. 그녀의 작업 또한 하나의 가면을 보여주기 위해 몇 십 몇 백 자루의 볼펜으로 바탕을 메우면서 닳아 없어진 볼펜 수만큼 자신을 생각해 봤으리라. 언제까지 나를 그려야 나의 진정한 모습들이 발견이 될는지. '여전히 나는 천 개의 얼굴을 지닌... 진정한 모습이 불분명한 인간일까?' 하는 자신에 대한 고민을 자신 안에서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야를 넓혀 나가는 모습도 필요할 듯 하다.

최진아_무제_2004
최진아_2004년 7월4일자 꿈_2004

최진아 ● 최진아의 작업은 현실과 이상의 단절과 소통을 사진과 스티커라는 매체로 표현한다. 현실 속의 작은 인형들은 렌즈를 통하고 나면 건조하고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그 이미지는 하나의 몽환적 이미지이다. 몽환적 이미지에 또 다른 이상을 붙인다. 그것은 사실 자신만의 언어이다. 사진 위에 붙는 스티커는 작가의 암호로 보인다. 때로는 별, 때로는 사랑을 속삭이는 꼬마들의 언어들..... 비현실적 이미지로 보이는 현실들에 나의 꿈을 담아본다. 우리들이 항상 꿈꾸어 오던 것과 현실들... 그건 마치 문구점에서 화려한 스티커로 나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것처럼 현실보다 예쁘고 화려하게 나의 욕망과 타인에게 보여짐을 꾸미고 만들어 간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사진 위의 스티커처럼 그리 조화롭지 않은 듯 하다. 꾸밀수록 더욱 단절되어 보인다. 그러나 신문 위의 스티커들은 우연히도 조화로운 부분이 만들어진다. 우연히 다른 사람 말을 받아치는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그녀의 작업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꽤 많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상을 위해 항상 마음속에 자신만의 스티커를 붙여나가고 그 스티커가 현실이 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스티커를 붙여나갈 수 있는 자신에게 만족하면서 사는 것. 때로는 이질적이고 때로는 촌스러울지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꿈을 꾸고 꿈을 현실화시키려 애쓴다. 꿈을 실현시키기에 부적합한 사회이고 현실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한 장의 스티커에 이상을 담고 내 마음속에 계속 붙여 나간다. ■ 곽혜란

Vol.20040809a | 포토레이트展

2025/01/01-03/30